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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노동운동사에는 ‘한국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토대는 사교육에서 나왔다’는 구절이 실릴지도 모른다. 국내 유일의 비정규직 문제 전문단체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박승흡(40) 소장이 3년 전까지 잘 나가는 논술강사이며, 입시학원 원장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교육에서 벌어들인 돈은 비정규 노동운동 초기의 절실한 ‘자금’이 됐다. 비정규노동센터의 사무실 역시 서대문 한 입시학원의 꼭대기층에 있다.
2000년 5월 비정규노동센터의 문을 연 뒤 박 소장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외롭게 좌충우돌해왔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800여만명의 비정규직들은 언제라도 ‘계약해지’당할 수 있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으며 정규직보다 훨씬 긴 시간 일하면서도 월급은 절반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이는 분명 거대한 사회문제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주말 당선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이 57%인 것은 비정상적인 유연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사회는 오랫동안 이 ‘비정상적인 유연성’의 고통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박 소장은 어떤 진단과 희망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 18일 그를 만났다.
-교사에서 학원강사로 또 비정규직 노동운동으로 뛰어든 삶이 독특하다.
=대학 시절 인천 등에서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을 했다. 졸업 뒤 국어 교사로 발령받았지만 6개월만에 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해직됐고, 91년에 조직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1년 만에 나오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이념은 무너지고, 동지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10년 가까이 열심히 살았던 삶이 다 헛깨비같았다. 1년 동안 부인에게 용돈 받아 술만 마시며 보내다가 93년 밥벌이를 위해 학원 강사가 됐다. 결국 학교에서 못한 강의는 학원에서 신물이 나게 했다. 돈은 많이 벌었다. 그런데 한 5년 해보니까 더 이상 이렇게 인생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학원에 나가면서도 꼭 다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계속했다. 98년 9월 마지막 강의를 하고 학원 관계자 등 주위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학원을 나왔다.
-다시 노동운동을 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선택한 이유는
=90년대 초반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우리가 대중을 이끈다는 계몽적 운동, 이념이 앞서는 운동은 너무 오만했다고 반성했다. 다시 운동을 한다면 한명의 고통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현실에 기반을 둔 운동을 하자는 다짐을 했다.
정규직 남성중심 노동운동 한계
학원 일을 하면서 노동현장에 몸담고 있던 친구들과 계속 만나고 노사관계대학원에도 다녔다. 거기서 98년 구제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비정규직들은 엄청나게 늘고 있었지만 기존 노동운동으로는 속수무책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비정규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싶었다. 현재도 그렇지만 노동운동은 대공장 정규직 남성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그 한계를 돌파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센터의 주요한 활동은 무엇인가
=제일 처음 시작한 일은 워킹보이스 사이트( www.workingvoice.net)다. 흩어져 있는 비정규직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인터넷을 도구로 한 것인데 이제 와서 보면 ‘먹물’들의 기획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현실에서 청소, 경비직, 계산원 등 비정규직들은 인터넷 접속할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워킹보이스는 비정규직에 대한 각종 자료와 통계, 연구자료 등을 정리하고 문제를 알리는 의미가 있다.
또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연구와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작업도 중요하게 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를 직접 상담하는 일도 계속해왔는데, 노무사 한 분이 상담을 하다가 사연이 폭주해 올해 민주노무법인을 세웠다. 이밖에 월간 <비정규노동>을 내고, 해외 비정규노동자들과 교류 사업도 해왔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단체가 별로 없어 이것저것 하다보니 잡탕이 되는 것 아닌가 조바심도 느끼고 운동방식이 너무 나약하다는 비판도 받지만 과거의 틀로는 의미 있는 쪽으로 갈 수 없다는 신념이 있다.
-세계적으로 계약직,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추세 아닌가
=우선 수치로만 봐도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57%나 된다. 세계적으로 봐도 유럽의 비정규직은 30% 정도인 스페인 빼고는 10~20% 수준이다. 일본도 20% 수준이고, 우리나라처럼 50%가 넘는 나라는 없다. 비정규직 비율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남용방지·균등대우가 세계적 추세
더 중요한 것은 정부나 재계에서는 세계적으로 고용유연화가 추세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시간당 임금에 대해서는 동등한 대우를 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일찍부터 사회협약을 통해 비정규직 남용 방지, 균등대우 등의
2000년 5월 비정규노동센터의 문을 연 뒤 박 소장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외롭게 좌충우돌해왔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800여만명의 비정규직들은 언제라도 ‘계약해지’당할 수 있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으며 정규직보다 훨씬 긴 시간 일하면서도 월급은 절반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이는 분명 거대한 사회문제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주말 당선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이 57%인 것은 비정상적인 유연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사회는 오랫동안 이 ‘비정상적인 유연성’의 고통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박 소장은 어떤 진단과 희망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 18일 그를 만났다.
-교사에서 학원강사로 또 비정규직 노동운동으로 뛰어든 삶이 독특하다.
=대학 시절 인천 등에서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을 했다. 졸업 뒤 국어 교사로 발령받았지만 6개월만에 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해직됐고, 91년에 조직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1년 만에 나오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이념은 무너지고, 동지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10년 가까이 열심히 살았던 삶이 다 헛깨비같았다. 1년 동안 부인에게 용돈 받아 술만 마시며 보내다가 93년 밥벌이를 위해 학원 강사가 됐다. 결국 학교에서 못한 강의는 학원에서 신물이 나게 했다. 돈은 많이 벌었다. 그런데 한 5년 해보니까 더 이상 이렇게 인생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학원에 나가면서도 꼭 다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계속했다. 98년 9월 마지막 강의를 하고 학원 관계자 등 주위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학원을 나왔다.
-다시 노동운동을 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선택한 이유는
=90년대 초반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우리가 대중을 이끈다는 계몽적 운동, 이념이 앞서는 운동은 너무 오만했다고 반성했다. 다시 운동을 한다면 한명의 고통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현실에 기반을 둔 운동을 하자는 다짐을 했다.
정규직 남성중심 노동운동 한계
학원 일을 하면서 노동현장에 몸담고 있던 친구들과 계속 만나고 노사관계대학원에도 다녔다. 거기서 98년 구제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비정규직들은 엄청나게 늘고 있었지만 기존 노동운동으로는 속수무책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비정규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싶었다. 현재도 그렇지만 노동운동은 대공장 정규직 남성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그 한계를 돌파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센터의 주요한 활동은 무엇인가
=제일 처음 시작한 일은 워킹보이스 사이트( www.workingvoice.net)다. 흩어져 있는 비정규직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인터넷을 도구로 한 것인데 이제 와서 보면 ‘먹물’들의 기획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현실에서 청소, 경비직, 계산원 등 비정규직들은 인터넷 접속할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워킹보이스는 비정규직에 대한 각종 자료와 통계, 연구자료 등을 정리하고 문제를 알리는 의미가 있다.
또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연구와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작업도 중요하게 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를 직접 상담하는 일도 계속해왔는데, 노무사 한 분이 상담을 하다가 사연이 폭주해 올해 민주노무법인을 세웠다. 이밖에 월간 <비정규노동>을 내고, 해외 비정규노동자들과 교류 사업도 해왔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단체가 별로 없어 이것저것 하다보니 잡탕이 되는 것 아닌가 조바심도 느끼고 운동방식이 너무 나약하다는 비판도 받지만 과거의 틀로는 의미 있는 쪽으로 갈 수 없다는 신념이 있다.
-세계적으로 계약직,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추세 아닌가
=우선 수치로만 봐도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57%나 된다. 세계적으로 봐도 유럽의 비정규직은 30% 정도인 스페인 빼고는 10~20% 수준이다. 일본도 20% 수준이고, 우리나라처럼 50%가 넘는 나라는 없다. 비정규직 비율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남용방지·균등대우가 세계적 추세
더 중요한 것은 정부나 재계에서는 세계적으로 고용유연화가 추세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시간당 임금에 대해서는 동등한 대우를 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일찍부터 사회협약을 통해 비정규직 남용 방지, 균등대우 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