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여성노동조합과 청년유니온,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미디어오늘)
[기자회견문]
대변되지 못한 노동의 목소리를 사회적 대화의 장에 올려놓겠습니다.
1998년 한국사회의 경제위기 극복과 노동 정책의 협의체로서 만들어진 노사정위원회가 새롭게 개편하여 경제사회노동위원회란 명칭으로 오늘 드디어 출범한다. 단순히 명칭만 변경된 것이 아니라 노-사간 첨예한 갈등을 당사자 집단 간 협의하며 극복하자는 취지로 대표적 취약계층인 청년, 여성, 비정규직 대표가 위원으로 들어간다는 점이 이전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청년유니온, 전국여성노조,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여 앞으로 노사정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서 한국사회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적극 대변해 나가고자 한다.
한국사회가 노동존중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일터에서 대변되지 못하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현실이 개선돼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단결권 ․ 단체교섭권 ․ 단체행동권을 노동자들이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수많은 불안정 노동 일터에선 노조 할 권리가 삭제된 채 노동자들의 이해대변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이 분절화된 한국 사회에서 소수 양질의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한 대다수 노동자들은 결국 불안정 저임금 장시간 노동조건 속에서 위험과 차별에 노출된 채 무기력한 상태로 방치될 수밖에 없다. 사용자의 부당한 업무지시조차 거부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터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찾기란 2018년에도 변함없이 어렵고 힘겹다.
불안정 노동의 대표적 계층이 바로 청년, 여성, 비정규직이다. 평생고용과 높은 임금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20대부터 전 생애를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많은 청년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향한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실업은 장기화되고, 소득은 빈곤해지며, 삶은 외로워진다. 미취업 상태의 청년을 포용하는 사회안전망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이다. 노동시장을 보다 평등하게 만들어 모든 일터에 노동권을 보장하고, 고용안전망을 획기적으로 확충하여 사회진입 단계부터 무기력에 빠지기 쉬운 청년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한국사회의 성별임금격차는 OECD 최고 수준이다. 또한 많은 기업들의 채용과정에서도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탈락시키고, 면접 과정에서 업무와 상관없는 차별적 질문들을 여성들에게 서슴없이 하고 있다. 또한 승진 차별, 직장 내 성희롱 및 성폭력 문제,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사용 시 눈치주기 및 괴롭힘,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겪고 있는 감정노동 스트레스 등 차별이 일상화된 여성들에겐 일터란 안전을 위협받는 곳에 다름 아니다. 성차별 없는 일터를 만들어내기 위한 우리사회의 노력이 시급하고 절실하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는 무엇보다 여성존중사회이므로 여성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마땅하다.
1,10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비정규직 문제도 심각하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에 불과하고, 기업복지와 사회복지에서도 차별을 감내하고 있다. 용역, 파견, 사내하청 등 진짜사장이 책임을 회피하는 불법적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횡행하고 있고, 노동자성마저 부정당하고 있는 특수고용 비정규직도 급증해왔다. 더구나 최근 단시간 노동자가 늘어나 나쁜 일자리 백화점을 방불케 하고 있다. 공공부문에선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진전되고 있지만 재벌이 ‘슈퍼 갑’으로 군림하고 있는 민간부문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현 정부가 참여정부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대통령 공약 사항인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 원청 사용주 사용자성 및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성 인정 등 비정규노동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
앞으로 한국 사회는 광장의 촛불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는 일터의 민주주의로 나아가야만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일터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 시대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개편된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의 출범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배제되고 소외돼온 청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회 각계각층과 동등하게 대화하고 정책을 협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는 건 우리 사회가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로 진전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야정 협의체가 탄력근로제 확대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는 바람에 사회적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민감한 사안인데도 노동계 반대조차 묵살한 채 정치권이 주도해 일방적 합의가 이뤄지고 말았다. 바로잡아야 한다. 노동정책은 반드시 노-사 당사자 간의 토론과 합의를 거쳐서 결정해야 한다. 노동정책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미조직 노동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당한다. 대변되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포함되는 사회적 대화가 꼭 필요한 이유이다. 따라서 우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도 새롭게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의 논의를 존중해야 한다.
오늘 출범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는 청년유니온,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적 대화를 진전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동안 대변되지 못했던 수많은 노동의 목소리를 수렴하며 불안정 노동의 현장을 드러내고, 적실한 정책요구안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의 계층별 위원회를 통해 조직되지 못한 청년, 여성, 비정규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담아내는 노력과 활동들을 펼쳐나갈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사회적 대화가 성숙하도록 끈질기게 토론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 가교 역할을 자임하면서 최선을 다해나갈 것이다.
2018년 11월 22일
전국여성노동조합 / 청년유니온 / 한국비정규노동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