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존재들, 도자킥

by 센터 posted Aug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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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우리동네노동권찾기 대표

 

 

장면1

며칠 전 조리대기(‘조대’라 불린다. 식당에서 조리가 길어져 픽업이 늦어지는 상황으로 라이더들은 정말 피하고 싶어한다.)로 유명한 가게에서 그러려니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토바이 라이더 한 명이 씩씩거리며 들어와 자기 음식을 가지고 나가다 혼잣말이지만, 옆에 있던 나와 다른 자전거 라이더들이 들으라는 듯 “오늘 왜 이렇게 콜이 없는 거야? 커넥트들 다 쏟아져 나왔나 보구만.” 하는 것이다. 그 말에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요즘 대기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진 탓에 ‘멘붕’을 넘어 이제 ‘달관의 경지’에까지 이른 지 오래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니 ‘달관’은 ‘분노’로 바뀌게 되었고, 아주 소심한 복수를 하듯 0.1초 째려보고 그 자리를 떠나왔다.

 

장면2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이하 한비네)에서 배달 노동자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기획단으로 참여하게 되어 제안했던 것이 커넥트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은 꼭 하나 만들자고 하였다. 제작 결정이 되어 영상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영상 제작하는 분이 인터뷰 내용을 듣고 한마디 하셨다. “오토바이 라이더랑 어떤 차이가 있는 거죠?” 맞다. 운송수단만 다를 뿐 이들이 하는 일, 어려움, 힘듦, 불만은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이들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가 없다.

 

배달을 시작한 지 18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내내 나의 머릿속에 ‘배민라이더(이하 라이더)’와 ‘배민커넥트(이하 커넥트)’의 관계는 말하고 싶으나 차마 말할 수 없는 문제였다. 쉽게 비유하자면 나에게 둘의 관계는 라이더=정규직, 커넥트=알바 혹은 비정규직이다. 물론, 100% 정확한 비유는 절대 아니다. 기본적으로 특수고용 노동자 신분이기에 이런 비유가 가당키나 할 것인가? 오히려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이런 비유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보는 이유가 있다.

 

첫째,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의 차별 정책 때문이다. 올해 3월, 김봉진 사장은 직원들과 라이더들에게 주식과 격려금 1천억을 쏜다고 발표하였다. 특히 회사 소속이 아닌(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라이더들에게도 100~25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결정을 마다하거나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에 커넥트는 없다. 커피 쿠폰 한 장 뿌리지 않았다. 일은 똑같이 하는데 말이다. 단지 알바라는 이유때문에? 투잡이니까? 이해가 안 된다.

 

또한, 배민에서는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면 휴식 지원비를 제공하겠다고 하였다. 이게 웬 떡인가 싶었는데, 자격조건에 절망했다. 이건 말만 안 했을 뿐, 그냥 라이더만을 위한 혜택이었다. 5월부터 7월까지 배달을 매월 15일 이상 하루에 20건 이상한 날이 조건이었다. 단언컨대 이 조건을 만족할 만한 도자킥(도보, 자전거, 킥보드) 커넥트는 거의 없을 것이다. 부업이 아니라 전업으로 자전거 배달을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무엇보다 커넥트에게 콜 자체를 많이 안 주기 때문에 하루 종일 대기 상태로 있어야 겨우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라이더와 똑같이 대우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라이더들이 훨씬 더 신속하게 배달하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혜택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커넥트들이 속도가 좀 느리고 수행하는 콜은 적어도 업무 자체에서 차이 나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그에 비례해서 정책을 설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휴식 지원비를 라이더에게 10만 원 준다면 충족조건을 커넥트에 맞게 추가 설정을 해서 5만 원이든 3만 원이든 지급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둘째, 서로를 바라보는 애증의 감정이 현실로 존재한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의 책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내용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배민커넥트로 새로 들어온 라이더에게 15초 먼저 배달 콜을 볼 수 있도록 조치했다. 라이더스는 15초 동안 배민커넥트가 가져가고 남은 배달을 처리하는 신세가 됐다.”(p.146)

 

커넥트라는 제도가 도입된 이후 라이더들이 겪었을 혼란이 120% 이해된다. 커넥트들을 무한 모집(유식한 말로 크라우드소싱)하고 싶어한 자본에게 배신감마저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 커넥트들이 온라인 카페에 자신의 수익 인증샷을 올리는 행위는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을 것이다. 매일 지나치는 그들이 배달 노동의 ‘동료’가 아니라 내 수익을 뺏어가는 ‘경쟁자’로만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커넥트들의 좌절 시대다. 배민이 커넥트들의 19시간 제한을1) 4월 말 풀어버리는 대신 콜 배정을 ‘가장 빠르게 배달 가능한 운송수단’에 하겠다고 공지하면서(이 말은 오토바이에 우선 배정하겠다는 뜻이다.) 커넥트들의 대기시간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이전에 한 주 운행시간을 보면 대기시간이 두세 시간을 넘지 않았는데, 지금은 10시간 이상인 경우가 허다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임을 전제하자면, 요즘 지나는 오토바이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날 때가 많다. 더운 날 하염없이 휴대전화를 쳐다보며 30~40분 넘게 우두커니 콜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토바이들은 바삐 오가는 모습을 보면 저들이 내 콜을 다 뺏어간다는 느낌이 안 들 수가 없다.

 

현장.jpg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어온 것일까? 왜 우리는 같은 동료가 아니라 경쟁자를 넘어 적대적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일까? 극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무조건 연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배민은 지금 꽃놀이패를 들고 즐기고 있다고 봐야 한다. 노조가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면 프로모션을 때린다. 수많은 커넥트들은 노조원이 아니기에 프로모션을 하러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노조의 시위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커넥트들이 대거 노조에 가입하고 한목소리를 낸다면 어떻게 될까? 배민이 언제라도 쉽게 방패막이 삼으려고 크라우드소싱으로 모집한 개인들이 진정한 크라우드(군중)가 되어 거꾸로 큰 위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자본주의 초기 공장으로 내몰렸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며 새로운 집단을 형성했던 것처럼 말이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믿는다. 서로가 등을 지고 내 것만 본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서로를 마주 보면 전혀 다른 경험이 된다.

 

20시간 제한이 시작되었을 때 카페에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왜 노동시간 결정을 자기들 마음대로 하느냐는 것이 내 글의 취지였다. 지지하는 댓글을 기다렸다. 하지만 반응은 예상외였다. 19시간 제한이 이해가 된다. 투잡으로 하는 것이니 19시간 이상 안 해도 되고, 무엇보다 전업 라이더들을 생각하면 이 결정이 합리적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어서 금방 시들해졌지만, 찬찬히 이 일을 곱씹어 보면서 ‘이런 생각들이 연대의 단초가 될 수도 있겠구나’ 깨닫게 되었다.

 

배달할 때 가끔 라이더들과 가게에서 마주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자전거로 일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초보 시절에 이모저모 꿀팁도 알려주는 배려까지 받았다. 서로의 처지와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해 주는 것. 그리고 우리는 한편이라는 대전제만 잊지 않는다면 우리가 상대해야 할 대상은 ‘동료’가 아니라 ‘자본’이 될 것이다. 이 지향을 노동조합도 노동단체도 잊지 말고 ‘연대의 힘’을 만들어가는 데 힘 보태면 좋겠다.

 

자! 이제 손을 내밀어 볼까요?

 

∙ ∙ ∙

1) 20시간 제한이라 불렸던 제도. 배민은 주 단위로 배달 수수료가 지급되는데, 2020년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커넥트들이 배달 시작을 누르고 종료 버튼을 누를 때까지 시간이 누적되어 한 주에 19시간까지만 콜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19시간이 넘어서는 순간 콜은 사라지고 안 보이게 만들었다. 20시간 제한이라 불렸지만 실제로는 19시간 제한이 정확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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