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 노동자 연대의 시작

by 센터 posted Aug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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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



지난 7월 7일 국회 소통관에서 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협동조합협의회(약칭 플랫폼프리랜서협의회)가 출범식을 가졌다. 협의회는 출범식에서 플랫폼·프리랜서들에게 실효성 있는 고용·산재보험, 산업안전과 직업훈련을 즉각 제공할 것, (가칭)플랫폼·프리랜서기본법을 제정할 것, 페이크 프리랜서와 불법파견을 즉각 퇴출할 것, 노동자들의 자조조직인 노동자협동조합 활성화 계획을 마련할 것, 나아가 정부 기구에 플랫폼·프리랜서위원회를 설치하고 당사자 참여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불안정 노동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며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의 발전은 다양한 프리랜서 노동과 플랫폼 노동, 반半자영 노동을 확대시키고 있으며 이는 사회 전반의 고용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디지털)플랫폼 노동’이라는 용어가 등장해 사회적 관심을 급격히 모으고 있지만 실제로 플랫폼은 일거리와 일자리가 오가는 통로일 뿐 플랫폼을 이용해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영업자, 프리랜서, 비공식 부문 노동자 형태를 띠게 된다. 예를 들어 플랫폼을 이용해 일자리와 일거리를 얻는 사람들이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로 소득 신고를 하면서 더 이상 자영업자와 노동자를 구별하기 힘들게 되었다. 가사도우미 등 가사 노동자들은 예전부터 비공식 부문 노동자였지만 이제 플랫폼(앱)을 통해 일거리를 얻게 되면서 일부가 플랫폼 노동자로 분류되고 있다. 곧 일자리와 일거리를 얻는 창구는 점점 온라인으로 바뀌고 있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상시적 고용 불안과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불안정 노동자’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협의회는 ‘플랫폼·프리랜서’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같은 가사 노동자, 같은 대리기사가, 같은 문화예술인이 누구는 앱을 이용한다고 해서 플랫폼 노동자이고 누구는 앱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공식 프리랜서로 구별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2.출범식.jpg

지난 7월 7일 국회 소통관에서 진행된 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협동조합협의회 출범 기자회견(@한국노총)


누구나 알고 있듯이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의 공통점은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우리나라에서 사회보험, 직업훈련, 근로자복지지원제도가 따라붙는 가장 핵심적인 법으로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노동권과 사회보장에서 줄줄이 배제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동계에서 핵심이 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연차수당 개선 등은 우리에게 전혀 실감을 주지 못하는 그림의 떡이다. 출퇴근 시 사고 등 산재보험 범위를 확대하겠다, 직업훈련을 강화하겠다, 근로자를 위한 육아휴직과 보육시설 설립을 확대하겠다 등 정부의 근로자 복지정책 역시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이러한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가장 고통받는 것은 당사자들이고, 역사적으로 문제 해결에 먼저 나서는 것도 당사자들이다.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이 사회문제가 되기 이전에도 당사자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가사 노동자들은 협회를 만들어 자신들에게 필요한 직무교육과 배상보험을 개발했고 취미 모임을 통해 문화 활동과 휴식, 사회적 지지 관계를 만들어나갔으며 201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가사 노동자 보호법 제정 운동에 나섰다. 나아가 스스로 출자하여 회사, 곧 가사 노동자들이 주인인 노동자협동조합을 만들었으며 상호부조를 위한 상조회와 소액대출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의 한 사회적협동조합은 2014년, 우리끼리 퇴직금(목돈)을 마련하고 긴급자금 필요 시 신용카드를 쓰지 말자는 취지로 상조회 부설로 주민금고를 설치했다. 2019년 말 현재 조합원 60명 가운데 38명이 6,500만 원의 출자금을 모았고 상시적 대출뿐 아니라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생활이 어려워진 조합원을 위해 무이자 대출을 시작했다. 대리기사들은 2012년 협동조합을 설립한 이후 가장 먼저 직무교육을 개발하고 소모임을 시작하였다. 어디에 고객이 많은지, 대리운전을 끝내고 귀가하려면 어디에서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지, 고객과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 고용센터건 노동상담소건 어디에서도 제공해주지 않는 직업훈련과 정보 제공, 상담을 스스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선배가 끌어주고 후배가 뒷받침하는 노하우 공유, 자조 모임이 핵심이다. 문화예술인들은 출자하여 기업의 주인이 되고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직원으로 고용하여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을 통해 개별적으로 노동하는 프리랜서들을 더욱 폭넓게 집단화하고 이들의 요구와 실태에 맞는 고용모델을 만들려는 실험이 지금도 힘차게 진행되고 있다.


플랫폼·프리랜서협의회가 출범한 것은 이러한 개별 조직들의 실천이 기반이 되었고, 또 더 이상 개별 조직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어 산업안전 교육이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되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변화를 느낄 수 없다는 점, 고용·산재보험을 플랫폼·프리랜서로 확대한다고 하고 전 국민 고용보험제, 상병수당 등 혁신적 정책이 급격히 추진되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참고인’에 머무를 뿐 파트너,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뭉치게 만든 것이다. 전 국민 취업지원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취업 상담 및 정보 제공, 취업 알선, 직업훈련 등 고용 지원 서비스 전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하지만 고용센터를 확대하겠다는 것만 눈에 띌 뿐 과연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기나 한 것인지, 이들에게 어떠한 도움이 될지 오리무중이다. 


결국 핵심은 연대이다.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의 공통점은 개별 노동, 호출 노동 성격이 강하다. 개별로 고립된 노동자들을 노동자협동조합으로 묶어 일자리, 업무상·생활상 고충을 함께 해결하는 것이 당사자의 자조적 연대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들이 모여 개별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법제도 개선, 공동의 상담 및 교육 훈련 사업 등 자신의 필요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연대를 통한 당사자 조직 강화이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가장 강력한 당사자 조직으로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특히 200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의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협의회는 노동계에 적극 협력을 요청할 것이며 노동계에서도 노동자협동조합의 시도에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다층의 연대와 협력이야말로 사회의 패러다임을 구체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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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노동자협동조합’이라는 개념이 없다. 협동조합기본법 상 ‘직원협동조합’만 있을 뿐이며 이때 ‘직원’이란 조합에 고용되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100년 전부터 협동조합이 발전해 온 외국에서는 CICOPA(국제협동조합연맹)라는 조직이 대표권을 인정받고 각국의 노동자협동조합 활성화에 다양한 정책과 지침, 권고를 제시하고 있다. CICOPA에 따르면 법적 지위나 용어와 상관없이 해당 조합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51%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을 때(사회적협동조합은 1/3) 노동자협동조합이라고 이야기한다. 

* 플랫폼프리랜서협의회 블로그 https://blog.naver.com/pfwc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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