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 노동자 조직화, 활동가들의 이야기

by 센터 posted Oct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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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승  센터 청년활동가


2.아파트.JPG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회의실에서 아파트 경비 노동자 조직화 문제에 대해 인터뷰하는 청년활동가들.



2020년 6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유튜브에서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며 볼만한 영상을 찾고 있었다. 동영상 제목과 이미지만 보고 넘어가던 그때,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골똘히 적고 계신 듯했다. 동영상의 부제는 ‘98개의 자소서 그리고 시급 노동자’였다. 문득 재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집 근처 주차장에서 일하셨던 우리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자연스럽게 영상을 틀었다. 


영상은 경비 노동자의 애환을 담은 책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 조정진 님 이야기였다. 나는 영상을 보며 울컥해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돌려보았다. 혹시 우리 할아버지도 생전에 이런 일을 겪진 않으셨을까 싶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이후 한동안 조정진 님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임계장 이야기》엔 조정진 님이 경비 노동자로 일하며 겪은 경험이 담겨있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인 말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했고, 문제의식도 점점 커졌다. 그러다 우연히 서울대학교 인권센터를 찾게 됐고,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이하 비정규노동센터)에서 자원 활동을 하며 경비 노동자 문제 해결방법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당시엔 비정규노동센터에서 경비 노동자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비정규노동센터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아 아파트 경비 노동자 전국모임에 참석했고, 관련 인터뷰, 실태조사 자료집을 읽으며 문제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비 노동자들의 일상이 눈에 그려질 듯 선명해졌고, 현재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관련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궁금한 점을 묻고,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조심스레 활동가 입장이 되어 사업 과정을 그려보고 그 과정에서 그이들이 느꼈을 감정과 생각을 상상해보았다. 놀라운 점도, 내 예상과 다른 점도 많았다. 예컨대 나는 사회적 파장이 컸던 일들, 2014년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분신 사건 혹은 2020년 5월 최희석 경비 노동자가 돌아가신 일이 경비 노동자 사업의 시발점이 됐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경비 노동자 사업은 2012년, 노원노동복지센터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 노원구에는 아파트 240개 단지가 있었고, 약 1,500개 동에 3,000여 명의 경비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었다. 이처럼 구 내 경비 노동자 규모가 작지 않다 보니 노원노동복지센터 활동가들은 자연스레 경비 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조사했다. 그렇다면 왜 2012년에 시작되었을까? 노원노동복지센터 안성식 센터장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2012년도에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노원지역 취약계층 노동자가 누가 있는지 알아봤어요. 노원에는 아파트 비율이 높아서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도 조사 대상에 포함했죠. 경비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80%만 적용받았어요. 2015년 1월 1일에서야 100% 적용받을 예정이었죠. 그러다 보니 아파트 경비 노동자가 2015년에 고용 불안이 있겠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했어요. 당시엔 경비 노동자의 노동 현실을 구체적으로 알진 못했어요.” 조사 방법은 간단했다. 활동가들은 각 아파트 단지를 발로 뛰어다니며 연락처를 모으고, 12월엔 이를 바탕으로 경비 노동자들을 모아 간담회를 열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조직하여 문제 해결 방향을 찾게끔 돕는 것이 당시 노원노동복지센터의 목적이었다. 


노원노동복지센터는 그 뒤로 경비 노동자 사업 기획단을 출범했다. 기획단이 해결해야 할 3대 과제는 고용안정, 휴게 시간 사용 보장, 부당 업무 갑질 예방이었다. 이 중 가장 중점에 둔 것은 '고용안정'이었다. 활동가들은 문제 해결법을 찾기 위해 입주민 및 경비 노동자들과 논의했고, 우선 ‘입주민 인식개선’을 과제로 삼았다. 일부 입주민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경비 노동자 일자리가 고령자에게 베푼 시혜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전반적으로 경비 노동자들의 근무 조건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다. 경비 노동자들에겐 ‘휴게 시간’이 주어지는데,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입주민들 대다수도 이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관리소장과 입주민 대표가 경비원들이 쉰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를 하거나 지적과 욕설을 남발해도 막아주는 입주민이 없었다. “처음에 상담 오신 분은 야간에 잠을 주무셨대요. 의자를 치워놓고 뭘 깔고 바닥에서 주무셨다고 하더라고요. 자고 있는데, 입주자 대표가 술 취해서 초소에 와서는 왜 여기서 자고 있냐고 새벽 2시에 깨우러 다녔대요. 그다음 날부터 경비 노동자들이 의자에 앉아서 불을 켜고 잠을 자게끔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현장_경비 노동자.jpg

노원지역 아파트 경비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모임(@노원노동복지센터)


노원노동복지센터 활동가들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점차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해 나갔다. 고용의 경우 크게 2가지 문제가 있었다. 경비 노동자들은 용역 회사가 바뀔 때마다 해고되거나, 3개월, 6개월 단기 계약을 했다. 이러한 계약 형태는 노동자들의 생계를 불안정하게 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고다자’ 즉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운’ 존재가 되도록 만들었다. 이 외에도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기존 근무시간은 줄고 휴게 시간은 늘었다. 하지만 늘어난 휴게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초소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고, 그 시간에 주민이나 관리소장이 초소를 방문하여 업무를 지시하면 응할 수밖에 없었다. 활동가들은 휴게 시간 문제는 최저임금이 늘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으로 보았다. 휴게 시간이 12시간 이상 늘게 되면 아파트 측에서도 부담을 느낄 것이고, 경비 노동자 퇴근제를 도입할 유인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급여를 유지하면서도 퇴근제를 도입하고, 경비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2018년 최저임금이 예년에 비해 크게 오르다 보니 2017년부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해고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서울시에 관련 사업 추진을 요청했다. 당시 아파트 사업을 담당했던 문종찬 소장은 “2017년에 선제 대응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제안을 서울시에 했죠. 그때 대표적으로 2개 업종을 뽑았는데 아파트 경비 노동자와 편의점 알바였어요. 아파트 경비 노동자는 전례가 있었어요. 2015년 경비 노동자 최저임금이 100% 적용되면서 실제로 현장에 감원이 있었어요. 알바는 너무 광범위해서 경비 노동자 사업을 시작했죠.”라고 말했다. 이후 2018년 1월, 서울시는 아파트 노동자 고용안정 특별대책반을 편성해 아파트 경비 노동자 사업에 뛰어들었고, 고용노동부와 함께 구마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 고용안정 설명회’를 진행했다. 설명회의 주된 취지는 정부 일자리안정자금을 홍보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비 노동자 해고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서울시장과 노동부 장관도 설명회에 참석하면서 사회적 여론이 형성됐고, 이후 서울시 내 아파트 80% 이상이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했으며, 2018년 말 이루어진 전수조사에서 경비 노동자 감원은 0%에 가까웠다. 단기적인 감원은 얼추 막은 상태였다. 하지만 문종찬 소장은 장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아파트에 일자리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직접 지원보다는 스스로 혁신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2019년 한비네(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가 고용노동부 지원을 받아 전국적 단위의 조직화 사업을 시작했다. 경비 노동자 조직화는 왜 필요한 걸까? 문종찬 소장은 “앞으로 경비 노동자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교대 근무제도 바꿔보겠지만, 이건 법으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단체협약 사항이에요. 노사 간에 협의하고 조정하는 사안인 거죠. 여기서 핵심이 노동자 대표예요. 주민들이 뭘 결정할 때 경비 노동자들 의견을 들을 수 있게요.”라고 말했다. 전국의 활동가들은 주기적으로 모여 경비 노동자 문제 및 해결방안을 논의했다. 우선 각 지역 경비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실태를 조사하고, 조직화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여 지역마다 조직화 사업의 기반을 닦았다.


활동가들은 하나같이 ‘당사자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당사자 조직화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 경비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정부 관계자, 입주민 대표들과의 협의에서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로 법의 취지와 법이 적용되는 현실 사이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컨대 경비 노동자 사안의 경우 현재 미흡한 법적, 제도적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아파트 내에서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당사자 조직화와 법, 제도적 개선이 발맞춰 진행되어야 하고, 당사자 조직이 이해관계자들과 끊임없이 의견 교류와 합의를 해나가야 한다. 만약 법적, 제도적 문제가 당사자 조직 없이 먼저 해결되면, 오히려 상황이 기대한 바와 정반대로 흘러갈 수도 있다. 이를테면 고용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법과 제도가 오히려 해고를 일으킬 수 있다.


2012년부터 이어져 온 경비 노동자 사업이 ‘코로나’라는 풍파를 겪고 있다. 여전히 코로나 방역 조치는 2단계에 머무르고 있고, 사실상 경비 노동자 조직화 사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법적, 제도적 과제부터 현장의 노동 환경 및 입주민 인식개선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활동가들은 답답한 와중에도 조직화 사업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소식지를 배포하고, 경비 노동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경비 노동자 사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만 코로나가 경비 노동자 조직화 사업의 발목을 거세게 붙잡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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