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일터, 더 이상은 안 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고 김용균 씨 장례를 치른 지 10일 만에 컨베이어벨트를 유지·보수하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또 사망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죽음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현대제철에서 발생한 사고다.
2010~2011년 6명, 2012년 5명, 2013년 10명, 2014년 1명, 2015년 1명, 2016년 2명, 2017년 1명, 2018년 1명. 당진 현대제철에서 일하다 산재로 유명을 달리한 하청 노동자들이다. 해마다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이 2019년 2월 20일에도 이어졌다. 얼마나 더 많은 목숨이 희생돼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2013년에는 밀폐공간에서 작업을 하던 노동자 다섯 명이 함께 질식사하기도 했다. 밀폐공간에서 작업할 경우 환기를 하고 산소 상태를 평가해야 하는데도 작업공정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당시 노동부는 산업안전법 위반 사항을 적발해 시정조치 명령을 내렸지만 변화는 없었다. 결국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고용노동부 장관과 직원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업의 책임도 적지 않다. 지난 2월 20일, ‘유가족과 함께하는 기업처벌법 이야기 마당’ 자리에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씨를 비롯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등 유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한 것은 산재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대응은 사건 은폐에민 혈안이 됐다는 것이다.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은 도외시한 채 기껏 경제적 보상으로 사고를 마무리하는 데만 급급했다.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산재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당진공장에서만도 134건의 비정규직 노동자 산업재해가 발생했는데 산재 2건 중 1건은 산재보험이 아닌 공상으로 처리되었다고 한다. 회사 측이 산재를 은폐하기 위해 산재보험이 아닌 공상으로 처리해온 것이다. 실제로 협력업체에 산재 건수가 많으면 원청이 낮은 점수를 매겨 도급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산재를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
일명 ‘김용균법’이라고 일컬어지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이번에 사망한 이 씨는 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1년 유예기간을 두고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도급 금지 측면에서 원청이 하청을 직접고용해야 하는 업종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적용 대상이 되지 않지만,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 보건 조치를 취해야 하는 책임을 지도록 한 부분엔 해당이 됐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일부 진일보했더라도 충분하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로 당하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빈발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사고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 기준이 강화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 이 법은 고 노회찬 전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발의되어 있지만, 아직 상임위에 상정도 안 되어 있다.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에 노출되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을 더 이상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 현재로선 정부의 관리 감독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믿기 어렵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빠른 시일 안에 제정해 살인의 형량에 준하는 강력한 처벌을 할 때에야 기업들이 책임 있는 행동을 할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즉각 제정하라!
2019년 2월 22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