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파괴에 맞선 2000일, 우리 모두의 투쟁이었다

by 센터 posted Apr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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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

 

 

6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본다.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날들. 노동조합이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았는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6년을, 표현 그대로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뎠다. 그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작년 겨울, 우리가 늘 출근하는 그 길목에 천막농성장을 차렸다. 정년을 앞두고, 이 일터를 떠나기 전 마지막 해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 민주노조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던 백형자 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 사무장은 올해가 정년이다. 민주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누구나 기피하는 수술실에서 5년 1개월 동안 일하고 있다. 그는 그렇게 힘들게 보낸 세월을 끝낸다는 홀가분함이 아닌 조합원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것이, 더이상 현장에서 함께 싸울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노조 파괴 진상이 검찰 기소로 드러났지만,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이곳을 떠날 것 같아요. 막상 2022년이 되고 보니 이제 실감이 나고, 마음이 막 급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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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는 ‘노조 파괴 범죄 책임자 처벌, 악질 용역업체 태가비엠 퇴출, 세브란스병원 사죄’를 요구하며 신촌세브란스병원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노조와 함께 울고 웃은 6년의 시간. 조종수 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 전 분회장은 노조 가입 번호가 4번이다. 원하청이 공모한 노조 파괴 공작. 세브란스병원은 민주노조 분회장이라는 이유로 조종수 씨를 역시 노동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업무인 쓰레기 수거 업무로 배치했다. 150kg에 육박하는 쓰레기를 1500L짜리 카트 천장에 닿을 정도로 실어 하루 15~20회 운반해야 한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악취도 심해 고정적으로 이 일을 오래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버티기 힘들어해서 회사도 1년 정도가 지나면 다른 업무로 전환배치를 해줬다. 그러나 민주노조 분회장에게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할 일은 이것밖에 없다.”라는 모욕을 주며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업무를 바꿔주지 않았다. 조종수 씨 역시 ‘내가 분회장인데 내가 좌절하면 다른 조합원들은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민주노조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그는 분회장이 된 후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회사의 회유와 협박으로 민주노조를 탈퇴해야 했던 조합원 이야기도, 어용노조 조합원이지만 산재를 당해 도움을 요청했던 노동자 이야기도, 민주노조에 가입하기는 두렵지만 관리자의 괴롭힘에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 이야기도. 그는 민주노조 조합원이든 아니든 이 지옥 같은 현장에서 고통받는 모든 노동자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노조 파괴에 맞선 시간, 2월 17일이면 2000일이 된다. 이날은 천막농성을 한 지 100일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내가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 얼굴 보면, 정말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그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청소 노동자들은 착취와 차별, 모욕과 무시가 만연한 일터에서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민주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를 만들었다. 2016년 7월, 출범식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아침 노동자들을 대강당에 모아놓고, 병원 직원까지 와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하나로 뭉치자는 이야기를 했다. 아침까지 대접받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퇴근 전, 병원과 하청업체는 갑자기 노동자들을 대강당에 모아놓고 문을 잠궈버렸다. 그날 4시, 민주노조 출범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날, 노동자들은 그 강당을 박차고 나와 출범식에 함께했다. 처음, 회사에 대항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낸 날이었다.

 

그날 이후 회사의 민주노조 파괴가 시작되었다. 3개월 쪼개기 계약, 민주노조 조합원 표적 자리 이동, 일상적인 감시와 트집, 시말서 등 징계 남발, 해고 협박 등 지독한 직장 내 괴롭힘이 일상적으로 자행되었다. 그것을 수단으로 한 민주노조 탈퇴 종용이 끈질기게 지속되었고, 조합원들은 이를 견디다 못해 노조를 탈퇴하기 시작했다. 140명이었던 민주노조 조합원이 30명까지 줄었다. 나중에 노동부 수사를 통해 이미 원하청이 노조 파괴를 위해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었음을, 이러한 탈퇴 공작이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노동부의 늦장 수사로 회사는 증거 대부분을 인멸할 시간을 벌었지만, 나중에 밝혀진 문건들만 해도 노조 파괴 공작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들이었다. 세브란스병원과 하청업체 태가비엠은 2016년 6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노조 파괴 문건을 최소 15개 이상 만들고 대책회의를 수차례 가진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전조에 비해 상대적 업무량이 적은 오후조에 현장관리 전환 방침 시그널을 유포하여 긴장감을 조성하고, 철산노(친 기업노조) 지부장 야망이 있는 이△△이 한○○가 기 작업해 온 2명(김○○, 이○○)을 포함 나머지 인력을 규합하여 8명의 탈퇴서를 제출.”

“부당노동행위를 의식하여 노노 대립으로 진행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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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수 전 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 분회장은 민주노조 분회장이라는 이유로 5년 2개월간 누구나 기피하는 쓰레기 운반 업무를 해야만 했다. 

 

태가비엠은 근무 인원, 작업 내용, 휴무자 명단 등을 정리한 업무일지를 매일 작성하여 원청인 세브란스병원 사무팀에 보고하여 결제를 받아 왔다. 세브란스병원은 제출된 업무일지에 특이사항을 기입하여 다시 태가비엠에 업무를 지시했고, 원하청이 노조 파괴를 위해 긴밀하게 협조해온 기록들도 나열되어 있다. 위 내용들은 그 업무일지에 기록된 보고·지시 사항들이다. 이뿐만 아니라 민주노조 조합원들의 조합 가입 성향을 분류하고, 그에 따른 노조 탈퇴 전략을 세우고 실행했다. 또한, 어용노조에 노조 회비를 지원했다는 기록도 나왔다.

 

2021년 5월, 민주노조를 설립한 지 5년 만에 세브란스병원과 용역업체 (주)태가비엠 관계자들이 부당노동행위로 기소되었다. 형사재판이 진행된 지 300일이 되었지만, 세브란스병원은 사과도 대화도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노조 파괴 공모 업체이며 현재까지 민주노조 조합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으면서 괴롭힘을 자행하는 악질 용역업체 태가비엠과 재계약을 한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세브란스병원 청소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천막을 지키며, 매주 목요일 집회를 진행하고, 세브란스병원으로 행진해 병원장에게 노조 파괴 사태 해결을 요구하는 항의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백형자 씨는 말한다.

“우리가 현장을 떠나더라도 남은 이들이 꼭 우리가 함께 만든 노동조합을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조종수 씨는 매일같이 현장을 돌면서 노동자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사탕 아저씨’다. 그런 그를 위해 사탕을 백형자 씨가 준비해주곤 했다. 고생 많으시다는 인사와 함께 건네는 사탕. 그렇게 만난 사람들을 위해 그는 정년이 지난 후에도 투쟁에 함께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세브란스병원이 ‘사죄’하는 것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제 나이가 63세인데, 저는 태어나서 가장 잘한 선택이 노동조합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거든요. 저는 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가 제 분신 같아요.”

 

노조 파괴에 맞선 2000일은 세브란스병원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모든 부당함을 없애기 위해 투쟁한 날들이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의 날들이었다. 2000일은 우리 모두의 투쟁이었다. 누군가가 버티며 지켜온 그 역사를 지키기 위한 시간이 남았다. 이제 남겨진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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