직장인 A씨, 주체적인 ‘나’로 서다_최혜인 회원,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

by 센터 posted Aug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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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최혜인1.jpg

 

최혜인 회원과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이하 센터)에서 활동하며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센터 정책연구위원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행사나 모임에서 종종 얼굴을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가 《직장인 A씨》라는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나, 어떤 계기로 책을 쓰게 됐을까, 책 내용은 뭘까, 몇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회운동에 눈 뜨다

 

2008년, 그이는 지긋지긋한 수험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했다. 광우병 사태가 터졌고 집회에 참여했다. 광장은 해방 공간이었다. 사람들의 발언을 듣고 함께 노래 부르는 게 짜릿했다. 축제 같았다. 사회 문제에 눈을 뜨면서 시민운동에 관심이 갔다. 참여연대에서 인턴으로 활동했고,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몰랐던 것을 공부하는 게 재밌었다. 이것저것 습득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노동운동엔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았다. 거칠게 투쟁하는 모습이 무서웠다. 그러던 중 선배를 따라서 기륭전자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엄마와 닮은 중년 여성들이 구호를 외치는 게 신기했다. 그이의 어머니는 전업주부로 있다가 IMF 이후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도 여기 나올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노동 문제가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노조를 어떻게 만들까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던 그이는 복지관에 실습을 나가야 했다. 현장에서 마주한 사회복지사는 여러 불합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회복지사 그 자체로 평가받기보다 어떨 때는 준공무원으로, 어떨 때는 봉사자로 취급당했다. 원인이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복지관을 운영하는 법인, 그 법인에 예산을 주는 지자체와 보건복지부, 이렇게 복잡한 지배 구조에서 사회복지사는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래서 하나로 뭉치기 힘들다. 그이가 내린 결론이었다. 자연스럽게 질문이 따라왔다. 사회복지사들이 노조를 만들어 보건복지부 장관과 담판을 지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노조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 노조 만드는 법이 궁금해졌다.

비정부기구학을 복수 전공했는데, 마찬가지로 실습을 나가야 했다. 노동운동 단체를 알아봤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지도교수에게 조언을 구한 뒤, 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실습을 하게 되었다. 두 달 동안, 이남신 당시 센터 소장을 따라다니며 다양한 노동 현장을 경험했다.

 

첫 직장, 센터에서의 3년

 

실습이 끝나고 취업 시기가 목전에 다가왔다. 채용 공고를 뒤적였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첫 직장이었다. 3년 이상 다닐만한 곳에 가고 싶었다. 마침 센터 정책 상근 활동가가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가고 싶었다. 채용 공고가 뜨길 기다렸다. 뜻밖에도 이남신 소장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소고기를 사주며 함께 일해 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덜컥 좋다고 하면 모양이 빠질 것 같았다.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일주일가량 지나 함께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정책 일은 쉽지 않았다.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노동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다. 일주일에 논문을 두 편 읽고 세미나 형식으로 발제하며 공부했다. 그렇게 센터에 적응해 갔다. 일을 나름 잘해 냈다. 그러나 어딘가 불안했다. 누가 와도 쉽게 대체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먹구구식으로 공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학위도 없었다. 전문성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싶었다. 노동자와 부대끼며 함께 대안을 고민해볼 수 있는 노무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첫 직장인 센터에서 3년을 채우고 나왔다.

 

역동적이면서도 단단한 노무사

 

노무사 시험에 합격하고 노무법인에서 수습을 받았다. 그 뒤 직장갑질119로 자리를 옮겼다. 현장 가까이서 활동해보고 싶었다. 직장갑질119 업무는 호흡이 짧았다. 여러 상담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터지는 사건들이 많았다. 쫓아가기 벅찼다. 고민을 풀어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상담을 통해 파악한 문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설명하고 이슈화하면서 빠르게 제도를 개선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해도 주목받기 용이했다.

어느 순간부터 기본기가 부족한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언론에 자주 노출되었는데, 경험 없는 공허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책을 읽거나 상담하며 들은 내용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봐야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다 싶었다. 노조법 사건을 많이 처리할 수 있는 민주노총 법률원에 들어갔다.

 

활동을 글로 풀다

 

그이의 활동을 눈여겨봤던 출판사에서 《직장인 A씨》를 내보자고 먼저 연락해왔다. 기획서 초안을 봤는데 조금 민망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해결하는 영웅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출판사와 같이 기획서를 수정하다 보니 어찌어찌 책을 쓰게 되었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다고 했다. 어릴 때 백일장에 나가 상을 받았고, 현재 꾸준히 일기도 쓰고 있다. 센터에서 활동하면서 《이런 시급 6030원》이라는 책의 공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출판 제안을 받기 전부터 조금씩 써 오던 글도 있었다. 《비정규노동》에 썼던 코로나19 관련 글, 금속노조 월간지인 《금속노동자》에 한 달에 한 번씩 쓰던 직장 내 괴롭힘 칼럼이 그것이었다. 기존에 썼던 글을 활용해 《직장인 A씨》 내용의 절반가량을 채웠다.

 

직장을 관두는 용기

 

《직장인 A씨》에는 최혜인 노무사가 상담하면서 만난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이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쉽사리 직장을 포기하지 못한다. 우리는 일하면서 보수를 받고 생계를 이어나간다. 또한, 사람을 만나고, 성장하고, 보람을 느낀다. 사회적 존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으며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직장 생활을 과감히 관둘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온전히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가려 병들어 가는 자신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 남아 부당한 것을 바로잡으려고 싸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직장을 관두는 것이 곧 패배를 의미하진 않는다. 나를 위협하는 환경에서 빠져나오는 건 용기 있는 행동이다.

오히려 직장 밖에서 더 잘 싸우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이는 직장을 그만두면서 남은 정을 털어버리고, 힘을 내어 산재 인정을 받고 손해배상 청구까지 한 사례를 이야기해줬다. 직장을 관둠으로써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할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이와 인터뷰하면서 《직장인 A씨》는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한 명의 주체적인 노동자로서의 나를 이야기하는 따뜻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 A씨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직장인 A씨’를 만난다면 그는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을까? 마지막으로 질문해 보았다.

“괴롭힘을 당하면 상황을 판단하기 어렵다. 버틸 수 있는 건지, 싸울 수 있는 건지, 무시해도 되는 건지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 온다. 그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내릴지도 모른다. ··· 혼자 고민하지 말고 친구나 가족과 꼭 이야기해봐야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기 상황을 객관화해볼 수 있다. 또한, 누군가 내 편이 되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사실 만으로도 용기가 된다. ··· 직장을 그만둬도 괜찮다.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이곳과의 인연은 이 정도구나 하고 그만두는 거다. 다른 직장에 가서 잘 먹고 잘살면 된다. 도망치거나 패배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싸우고 싶다면 제대로 싸워야 한다. 전문적인 상담을 받으며 차근차근 준비했으면 한다. 나를 도와줄 조력자를 만드는 게 꼭 필요하다.”

 

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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