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노동자로 바로 서기

by 센터 posted Feb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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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영  센터 청년활동가

 

 

나에게 대학은 강의를 듣고, 공부하고, 시험을 보고, 과 활동을 하는 일상적인 공간이다. 학내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나는 지극히 평범했던 강의실, 학과 사무실, 세미나 등의 자리 곳곳에 숨어 있는 노동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강의에서 출석 체크, 시험 채점, 질의응답 및 공지 등의 업무를 맡는 수업 조교, 학회에서 실무를 맡는 학회 간사, 학과 사무실에서 각종 행정 업무에 관한 사항을 맡는 행정 조교, 글쓰기 교실에서 나의 과제를 첨삭해 주는 글쓰기 조교까지. 이 많은 일을 담당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대학원생이었다. 처음 대학에 들어올 때 상상했던 대학원생은 실험실이나 연구실에서 논문을 읽거나, 동료 대학원생과 토론을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대학에 다닌 지 4년 차인 지금 대학원생의 공부는 노동을 전제로 지속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주변에서 어렴풋이 듣고 본 것으로 그치지 않고, 대학원생 당사자들이 말하는 노동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하 대학원생노조)을 찾아 김래영 사무국장과 송초롱 성평등위원장을 만났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대학원생들의 삶과 노동이 어떤 모습인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대학원생은 왜 노동자인가

 

대학원생을 노동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로는 대학원생의 노동이 ‘경제 활동 영역’이라는 점이 있다. 많은 대학원생은 학과에서 지급하는 장학금 및 조교 수입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조달하고 있다. 2018년 대학원생 연구 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교 수입과 프로젝트 참여 연구비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조달하는 학생 비율이 각각 54.3%, 64.1%에 이를 정도로 대학원생의 학업 및 생활 유지에 노동은 필수적이다. 또한 장학금은 위와 같은 노동의 대가로 지급되는 경우가 많으며, 조교 업무를 수행해야만 장학금을 일정 금액 이상 받을 수 있도록 한 대학도 있다. 이처럼 대학원생은 노동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경제적 비용을 충당하며, 학부생과는 다르게 장학금 역시 노동과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또한 김래영 사무국장은 대학원생의 노동을 ‘교수와의 종속적인 관계’를 들어 설명했다. 대학원생은 연구를 비롯한 모든 학과 활동에 있어서 교수와 권력 관계에 놓여 있으며, 언제든 교수의 지시 혹은 필요에 따라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구직자, 혹은 잠재적인 노동자이다. 이러한 환경은 대학원생 자신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도 선명히 드러난다. 2019년 ‘대학 내 폭력 및 인권 침해 실태와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80.8%의 대학원생이 자신의 신분을 근로자 혹은 학생 근로자로 인식하고 있으며, 조교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일수록 그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1)

 

표_대학원생.png

 

조교, 학회 간사, 강사 등의 개별적인 노동 형태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대학원생이 수행하는 연구도 노동의 영역에 포괄하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대학원생의 연구 활동은 사회적인 가치를 가지고 공적인 영역에서 활용되는 산출물이기 때문에 그 노동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 국가 연구 개발의 약 23%를 담당하는 곳이 대학이지만, 대학원생의 연구 노동은 ‘배움의 과정’으로 뭉뚱그려져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한 연구 노동은 대학원생의 행정 노동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2017년 UNIST 대학원 총학생회가 수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구를 수행하는 시간은 정량적으로 집계하기 힘들며 행정 노동과 함께 포괄적으로 집계된다. 따라서 대학원생이 실질적인 연구 노동을 수행하는 시간은 전체 일과 시간 가운데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2)

 

이처럼 대학원이라는 공간에서의 노동은 교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학과와의 종속적인 관계 속에서 학문 수행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지워지고 있다. 대학원생 대부분이 수행하는 수업/연구/행정 조교 업무를 비롯하여 더 포괄적인 개념인 연구 노동을 통해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내에서 노동이 설 자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

 

노동자로서 대학원생의 존재가 지워질 때 대학원생은 노동기본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국회 앞에서 노숙 농성 중인 대학원생노조가 기조로 내걸고 있는 것 중 하나인 산업재해 인정 역시 이에 해당한다. 특히 실험실을 사용하는 이공계열에서 산업재해 문제는 심각하다. 김래영 사무국장은 “대학원생은 대부분 미숙련자이기 때문에 사고 발생률이 높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연구 프로젝트 간접비에서 제공되는 1인 3~4천 원 상당의 민간 보험으로 받는다.”고 설명한다. 가벼운 사고인 경우 그나마 해당 보험으로 치료비를 받을 수 있지만, 중대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는 불명확하다. 2019년 경북대학교 화학 실험실 사고가 불분명한 책임 소재와 열악한 실험실 노동 환경 속에서 예견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약품을 사용하는 미술 대학 역시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에 위험 물질에 노출되어 산업재해를 겪어도 제도적으로 보상받지 못하고, 사고에 대한 예방과 가이드라인도 전무한 상황이다.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 역시 어딘가 이상하다. 대학교수인 연구 책임자가 과제 참여 연구자의 인건비와 재정 전반을 책임지기 때문에 간접비에서 인건비의 비율이 자의적으로 책정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장학금 혹은 연구 간접비의 이름으로 지급되는 조교 혹은 연구원의 임금은 교수와 대학원생의 권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임금 탈취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에 놓여 있다.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생활임금이나 4대 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대학원생의 숨통을 죄어 오는 교수 권력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에 더하여 대학원생은 또 다른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다. 송초롱 성평등위원장은 그 문제를 ‘지도교수와의 사적이고 종속적인 관계’로 설명한다. 이는 대학원생노조에서 조합원의 활동을 어렵게 하는 핵심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대학원에서 지도교수와 학생은 철저히 ‘도제식 사제관계’, 즉, 수직적인 관계에 놓이기 때문에 대학원생은 교수의 사적 지시를 거부하기 힘들고 자신의 사적인 정보가 학과 내에 노출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 특히 교수 대부분이 ‘노동자’라는 이름표를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상황에서 대학원생 노조 활동이 알려지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이 기간(대학원 재학 기간)만 참고 견디자.’는 생각은 대학원생의 조직화를 어렵게 만든다.

 

또한 교수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으로 인해 대학원 문화는 폐쇄적으로 변모하고, 대학원생이 노동자로서 목소리 내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다. 소위 ‘○○ 교수 키드’, 혹은 ‘○○ 교수 라인’이라는 이름으로 교수와의 사적이고 종속적인 관계는 나쁜 구조를 양산한다. 이는 70% 이상이 남성 교수로 이루어진 학문 공동체에서 남성 중심적인 권력 관계로 드러나며 여성 대학원생에게는 노동자성의 문제와 함께 이중적인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연구 노동과 행정 노동을 수행할 때도 대학원생은 능력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교수와의 관계가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핵심적인 자리에서 자꾸만 밀려 나가게 된다. 송초롱 성평등위원장은 대학원에서 성폭력 사건을 고발했던 것으로 인해 “다시 학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했다. 2년간의 휴학을 거치고, 지도교수와 연구 내용을 완전히 바꾼 후에야 졸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번 지도교수의 눈밖에 벗어나면 대학원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제대로 꿈꿀 수조차 없는 구조가 대학원생들의 숨통을 죄고 있는 현실이다.

 

3.대학원생노조.JPG

2020년 겨울, 국회 앞 대학원생노조 농성 천막.

 

‘교수 권력의 아우라’에서 벗어나 노동자로 바로 서자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대학원생노조는 지금의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어 나가는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교수 권력의 아우라’를 조금씩 벗겨 내고, 노동자로서 대학원생이 제도와 사회안전망에 편입될 수 있는 사회를 꿈꿔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교수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지금의 기형적인 구조를 벗어나 평등하고 주체적인 학문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 송초롱 성평등위원장은 “독일에서는 조교들이 근로계약서에 맞추어 업무를 하기 때문에 교수와 조교가 동등한 입장에서 업무를 분배하고 논의할 수 있다.”며 제도적으로 교수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지도교수를 통해야만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기존의 관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나가야 한다. 모두가 불편하지만 구조를 바꾸기 위한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기 꺼리는 지금의 ‘경로 의존성’을 과감히 타파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로서 대학원생과 교수의 관계를 사적인 영역이 아닌 공적인 영역에서 규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수의 연구비 착취, 성폭력, 갑질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학원생이 학교를 옮겨 자신의 연구 분야에 맞는 지도교수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인 보호책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대학원생의 노동기본권을 인정하면서 노동자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확장해나가야 한다. 김래영 사무국장은 “한국 사회에서는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 대학 연구실을 사업장으로 보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 기준을 넓혀가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을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정립하려는 노력을 통해 ‘연구 노동’, 즉 대학원생이 공적인 목적으로 산출해 내는 연구물에 투여되는 노동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 역시 가능하다. 대학원생은 ‘학생’, 혹은 미래의 학문을 담당할 ‘연구자’일 뿐이라는 지금의 인식을 넘어 노동자로서의 대학원생을 상상하고 그 영역을 확장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교육과 노동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는 대학원생은 지금까지 고고하게만 보이던 ‘학문’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거부당해 왔다. 하지만 학문과 지성조차도 노동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학문 공동체를 지탱하는 대학원생의 노동은 이제 폐쇄적인 권력 구조에서 벗어나 제도적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그 움직임을 만들어 가는 대학원생노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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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다혜, 「대학 내 폭력 및 인권 침해 실태와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연구총서 19-AA-02)」, 한국형사 정책연구원, 2019, 123p.

2) 김성수,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2018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2018, p.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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