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잇] 숫자로 보는 도자킥의 노동 환경

by 센터 posted Dec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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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우리동네노동권찾기 대표

 

 

제가 일하고 있는 우리동네노동권찾기에서 올해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지원사업으로 배민커넥트 노동 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500명을 목표로 열심히 홍보물 배포하고, 강북구·노원구·종로구·광진구·동대문구 등에서 커피차를 하면서 알렸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방역 4단계가 꽤 길게 유지되면서 활동이 위축되었고, 결국 130여 명의 라이더가 설문에 참여했습니다. 그중에 도자킥(도보, 자전거, 킥보드 배달)은 81명이었습니다.

 

보고회.jpg

2021년 12월 8일 유튜브로 방송한 ‘배민커넥트 노동 환경 실태조사 결과보고회’(@우리동네노동권찾기)

 

12월에 유튜브를 통해 ‘배민커넥트 노동 환경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를 했습니다. 결론은 커넥트든(파트타임) 라이더든(전업) 일하는 형태는 같기 때문에 닥친 문제가 다르지 않고, 요구사항도 당연히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업체는 일할 사람을 무제한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제대로 된 안전장치 없이 방치되어 있습니다. 시간 제한을 풀었으니 이제 알아서 돈을 벌 수 있으면 벌어 봐라 라는 느낌입니다. 당사자들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니 별다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자유롭게 일하면서 이 정도 수입을 벌 수 있으니 요구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배달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노동조합도 전업 라이더들에게 더 집중할 수밖에(?) 없기에 여력이 없어 보입니다. 이번 실태조사는 배달 노동자들 가운데 사각지대에 놓인 도자킥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에도 커넥트를 하면서 더 많은 도자킥을 만나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실태조사 결과 중에 도자킥만을 따로 떼서 보니 몇 가지 흥미로운 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통계 전문가는 아니니 가볍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숫자를 키워드로 살펴보겠습니다.

 

98%

 

일터와 삶터가 같은지를 기준으로 지역 노동자(주민 노동자라 불리기도 합니다)인지 아닌지 구분합니다. 커넥트들의 98%는 사는 곳에서 일을 합니다. 단 2%만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콜이 많은 지역(강남구, 종로구)으로 원정을 나갔습니다. 물론, 원정을 나가는 노동자들도 꽤 됩니다. 이런 지역에는 ‘공유창고’가 있어 일을 마치고 자전거 보관 겸 충전을 해놓고 퇴근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몸도 피곤한데 다시 자전거를 타고 노원이나 동대문까지 돌아온다고 생각해보면 끔찍하거든요.

 

그런데도 많은 도자킥은 내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노동자들을 지역에서 잘 만난다면 의미 있는 기획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커뮤니티 맵핑’이 지역 활동의 매개로 활용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 노동자들이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어떤 문제나 개선사항을 발견하면 온라인 지도에 표시해놓는 겁니다. 그러면 그걸 본 단체나 기관이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겠지요. 하나의 예시이지만, 단순히 배달 노동을 넘어선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역할을 잘 만들면 좋겠습니다.

 

22%

 

배민커넥트들의 22%는 여성입니다. 전업 라이더는 4%로 나타났습니다. 예상할 수 있는 수치입니다. 아무래도 여성이 오토바이를 쉽게 접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상대적으로 자전거나 킥보드는 배우기도 쉽고 부담 없이 접근이 가능한 배송수단입니다. 이게 왜 고민이 되는 수치냐면, 배달하다 보면 불편한 상황이 가끔 생기는데, 대부분 고객을 만날 때 일어납니다.

 

문 앞에 두고 가라는 요청사항이 있으면 직접 대면할 가능성이 작지만, 이런 요청사항이 없을 때는 직접 전달해야 합니다. 이럴 때 가끔 거의 나체 수준으로 음식을 받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마 고객은 라이더의 배송수단은 알 수 있지만, 성별까지는 모를 텐데 이런 민망한 상황을 만드는지 도저히 이해는 안 됩니다. 다만, 저야 그냥 기분이 좀 별로다 하고 돌아서면 그만인데, 만약 여성 배달 노동자라면 저처럼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훨씬 더 공포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아주아주 오래전에 ‘노예’가 있었을 때, 노예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나체로 돌아다녔다고 하죠. 노예는 그냥 ‘일하는 도구’에 불과하니까요. 배달 노동자를 ‘음식 가져다주는 드론’ 정도로 생각하는 건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의도가 있든 없든 배달 음식을 받을 때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10%

 

도자킥과 오토바이의 노조 가입 의사 비율 차이입니다. 가입 의사를 5점 만점으로 했을 때 오토바이는 3.5, 도자킥은 2.97로 평균치가 나왔습니다. 이것을 백분율로 환산하면 대략 둘 사이에 10% 차이가 납니다. 이 수치가 애매해 보이긴 합니다만, 노조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가입 의사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노동운동을 하는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이 10%의 간격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줄이려는 의지는 있는가? 다행스럽게도 배달 노동자들의 노조가 두 개나 있습니다. 노조이니까 당연히 투쟁도 하고 파업도 합니다. 노조가 파업할 때 그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체인력 투입’입니다. 파업의 효과를 반감시키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도자킥은 그 대체노동을 충실히 수행할 수도 있는 미래의 위험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걸 다 떠나서 함께 노동하는 우리의 동료입니다. 당연히 함께 어깨 걸고 연대하고 단결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요?

 

84만 원

 

유일하게 백분율이 아닌 금액 수치입니다. 도자킥이 한 달에 버는 수익의 평균입니다. 물론, 이 수치가 진짜 평균이라 하기엔 부족함이 많습니다. 지역 차, 시간 차, 배송수단의 차이 등 변수가 정말 많이 작용하여 나온 결과가수익이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도 84만 원은 적은 수치가 아닙니다.

 

실제 일하는 시간도 평균 21시간입니다. 25%는 주 30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배달의민족 광고대로 퇴근하고 한두 시간, 시간 날 때 가끔 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 겁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계속하는 이야기지만, 이 노동자들을 조직안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묻고 싶습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현장 노동자가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유튜브로 보고회를 진행했습니다. 이 글의 많은 내용은 그 대화에서 가져왔습니다. 기호운 정책부장님과 우동희 현장 노동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2022년에도 더 많은 도자킥 노동자들을 만나고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전하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배달 노동자의 노동이 서로 이어질 수 있고 더 큰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 ∙ ∙ ∙ ∙ ∙ ∙

편집자주 : 꼭지명 ‘올라잇’은 ‘모든 라이더를 잇는다’라는 의미다. ‘올’은 ALL, ‘라’는 라이더, ‘잇’은 잇다. 모든 배달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만나고 이어질 수 있는 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꼭지명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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