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고용노동부의 부실한 근로감독 및 시정조치를 규탄하며
불법파견 사업장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처벌을 촉구한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제정된 파견법은 판도라의 상자였다. 한국 사회 노동시장의 과반이 비정규직으로 넘쳐나고 차별이 심화되는 결정적 분기점이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람장사와 중간착취를 용인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합법적으로 허용돼 파견, 용역, 도급, 사내하청, 소사장 등 다종다양한 고용형태가 급속하게 늘어났다. 지금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일정 기간 근속 후 정규직 전환마저 막는 풍선효과의 주범이 됐다. 파견을 비롯한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는 최근 당사자들의 투쟁이 전국 도처에서 빈발하면서 우선 해결해야 할 비정규직 의제로 부각됐다.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노동시장 유동성 증대를 목표로 도입된 파견법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그나마 업종 제한을 통해 파견노동 사용의 남용을 막고 파견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기간을 제한하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애초 취지와는 다르게 기업들이 2년마다 정규직화를 회피하기 위해 파견노동자를 교체하고, 사내하청과 같은 불법파견이 횡행하기 시작했다. 파견이 금지된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에서 사내하청이 사용되면서 더 많이 일하고 더 적은 임금을 받는 노동착취가 지속되었다.
이미 우리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으로 불법파견의 심각성과 무법천지 대기업, 해결 의지가 없는 정부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법원의 판결마저 묵살당하고 초법적인 권력으로 군림하는 슈퍼갑 재벌 자본의 위세도 목도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 혐의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면죄부 판정을 보면서 대기업 앞에 고개 숙인 정부의 민낯도 보았다. 이처럼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전자서비스, 현대자동차로부터 지방공단의 중소영세업체들까지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이 횡행하고 있다. 공식적인 통계자료에 포착되지 않고 있는 수많은 불법파견업체가 전국적으로 매일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파견은 이제 일터에서 불법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태가 심각하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불법파견을 방조해왔다.
그러던 중 고용노동부가 2014년 10월, 불법파견 의심 사업장 210곳을 근로감독했다고 한다. 불법파견의 심각성에 더 이상 뒷짐지고 있기 어렵게 된 고용노동부가 뒤늦게라도 근로감독에 나선 것은 당연한 책무이다. 그런데 불법파견을 뿌리 뽑겠다는 목적으로 칼을 뽑은 바에는 전국 단위의 대대적인 근로감독을 펼쳐야 하지만, 정부는 210곳 조사에 그치며 역시 불법파견을 근절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반증했다. 그나마 적발된 업체에 대해서도 불법파견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도록 시정 지시하는데 그쳤다. 엄연한 불법행위에도 정부는 강제력이 없는 시정 지시로 또 한 번의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 언론을 통해 드러난 것만 봐도 불법파견이 의심되는 사업장이 여러 곳이다. 대기업인 삼성전자서비스, SK브로드밴드, LGU+ 등의 노동자는 도급업체 소속의 간접고용 노동자이다. 동시에 원청이 징계권을 행사하고 직접 업무지시를 하는 등 위장도급의 요소가 명백하다. 그럼에도 원청은 한 발 물러나 사용자의 의무를 회피하고 권리만 누리려 한다. 안산시화공단을 비롯해 중소영세사업장이 밀집한 지방공단이 불법파견의 온상이 된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도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작년 말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통해 불법파견 요소를 원청의 ‘배려’로 둔갑하는 기막힌 꼼수까지 부렸다.
불법파견에 대한 정부의 소홀한 대처가 불법파견 남용을 용인하고 조장하고 있다. 불법파견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가 없다면 기업은 불법파견으로 인건비를 절감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의 그릇된 욕망에 제동을 걸고 일터에서 준법을 실현하며 비정규직 노동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고유한 역할이다. 정부는 더욱 엄정하게 각 업종별 불법파견 근로감독을 대폭 확대하고, 전국 주요 공단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실태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간의 솜방망이 처벌을 지양하고 적발 사업장에 대한 강력한 사법처리로 불법파견을 근절하고 노동시장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가 강조해온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도 불법파견 근절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의지가 필수조건이다. 우리는 고용노동부의 부실한 근로감독 및 사후 시정조치를 규탄하며, 불법파견 사업장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처벌을 촉구한다.
2015. 2. 5.
한국비정규노동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