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잇] 자전거 배달 노동자의 죽음이 던진 숙제

by 센터 posted Apr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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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우리동네노동권찾기 대표

 

 

지난 3월 말 한 배달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습니다. 두 딸의 어머니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2월까지 하루 8만 보 이상을 걸으며 도보배달을 하였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운전면허 없이도 배달할 수 있는 전기자전거를 사서 운전 연습을 하고 3월부터 일을 다시 시작했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 참변을 당했습니다. 같은 배달 노동자, 더구나 같은 전기자전거를 이용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요? 저의 마음은 더욱 아프고 참담했습니다. 그전에는 마음은 있었으나 실제로 행동에 나서지 못했지만, 이때만큼은 추모 현수막을 준비하고 사고 현장에 찾아가고,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고 발인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쿠팡 본사 앞에서 이뤄진 기자회견에서 분노를 담아 몇 마디 하였습니다. 

 

현수막.jpg

두 딸의 엄마인 배달 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하며 라이더유니온이 건 현수막

 

보너스 알람 대신 필요한 것

 

“어제저녁 쿠팡 배달 앱에서는 5시 반에서 8시 사이 7건 하면 보너스를 2만 6,000원 준다는 알람이 울리더군요. 평소 같았으면 보너스 금액에 혹해서 해볼까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제는 정말 정나미가 다 떨어지더군요. 불과  하루 전에 자신의 회사를 위해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의 명복을 빌고,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하는 알람 대신에 다시 노동자들을 시간의 경쟁 속으로 몰아넣는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기업이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고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정말 치를 떨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라는 존재를 법인이라고 해서 사람의 자격을 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런 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면 실제 운영도 최소한 사람다운 모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법적으로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는 특수고용 노동자, 자영업자, 프리랜서니까 아무리 자기 회사 일을 하다 죽었다 하더라도 그 죽음은 혼자 감당하는 게 당연한가요? 그래서 ‘추모 알람’ 대신 ‘보너스 알람’을 보낸 것입니까?

 

사실 쿠팡의 이런 행태는 놀랍지도 않습니다. 쿠팡은 배달 노동 시작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회사입니다. 낮은 것이 장점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지 이제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올해 4월 11일이 되어서야 겨우 시간제 유상운송보험(말 그대로 배달을 하는 동안에만 발생한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하는 시간제 손해보험)을 도입하였습니다. 그나마 자전거는 순차적 도입이라는 이름으로 도입이 더 늦춰질 예정입니다. 배달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야, 그 죽음을 알리고 분노하는 노동조합의 외침이 이어져서야 이제 겨우 한 발 내디딘 것입니다. 

 

제발 고용 관계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단 1분이라도 우리 회사의 일을 해준다면 그 시간은 회사 직원이라 여기고 그때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 진정성을 가지고 대처하길 바랍니다. 그래야 지속 가능하고 사랑받는 회사가 되지 않을까요?

 

도로 위의 약자, 배달 노동자들

 

배달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 더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들을 향한 ‘혐오’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사망사고 기사에 달리는 댓글마저 죽을 만했다고, 자기 잘못 아니냐며 비난합니다. 그리고 거리의 무법자, 난폭운전만 하는 나쁜 사람들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분명 존재합니다. 실제로 난폭운전을 하는 노동자들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그렇다고 이 노동자들이 강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도로 위에서 이들은 약자의 처지에 있습니다. 

 

자전거 라이더 입장에서 보면, 자전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입니다. 법상으로는 분명히 차에 해당해 도로로 다녀야 하는 것이 맞지만, 도로 가장자리로 붙어서 가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차선 끝에 붙어서 간다고 해도 버스나 트럭 등 큰 차가 그 옆을 지나가면 스치기만 해도 나가떨어지기 때문에 정말 무섭습니다. 바람을 일으키기 때문에 휘청이기까지 합니다. 최대한 갓길로 다닙니다만 정비가 잘 안 되어 있어서 울퉁불퉁하고 온갖 돌멩이들, 못이나 볼트 등 펑크를 유발하는 이물질들도 많아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습니다. 웬만하면 올라가기 부담스럽지만, 인도로 다닐 때는 최대한 속도를 줄이고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지나쳐 갑니다. 결국, 불법행위를 매일 하고 다닌다는 것이지요.

 

전장연과 연대해야 하는 배달 노동자들

 

요즘 우리 사회의 큰 이슈 가운데 하나가 ‘장애인 이동권’ 문제입니다. 쿠팡 노동자 사고를 보면서 ‘이동’에 대한 권리가 장애인만의 요구는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교통약자에 대한 문제이고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자전거도 킥보드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교통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투쟁은 배달 노동자들의 싸움이 되어야 합니다. 전장연이 이동권을 보장받아야 배달 노동자들도 권리의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좁디좁은 도로에 차 다니기도 힘든데 자전거를 위한 공간을 주라고?”라는 물음 대신 “모두가 안전하게 다닐 방법은 없을까?”라는 토론을 하고 싶습니다. 이 토론을 가능하게 하려면 절대다수를 불편하게 하는 소수라는 비아냥과 비난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불법운전하는 도로의 무법자로 바라보면 안 됩니다.

 

우리의 권리는 연결되어 있고 확대될 수 있어서 나의 안전이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의 이동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하는 것이 배달 노동자들의 안전배달료, 산재 전속성 폐지 등과 떨어뜨려 바라볼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문명’입니다.

 

P.S.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 두 분이 강남에서 배달 중에 사망하는 참사가  또 일어났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발 다시는 명복만 비는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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