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동, 그리고 권리

by 센터 posted Feb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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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권  센터 청년활동가

 

 

대한민국 헌법 32조 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인간다운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노동권의 보장은 필수적이다. 과연 장애인의 노동권은 온전히 권리로서 보장되어왔는가? 그렇지 않다. 이들의 고용률은 34.9%이다. 전체 인구 고용률 60.9%의 절반에 불과하다. 장애가 중증에 속할수록 고용률은 더욱 낮아진다. 전체 장애인 중 중증 장애인 비율은 37.6%이지만 중증 장애인 고용률은 20.5%에 불과하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노동할 기회를 덜 가질 뿐 아니라 임금도 적게 받는다. 2018년 기준 장애인 가구의 평균 소득은 4,135만 원으로, 전체 평균인 5,828만 원의 약 70%에 해당한다. 최저임금 보장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도 적지 않다. 최저임금법 7조에 따라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노동 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는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를 거쳐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된다. 2018년 기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장애인은 9,413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중증·발달 장애인이며 월 평균 임금은 40만 원이다.

 

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예상되는 답변은 “어쩔 수 없다.”이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의 노동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은 덜 중요한 것으로 치부되어왔다.

 

장애인이 경제 활동을 하며 정기적 수입이 발생할 때 오히려 더 궁핍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장애인 노동권이 경시되어왔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노동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생길 경우, 기초생활수급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일해서 월급을 받는 것보다 일을 안 하더라도 기초생활수급만을 받는 것이 더 많은 수입을 보장한다. 이러한 정책 설계는 오히려 장애인의 노동 의욕을 저하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일자리는 단순 돈벌이 수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이자,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공간, 나아가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터이다. 우리는 단순 소득 보장이라는 시혜의 차원이 아니라 권리의 측면에서 장애인 일자리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재 장애인 고용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지나치게 양적 관점 위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 장애인 노동 관련 정책은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이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는 국가, 지방자치단체와 50명 이상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 사업주에게 장애인을 일정 비율(정부 부문 공무원 2.8%, 공공기관 3.3%, 민간기관 2.7%) 이상 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시 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그 부담금 수준이 매우 낮아 대기업들은 장애인을 고용하기보다 부담금을 납부하는 것을 택한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100대 기업이 5년간 납부한 누적 부담금만 6,500억 원에 달한다. 중소기업의 경우 부담금 납부를 피하거나 고용 장려금을 받기 위해 비장애인과 생산성 측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는 경증 장애인만을 고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고용해도 단기적 일자리, 그리고 단순 업무에만 장애인 노동자들이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50인 이하 작은 사업장의 장애인 노동 실태조사를 진행한 서울노동권익센터 박정우 연구위원은 노동 능력이 있는 경증 장애인들이 처우가 좋은 대기업 혹은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가는 경향이 높고, 중증 장애인들은 노동 환경이 덜 좋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중증 장애인들이 일할 일자리 자체가 적고, 일하더라도 낮은 처우를 받는 노동 환경에서 일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게다가 현재 양적 지표 위주로 정책 설계가 되어있다는 점은 장애인 일자리질’을 경시하게 만든다. 취업률로 정책 성과를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기에 장애인 일자리 양에만 관심을 가질 뿐 장애인 일자리의 질에 대한 고려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장애인 일자리의 질이 낮기 때문에 장애인 노동자들은 잦은 이직 및 실업을 겪는다. 이처럼 장애인들의 짧은 재직 기간과 잦은 이직은 취업률에 온전히 담기지 못한다. 이는 노동권익 상담 및 교육 등 서비스 차원의 지원이 수반될 때에 좋은 장애인 일자리가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최근 신설되고 있는 장애인근로자지원센터가 그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그 수는 전국 3개에 불과하다.

 

작은 사업장 사업주들이 “장애인의 사회적 능력 강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곱씹어볼 만하다. 노동 능력이 비장애인과 동일하더라도 장애인을 고용했을 때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사업주들은 장애인의 노동 능력 강화보다 사회적 능력 강화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장애인 노동에 있어 금전적 지원뿐 아니라 서비스 측면의 지원이 필요함을 뒷받침한다. 물론, 일터에서 요구되는 사회적 능력은 단순 교육을 통해 한순간에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능력 교육을 통해 장애인이 노동권을 온전히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일터에서 생기는 갈등을 전적으로 장애인의 사회적 능력 부족에 기인한다고 보는 시각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비장애인의 의도적·비의도적 차별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장애인이 사회적 능력을 함양할 기회가 기존 사회에서 충분히 주어져 있지 않았다. 장애인에게 사회적 능력을 기를 좋은 환경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애인 고용의 난맥을 오롯이 장애인의 사회적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장애인의 노동권을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 보장할 수 있을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당연시되는 현 상황에서 장애인의 노동을 권리로서 보장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몇몇 실마리가 움트고 있다. 2019년 11월, “자본의 논리와 그 실현 고리를 끊어낼 때, 장애인 스스로 노동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장애 해방의 가능성이 열린다.”를 기치로 내걸며 장애인일반노조가 설립되었다. 이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조직하여 권리로서의 노동권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실마리라고 생각한다. 또 최근 서울시에서 최초로 시작한 ‘권리 중심 중증 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도 최중증 장애인에게 노동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그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진정 장애인의 노동권이 권리로서 보장받기 위해서는 보다 큰 차원의 문화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출발점은 바로 나부터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부터이다. 장애인의 노동권을 주장하는 것이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 효율과 경쟁의 가치에 매몰되어 있는 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기존 담론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상을 할 필요가 있다. 노동의 재정의를 통해 장애인의 노동권이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 실현되길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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