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신기한 스쿨버스’를 타고 원주로 향하다

by 센터 posted Oct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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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예린 센터 청년 활동가

 

 

2021년 9월 10일, 30명의 청년 학생들이 ‘신기한 스쿨버스’를 타고 원주에 방문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조합원들을 방문했다. 올해만 두 번째의 여정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직영화와 노동 처우 개선에 힘을 싣는 것과 동시에 공정 담론이 ‘MZ세대’라는 말로 포장된 청년들의 전유물이라는 주장에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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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학생들은 ‘신기한 스쿨버스’를 타고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원주를 찾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는 2006년 민간업체에 외주화된 이후 이중의 착취 구조,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 속에서 노동을 이어나갔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선언을 통해 공공기관의 직접고용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담사들의 노동 환경이 전혀 나아지지 않자, 조합원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고객센터 조합원들은 올해 2월 1일, 1차 파업을 시작으로 6월과 7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파업을 진행하며 공단에 직접고용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요구해왔다. 1차 파업 이후 현재까지 계절이 세 번 바뀌면서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본부가 있는 원주 농성장에서 지회별로 교대 숙박 농성을 이어가고 청와대로 두 번의 행진을 진행하는 등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상황을 핑계로 집회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면서 노동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이 8월 3일부터 강원도 원주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1차 행진을 시작했을 때조차 경찰은 야외에서 넓게 거리를 둔 도보 행진을 가로막으며 방해하기도 했다. 현재 노동조합은 4차 파업이 결렬되며 국회를 상대로 직접고용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등 노동자의 권리와 열악한 노동 처우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10월 20일 총파업과 11월 27일 총궐기 투쟁을 바라보고 있다.청년 학생들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연대 방문 일정은 고객센터 3차 파업 중단 이후 지명파업에서 4차 파업으로 전환하는 시기와 맞물릴 것을 예상하고 기획했다. 결국 4차 파업이 결렬된 상황 속에서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경인지회 조합원들과의 연대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4차 파업이 결렬된 상황에서 청년 학생들은 연대 방문이 오히려 고객센터 조합원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처음 맞이하는 30명의 청년 앞에서 조합원들은 약간의 어색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현장의 부당한 노동 환경과 투쟁 의지를 알리는 데에 있어서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1박 2일 일정 중 첫날은 간담회와 문화제를 진행했다. 간담회 1부는 공정 담론에 반박하는 청년 학생의 발제와 조합원들의 질의응답이 있었다. 조합원들은 사전에 청년 학생들이 준비한 질문에 답변하며 화장실도 제때 가지 못하는 비인간적 노동 처우와 끊임없이 경쟁하는 구도로 몰고 가는 공단 분위기, 반복되는 업체의 비리, 그리고 비정규직 제도의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한 조합원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침해받는 노동 환경에 더이상 참지 못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면식도 없는 전국의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같은 마음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가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간담회 2부에서는 조합원들과 청년들이 소규모 모둠으로 나누어 앉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2부의 ‘노동자 빙고 게임’은 노동 경험과 투쟁 경험을 ‘노동자와 학생’의 관계가 아닌 같은 노동자 관계에서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조합원들과 청년들은 “노동을 하면서 서러웠던 경험은?”, “투쟁하면서 보람찼던 기억은?”에 대한 질문에 같은 ‘노동자’로서의 경험을 나누면서 연대를 견고히 하는 값진 경험을 얻었다. 조합원들은 특히 이 ‘노동자 빙고 게임’이 뜻깊었다고 밝혔다. 조합원과 청년이 같은 위치, 같은 시각에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저녁에 진행된 문화제는 청년들이 주도하여 진행했다. 청년들은 이 프로그램을 빌려 조합원들에게 건네지 못했던 연대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문화제에서는 중앙대학교 몸짓패 ‘하랑’과 성공회대학교 율동패 ‘아침햇살’의 몸짓 공연을 비롯해 청년들의 노래 공연과 발언이 이어졌다. 문화제를 통해 발언한 한 청년 학생은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꺼냈다. “저는 영화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오늘 들은 단어 중 가장 생소했던 단어는 승리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영화에는 승패가 없습니다. 영화학은 감정을 배우는 학문이기 때문에 사람을 닮았는데요, 거울과 마찬가지로 사람 또한 영화를 닮았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비극과 희극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비극이라고 해서 무조건 망하는 것도 아니고 희극이라고 해서 무조건 잘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영화와 닮았다면 이 투쟁의 결과와 상관없이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보여주신 모습 자체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감을 나누며 한 조합원은 이런 말을 꺼냈다. “미디어에서 보이는 MZ세대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하고 있었는데, 1박 2일 동안 여러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고 희망을 봤어요.” 또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연대 오시는 분들을 보면 도대체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기에 여기에 와서 자기 개인 시간을 들여서까지 일을 해주고 마음을 써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보면서 저도 많이 바뀌게 된 것 같아요. 이 동지들 보면서 계속 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오게 되고.” 눈물을 흘리는 조합원도 있었다.

 

혹자는 세대론의 관점에서 ‘노학연대’에 대해 허황된 노력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애초에 세대와 경험을 초월하여 노동자 간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 세대에 대한 일반화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 노동자와 학생 간의 벽을 허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동시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도전해나가야 하는 일이다. 그 어려움을 직시하고 계속 도전할 때에만 바위가 언젠간 깨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기한 스쿨버스는 청년 학생의 연대를 노학연대라고 규정짓지 않는다. 언론과 사회에서 MZ세대의 전유물로 프레임 씌우는 공정 담론에 나서서 목소리 높여 반대한다. 그리고 동시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직접 다가가서, 조합원들에게 우리는 공정 담론에 전면적으로 반대한다고, 청년 학생이 아니라 같은 노동자로서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끊임없이 보여주려고 한다.

 

농성장을 방문해 응원의 말을 전하는 것을 넘어선, 세대와 개인의 경험을 초월한 이상적인 연대는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열심히 준비한 ‘노학연대’가 노동자와 학생을 오히려 분리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고, 세대 간에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 학생들은 거기서 멈추고 포기하지 않는다. 청년들은 신기한 스쿨버스를 타고 어디든 방문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의 연대가 쌓이고 쌓여 언젠가 ‘노동권을 위한 투쟁’이 단순히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한 노동자들만의 몫이 아닐 사회가 오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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