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메탄올 실명 사고, 그런데 파견을 늘리겠다고?
뿌리산업에도 노동자를 파견할 수 있도록 하는 뿌리산업 파견법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다. 20대 국회 개원 후 새누리당이 1호 법안으로 발의한 노동법 개악안의 일부다. 대통령까지 나서 법안이 통과되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고 나섰다. 정작 현장의 파견노동자는 시력을 잃는 치명적인 산업재해를 당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대통령이 말한 그 일자리에서 죽어 간 노동자가 한 둘이 아니다. 산업재해는 평범한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끔찍한 사고와 질병이 대부분이다. 용광로에 빠져 죽고 고압선에 감전되고 듣도 보도 못한 희귀병에 걸려 죽는다. 그리고 뭔지 모를 약품에 부품을 세척하던 파견노동자는 실명을 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올해 2월17일자로 파견노동자 실명사고를 규탄하며 뿌리산업 파견법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새누리당은 뿌리산업 파견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현장간담회를 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두 명의 파견노동자가 메탄올 때문에 실명한 게 추가적으로 확인됐다.
메탄올 실명 사고는 안전관리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드문 사건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여당의 수준이 후지긴 하지만, 사건 발생 후 고용노동부는 메탄올 취급업체 3100여개 사업장을 일제 점검하는 등 재발방지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불과 8개월 만에 같은 사고가 반복됐고, 그것도 시민단체를 통해 밝혀졌다. 이럴 거면 고용노동부가 일제 점검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
파견은 비정상적인 고용형태고, 불안정하고, 저임금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기업 생산성에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여러 가지 이유를 차치하고라도, 우선 파견노동은 위험하다. 파견노동자 규모 파악조차 되지 않는 마당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지, 사업장 환경은 안전한지, 고용노동부는 아무 것도 모른다. 간접고용 규모를 파악하겠다며 시작한 고용형태공시제도 믿을 만한 자료가 못 된다. 그런데 파견을 늘리겠다고?
파견노동자도 사람이다. 안전하게 일 할 권리는 헌법 상 기본권이다. 무엇보다 산업재해가 끔찍한 이유는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온전한 몸으로 가족 곁에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시민들의 준법의식이 없어져 사회의 법과 질서가 엉망이 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은 사소한 사건이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깨진 유리창부터 없애야 한다. 불법파견을 감독하고 안전한 일터를 위한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그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대통령, 여당, 고용노동부가 할 일이다.
2016년 10월 7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