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처럼

by 센터 posted Oct 27,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코레일.jpg

 

띄엄띄엄 벽에 붙어 선 사람들이 그 앞 길어질 것이 뻔한 기자회견에서 자기 순서를 기다린다. 굵고 짧은 발언을 주문하는 사회자의 요청도 따로 없었으니 마이크 쥔 사람은 할 말이 하염없고 막힘없다. 술술 쏟아진다. 해고의 부당함과 책임 있는 자들의 무책임과 헛된 약속을 읊는 일이 두세 번째도 아닐 테니, 미리 준비한 원고 같은 게 필요하지 않았다. 해고 생활이 길었다. 물 빠진 낡은 조끼엔 어느 참전용사의 훈장처럼 주렁주렁 배지가 많이 달렸다. 연대할 곳도, 기억할 것도 그간 많았다. 서는 곳마다 치열한 전선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전선에 서 있다. 해고된 지 20년, 산전수전 또 공중전을 다 겪었을 노장은 구부정한 자세로 팻말을 들고 서 있다가 햇볕에 달아오른 머리를 버릇처럼 쓸어 넘긴다. 얼마 남지 않은 흰 머리칼이 반짝거린다. 아직은 머리숱 많은 해고자가 복직판정 이행 구호를 새긴 팻말을 올려 들고 벌을 선다. 가슴팍에 바늘로 꽂아 둔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리본이 바람에 흔들린다. 가을볕 눈부시니 그늘이 더 짙다. 훈장처럼 주렁주렁 달린 배지가 어둠 속에서 밝았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현장으로 가는 길

by 센터 posted Apr 13,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축소동양시멘트42.jpg

정기훈 /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현장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고 멀다고, 그 앞 움막 사는 남자가 말했다. 신작로가 반듯했지만 실은 거기 깊은 산골이었다. 겨울이면 가슴팍까지 눈이 쌓이고 삵과 노루가 먹이 찾아 내려와 붐비는 자리란다. 재 너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자는 늙어 낯익은 골짜기에 움막을 지었고 빨간 머리띠를 둘렀다. 보이지도 않는 현장을 바닥 그림 보태 가며 상세히 설명했다. 석회석 광산은 그의 오랜 일터였다. 바닥에 빨간색 페인트가 채 마르지 않았고, 발자국 하나 없이 선명했으니 글씨는 오늘 새로운 것이었다. 크고 작은 싸움이 그 자리에서 잦았다고 남자는 전했다. 작은 열쇠와 쇠사슬은 끊으려면 끊을 만한 것이었지만 회사의 것이었다. 그 위로 감시카메라가 분주히 돌았다. 저 아래서 빨간색 진달래를 봤느냐고 남자가 물었다. 오르는 길에 붉은 것이라곤 곳곳에 깃발이며 현수막뿐이었다고 답했다. 거기 위장도급 철폐 구호가 봄볕에 반짝였다. 오랜 법 다툼을 예고했다. 현장으로 돌아가는 길이 하나같이 가파르고 멀다.


허수아비

by 센터 posted Feb 24,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삼표산업.jpg

 

경기도 양주 가마골을 지나는 왕복 2차선 좁은 도로는 자주 구불구불 산을 넘는다. 그늘이면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였다. 검은 도로엔 윤기가 흘렀다. 여기저기 빙판을 경고하는 안내문이 많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차들은 달렸다. 주류 상자 가득 싣고 오르막 커브 길을 오르던 트럭이 소주며 맥주병을 와르르 길에 쏟고 나서야 속도를 줄여 멈췄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을 피해 상·하행 차들이 엉켜 체증이 지독했다. 안전운행을 당부하거나, 다짐하는 스티커가 사고 트럭 짐칸에도 붙어 있었다. 재 너머 마을 어귀를 지날 때면 노인 보호, 어린이 보호 안내가 신호등과 함께 많았다. 덩치 큰 차들이 그 길을 자주 지났다. 내달리던 차들은 고정식 과속단속 카메라 직전에야 속도를 줄였다. 규정 속도를 지키는 차 꽁무니에 바짝 붙어 압박했다. 사고 잦은 곳 표시가 선 곳도 다를 바 없었다. 풍경에 섞였다. 저기 사람이 있다. 아니 사람 모습을 한 마네킹이 안전모를 쓰고 지시봉을 들었다. ‘결빙 위험 절대 감속’ 안내판 옆자리다. 멀리서 얼핏 보면 제법 그럴 듯했지만 거길 자주 지나다 보면 곧 무뎌질 테다. 차들은 달렸다. 허수아비 선 자리 낙엽에 허연 가루들이 잔뜩 앉았다. 그 앞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날아온 돌가루일 테다. 안전모 쓴 직원들이 안전제일 새겨진 펜스 뒤에 줄줄이 서서 정문을 지켰다. 카메라 든 기자들로 그 앞이 붐볐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패트롤 차량이 지나갔다. 경찰이 많았다. 지난 설 연휴 채석장 토사가 무너져내려 일하던 사람 셋이 깔렸고, 죽어 발견됐다. 사고가 잦은 곳이었다고 뉴스 앵커가 전했다. 일하던 사람 깔려 죽은 채석장 정문 앞에 중대재해처벌법 법률 상담을 홍보하는 법무법인의 현수막이 붙었다. 그 법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사람들은 기자들 앞에 섰다. 엄중 처벌을 촉구했다. 어렵게 만든 법이 허수아비 노릇에 그치면 안 된다고 사람들은 걱정했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핫팩처럼

by 센터 posted Feb 28,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발에핫팩.jpg


그 따뜻하다는 솜 넣은 부츠가 하나 생겨 시골집에 보냈다. 아버지 신으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욕심을 냈다. 원래 이런 건 크게 신어야 한다나. 아이고 어머니, 내 하나 더 사 보낼게요. 겨울 다 지나 늦었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추위가 늦도록 기승이다. 발 따시니 참 좋더라는 전화를 받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진짜 추운 날엔 발끝이 아프다. 여느 집회 사회자 말마따나 투쟁의 열기가 곳곳에 높았으나 손끝, 발끝 아린 걸 어쩔 순 없었다. 핫팩 몸에 붙이고, 손에 쥐고, 발 등에 올려놓고서야 아픔을 덜었다. 이 겨울 누구나가 추웠지만, 칼바람 맞아 시린 사람들이 길에 유독 많았다. 체감온도는 아래로 곤두박질 쳤다. 흰옷 입고 앞장선 사람들이 자꾸만 아래로 엎어져 아스팔트에 핫팩처럼 붙었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폐허

by 센터 posted Aug 24,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노동에세이.JPG


머리에 빨간색 띠를, 왼쪽 팔엔 붕대를 두른 이재헌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장이 서울 용산구 갑을빌딩 앞에서 기자를 기다렸다. 앞자리가 한산했다. 건물 안 경비노동자가 폐문 알림장을 유리문에 붙였다. 양복 차림 사람들이 종종 폐문을 드나들었다. 약속한 시각, 마이크 잡아 말을 풀었는데 말 못할 사연이 많아 말이 길었다. 노조 파괴를 규탄하고 교섭을 촉구했다. 주먹 종종 쳐들어 기세 높였으나 구호는 건너편 버스정류장을 향했다. 무전기 든 경찰이, 수첩 든 회사 직원이 멀찍이서 바빴다. 그 앞 비좁은 인도를 지나던 사람들이 잠시 멈칫거리다 고개 숙여 휙 지났다. 찌푸린 표정이었다. 푹푹 찌는 날이었다. 홍보팀 직원이 한참을 달려와 다른 기자가 왔는지를 물었다. 다른 기자가 없었으니 대화가 짧았다. “아무래도 사안이 그렇긴 하죠. 노동뉴스니까 오셔야 했을 테고”라고 직원은 덧붙였다.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다음날 포털사이트 뉴스 면에 갑을오토텍 인도법인이 인도 서부지역에서 남부 항만도시로 이사했다는 뉴스가 깔렸다. 사진도 내용도 한 모양새였다. 홍보팀 직원이 진땀을 뺀 모양. 불편한 기사는 구석에 파묻혔다. 물량 공세는 성공했다. 직장 폐쇄와 용역 투입, 복수노조 설립으로 이어지는 노조 탄압도 오랫동안 성공적이었다. 칼날은 대개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향했다. 부당노동행위로 회사 대표가 실형을 받은 일은 이례적이었다. 중요한 뉴스가 되는 일은 더욱 드물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동료의 영정을 들고 여전히 길에 섰다. 노조 파괴 전문으로 통하는 어느 노무사는 징계 기간이 끝나자 새 사무실 문을 열어 복귀를 선언했다. 충남 아산 문 닫힌 공장 안팎이 연일 흉흉하다. 땀범벅, 눈물범벅이다. 복수노조 시행 5년, 곳곳이 폐허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파란 나라, 파란 천막

by 센터 posted Jul 02,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농성장7s.jpg

천막에서 살지만, 또 길거리에 떠돈 지 오래라지만 저기 해고자도 한 표 쥔 게 있어 투표했다. 온 나라가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환호성이 터졌다. 약속 읊느라 입이 부르튼 정치인들이 새로운 시작 앞에 포부를 밝혔다. 그게 참 불안하다고, 마음이 편치 않다고 천막 사는 해고자는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 신경이나 쓸까, 걱정했다. 22일째니 파란색 농성 천막은 낡지 않았다. 그 안에 걸린 승무원 유니폼이 꾸깃꾸깃 낡았다. 유행 지난 상의 단추에 철도청 시절의 마크가 달렸다. 싸움은 어느덧 4천일을 훌쩍 넘겼다. 그간 몇 번의 선거를 치렀는지, 또 어떤 농성과 행진과 몸싸움을 벌였는지가 모두 기억에 흐릿했다. 정치인의 묵은 약속이 다만 천막 주변 온 데 걸린 현수막에 선명했다. 포대기에 아이 품은 동료가 큰아이 하원 시키러 떠났고, 남은 해고자들이 또 한 번의 행진을 준비했다. 이리저리 수소문해 찾은 승무원 유니폼을 차려입고 나설 예정이다. 여름, 겨울 것 가리지 않고 모아 10벌 정도다. 청와대를 향한다. 좀 더 가까이 갈 수 없는지를 두고 정미정 씨는 전화기 들고 고민이 깊다. 아직은 잘 맞는다고, 천막에 걸린 유니폼을 보며 김승하 씨가 말했다. 파란 천막을 보았다. 꿈과 희망이 여전히 그 안에 가득하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출근길

by 센터 posted Mar 11,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쌍용차첫출근1.jpg 쌍용차첫출근2.jpg 쌍용차첫출근3.jpg


유제선 씨는 요사이 잠을 설쳤다. 지난밤이 유독 길었다. 새벽 4시 30분까지 버티다 그냥 씻고 나섰다. 가방엔 세면도구와 여분의 양말, 접이식 깔개 따위를 챙겨 넣었다. 없으면 불안한 것들이다. 노조 조끼도 넣을까를 잠시 고민했다. 오랜 버릇이다. 회사 정문 앞 새로 생긴 커피 집에 들러 잠을 쫓았다. 언젠가 분향소와 낡은 농성천막이 있던 자리다. 길 건너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걸음이 성큼 가벼웠고 표정이 종종 밝았다. 정문 너머 공장을 슬쩍 훑었다. 우뚝 선 굴뚝에서 연기가 폴폴 솟았다. 뒤따르던 박호민 씨는 노조 사무실 앞에서 사람들을 안고 울먹이느라 눈두덩이 부었다. 흰자위가 붉었다. 축하인사가 내내 민망했지만 내민 손 꼭 잡아 화답했다. 울다 웃던 박 씨는 담배 물고 땅을 오래 살폈다. 비정규직 지회장 서맹섭 씨도 언 손을 비비며 거길 찾았다. 스마트 폰을 들어 노조 현판을 찍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와 비정규직지회 이름이 거기 나란했다. 그 안쪽 사무실에 일찍부터 김상구 씨가 서성거렸다. 가끔 웃었는데, 표정 변화가 적었다. 말수도 그랬다. 별일도 아닌 듯, 7년 만의 출근을 기다렸다. 윤충열 부지부장이 안쪽 부엌 개수대에서 머리 감느라 바빴다. 낡은 노조 조끼를 서둘러 챙겨 입고 나섰다. 출근길 사람들을 배웅했다. 인재개발원행 버스가 곧 출발했다. 2016년 2월 1일 오전, 손 흔들던 사람들이 길에 남았다.


정기훈 |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추락하는 것은

by 센터 posted Jun 27,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추락하는 것에는.jpg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 앞에서 ‘뻗치기’ 하던 기자와 교대를 기다리던 경찰이 땡볕을 피해 감나무 그늘 아래에 앉고 섰다. 어어, 저기! 누군가 외쳤고 깜박졸던 오디오맨이 화들짝 놀라 카메라 옆으로 달렸다. 허공에 새똥이 날렸다. 미처 피하지 못한 기자가 물티슈를 찾았다. 사람들 웅성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깃털도 나지 않은 어린 새 한 마리가 2층 옥상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매달렸다 곧 떨어졌다. 날개를 두어 번 휘저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툭, 바닥에서 아직 죽지 않은 어린 새가 몇 번 고개 들어움직였다. 옆자리 경찰이 어린 새를 감나무 그늘 아래 흙으로 옮겼다. 압수수색이 끝나길 기다리던 기자가 종종 고개 돌려 어린 새를 살폈다. 그늘이 움직였다. 그늘 따라 사람들도 움직였다. 떨어진 새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낡은 안전화 위로 각반을 한 노조사람들이 꿈쩍 않고 입구를 지키던 경찰 앞에서 정권 규탄 팻말을 들었다. 마이크 잡은이가 추락하는 노동권과 인권과, 국격에 대해 말했다. 감나무 그늘이 내내 짙었다. 해따라 바닥을 흘렀다. 압수수색이 길었다. 깃털도 나지 않은 새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철망 앞에서

by 센터 posted Apr 26,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철망앞에서.jpg


노란 꽃 피던 봄날, 아빠는 차를 몰아 항구에 갔다. 천방지축 갈 길 가늠할 수 없는 아이 뒤를 쫓아 어르고 달래 철망 앞에 섰다. 눈높이 맞춰 앉은 자리 저 멀리에 낡고 삭은 커다란 배가 배를 보이고 누웠다. 상처가 곳곳에 깊었다. 언젠가 아빠는 고개만 겨우 남긴 배를 보면서 아이를 꼭 안았다. 많이 울었다. 잊을 만하면 떠올랐다. 배가 올라왔다. 전 대통령이 철창에 든 날이었다. 침전한 뻘이 갑판에 두터웠다. 돌아와 언젠가의 절망 앞에 선 아빠가 아이를 품고 말했다. 저것이 세월호라고. 삼 년여, 훌쩍 큰 아이는 노란색 리본을 자기가 묶겠다며 들고 뛰었다. 글씨를 좀 쓰자고 겨우 잡았다. 잊지 않겠다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또 진실을 인양하라고 아빠는 거기 삐뚤 적었다. 새 시대를 바라는 희망의 문구가 철망에 빼곡했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책임지라 말하고, 어느새 농성은

by 센터 posted Apr 28,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유성분향소.jpg


봄맞이하느라 사람들이 바쁘다. 노랑 파랑 빨강 온갖 꽃과어린 나무를, 또 잔디를 심는다. 물을 주고 살뜰하게 보살핀다. 잔디를 밟지 마시오, 경고문 세워 지킨다. 봄볕 아래 초록빛 쑥쑥 잘도 자란다. 투실투실 잔디 더미가 저기 가득. 얼음지치던 광장에도 어느새 봄이다. 거기 동료 떠나보내느라 노동자들이 상복 입고 바쁘다. 국화를 꽂고, 향을 심는다. 눈물몇 방울 거기 보탠다. 먼 길을 오가고, 긴 밤을 새운 탓에 언젠가 밤낮 없던 일터에서처럼 깜박 졸았다. 올빼미는 밤에 운다.늦은 밤 상가에서 이들은 울음 참느라 입을 앙다물었다. 노조를 짓밟지 마시오. 오랜 구호 새긴 선전물은 광장에서 부서지고 밟혔다. 영정만을 품어 겨우 지켰다. 앉아 버티며 향을 또심었다. 재가 수북했다. 언젠가 향내 멈추질 않던 거기 또 향내짙다. 건너편 대한문 앞에서 화단 지키느라 바빴던 경찰이 오늘, 광장에서 잔디 지키느라 빙 둘러 우뚝 섰다. 책임지는 이가 없어 탈상이 멀었다. 멀지 않은 곳 옥상에 오른 비정규 노동자 둘이 그 꼴을 지켜봤다. 끝장을 보고 싶다 말하고, 어느새꽃은 피고지고. 매한가지 책임을 묻는 농성이 어느새 길었다.


정기훈 |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줄초상

by 센터 posted Oct 31,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노동에세이.jpg


사람들 흰 국화 들고 줄줄이 섰다. 얼굴 없는 영정 앞에 향을 피웠고, 고개 숙였다. 안전화와 안전모와 안전띠가 그 앞자리에 가지런했다. 망자의 것은 아니었다. 2013 대한민국 안전대상 소방방재청상 수상 기념 동판이 박힌 어느 통신 대기업의 높다란 빌딩 앞이었다. 일터는 높았고, 비가 줄줄 내렸다. “일이 많이 밀려 있다. 다 처리하라”는 회사의 지시가 떨어졌다. 전봇대를 올랐다. 툭 떨어지던 몸을 잡아 줄 안전줄이 없었다. 머리를 지켜줄 안전모가 거기 없었다. 감전의 흔적이 손에 남았다. 밥 벌어먹기를 바랐던 그는 누워 젯밥을 받았다. 꽃 피워보지 못한 그 이름 앞에 활짝 핀 국화가 쌓였다. 안전은 저기 원청의 경영 지침에 그쳤다. 다단계 하도급 고질병이 뿌리 깊다. 모두의 상식으로 그 죽음은 외인사였으나, 끝내 병사로 남는다.떨어지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비처럼 떨어지던 비정규 노동자 혹은 근로자영자의 작업복 가슴팍에, 또 영정 놓인 높다란 빌딩 앞에 주황색 ‘행복날개’가 있다. 헛된 것이어서 오늘 또 국화가 팔린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주마등처럼

by 센터 posted Oct 21, 201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덩치 큰 사내는 동료 품에 들어 한참을 울었다. 꺽꺽 소리 불규칙했고 어깨 따라 들썩거렸다. 품을 내어 준 동료는 내내 웃었지만, 눈시울이 차츰 붉었다. 눈두덩이 그새 부었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법원 정문 앞을 맴돌았다. 입 꽉 다물고 먼 곳을 살폈다. 버릇처럼 스마트폰 들어 대화창을 보고 또 훑었다. 등을 툭 치며 인사 건네는 동료 손짓에 참았던 울음이 툭 터졌다. 언론사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분주히 터졌다. 법원은 이날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지위를 인정했다. 4년여 만의 일이다. 1심 선고였다. 회사는 항소를 예고했다. 검찰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싸운 이들에 무더기 실형을 구형했다.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주마등처럼 돌고 돈다.


주마등처럼.jpg




글·사진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일상다반사

by 센터 posted Mar 03,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축소엘지오체투지.jpg

정기훈/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노조를 만들었고, 파업에 나섰다. 겨울, 해는 짧았고 그림자가 길었다. 여의도 쌍둥이빌딩 짙은 그림자가 종일 그 앞 농성장을 덮었다. 거기 강바람이 내내 드셌다. 누군가는 권한이 없었고, 또 누군 책임이 없었으니 교섭은 지지부진했다. 언젠가 회장님 집 앞을 찾아 여럿이 머릴 깎았고 남산을 올라 외쳤다. 또 같은 처지 동료 농성장을 부지런히 다니느라 이들은 바빴다. 쉬는 틈이면 담뱃불을 나눴다. 우린 어디에 올라가야 할지를 농담 삼았다. 생활 자금 대출 요령도 나눴다. 그리고 또 하루, 행진했다. 두 팔과 두 다리 쭉 뻗고 길에 엎드렸다. 꾸물꾸물 기었다. 행렬이 길었다. 행진은 느렸다. 갈 곳이 눈앞에 금방인데, 가려니까 멀었다. 며칠 포근하더니, 어찌 알고 한파가 닥쳤다. 누구한테 절하는 거냐고, 지나던 할머니가 혼잣말을 했다. 전화기 들어 사진 찍었다. 마음 급한 운전자가 빵빵거렸다. 무전기 든 경찰이 뒤따라 바빴다. 늘어선 경찰버스 공회전 소리가 멎질 않았다. 거기 빨간색 단결투쟁 머리띠 묶은 노동자가 그저 말없이 길에 엎드려 절절했다.


인지부조화

by 센터 posted Oct 22,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배달통.jpg


오토바이엔 두 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중 뒤쪽에 앉았던 사람이 가게 앞까지 날아왔다고 바퀴 고치던 자전거가게 사장님이 말했다. 바퀴에 바람 넣느라 그 앞에 섰던 사람들은 넘어진 오토바이에서 뜯겨나간 잔해와 배달통을 튀어나와 날아간 포장 음식 따위를 살펴보다 혀를 찼다. 거길 지나던 동네 사람들에게 사고 경위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틈틈이 인도 한편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던 라이더를 살펴봤다. 얹어 배달하던 음식 보따리 여러 개엔 붉은 국물이 줄줄 흘렀다. 지켜보던 아빠는 자전거 뗀 지 얼마 안 된 아이에게 안전모를 꼭 써야 한다고,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잔소리했다. 좁은 골목길을 빠른 속도로 내달리던 배달 오토바이에 놀라 아이 손을 급하게 잡아끈 아빠는 씩씩거리면서 저만치 간 오토바이 꽁무니를 흘겨본다. 저녁 밥상을 차리려 냉장고를 뒤지던 아빠는 다 귀찮아 배달 앱을 뒤진다. 예상 시간이 길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아이한테는 금방 올 거라고만 거듭 말했다. 오토바이 소리 들려 나가보면 옆집 것이었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배달 기사의 말에 괜찮다고 했는데, 거기 짜증이 잔뜩 묻었다. 그리고 일 나간 아빠는 어디 배달플랫폼 업체 본사며 국회 앞에서 헬멧 쓴 라이더의 이야기를 듣고 찍는다. 최소한의 안전망 없이 위험한 질주에 내몰린 특수고용 노동자의 사연 전하던 사람을 그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 꽁무니와 엮어 사진에 담는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요지의 설명을 보탠다. 조화롭지 못한 여러 생각 보따리가 머릿속을 내달린다. 오늘도 배달 오토바이가 내달린다. 균형 잃은 배달통에서 붉은 국물이 쏟아진다. 코로나 시대 일상다반사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이면, 혼신의 힘

by 센터 posted Apr 25,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이면.jpg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첫 회의가 열린 날, 회의장 앞 기자회견 자리엔 카메라와 노트북 든 기자가 유독 많았다. 앞자리 선 사람들 할 말도 적지 않아 회견이 언제나처럼 길었지만, 자릴 뜨는 카메라가 없었다. 상징의식을 기다렸다. 줄다리기야 흔한 소재였는데, 그 줄이 무대 삼아 세운 현수막을 관통해 연결되어 있으니 호기심을 자극할 만했다. 찢는 거냐, 새로운 현수막이 짠 하고 등장하는 것이냐, 그도 아니면 뭐냐, 눈들이 반짝거렸다. 플래시가 번쩍번쩍, 드디어 시작된 상징의식은 한껏 높았던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무대그림과 어우러져 한 장의 그림으로 담기에 알맞은 것이었다. 의미를 녹여내면서도 요구에 맞추는 일에 이골이 난 사람들의 솜씨다. 줄 잡은 사람들은 힘 모아 당기는 일에 진지했다. 표정 연기까지 어색함이 없었다. 지켜보는 이 아무도 없는 무대 뒤편 줄 맞잡은 사람도 그랬다. 혼신의 힘을 쏟는 것으로 보인다. 어디든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그 덕에 뭐든 일이 돌아간다. 카메라가 잡지 못하는 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종종 눈여겨 살필 일이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유실물

by 센터 posted Feb 24,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유실물.jpg

 

라면을 먹거나, 어쩌다 텔레비전 한 번 보는 일이 세상 중요한 아이에게 아빠는 종종 단호한 목소리 앞세워 약속도 지키지 않는 ‘나쁜 사람’이다. 아차차, 마음 급한 나머지 시원스레 남발한 그 무슨 쿠폰 생각이 떠올라 할 말을 잃고 만다. 평소에 서로 약속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잔소리를 얼마나 많이 했던지, “눼눼” 하고 받아넘기는 아이의 태도를 꼬투리 잡아 들들 볶는다. 나빴다. 사과하고 약속은 지킬 일이었다. 요즈음 세간에 이런저런 희망찬 약속이 떠도는 걸 보니 곧 선거인가 싶다. 공약은 자주 빌 공자 오명을 뒤집어쓴 채, 쓰레기통에 처박혔는데, 오물 아랑곳하지 않고 거길 뒤져 자꾸 들춰내는 탐정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그 한마디에 웃었고, 지금 흐릿한 약속에 우는 사람들이다. 노사가 합의한 것을 지키라는 뻔한 말을 하느라 밥을 굶는다. 묵은 약속을 다시 읽는 동안 목이 쉰다. 잘려 나간다. 대권행 고속열차가 곧 출발한다. 선물 보따리 같은 약속이 어김없이 짐칸에 가득 실릴 텐데, 종착역에 이르러 유실물로 남을 것들이 적지 않다는 걸 사람들이 안다. 귀중한 것도 아니었던지 찾으러 오지 않으면 폐기될 운명인 것도 안다. 그럼에도 다들 여태 살면서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배운 적은 없을 테니 유실물 센터 앞에서 농성한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우산

by 센터 posted Oct 30,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노조우산.jpg


맑은 날 우산 든 사람들이 노조할 권리를 외쳤다. 이미 헌법에 새긴 권리였으니 새삼스러운 얘기였다. 노조 만들었다고 쫓겨난 사람들이 많았으니 매번 새로운 얘기였다. 법이 멀었다. 구호 따라 주먹이 하늘에 가까웠다. 언젠가 비 오는 날 촛불 켠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를 외쳤다. 온갖 공약에 선명했으니 지근거리 저 앞이었다. 삐죽 솟은 돌부리가 많아 걸음이 자꾸만 꼬였다. 돌덩이 하나같이 굳은 땅 아래로 깊어 삽자루가 자꾸 튕겼다. 코앞이 멀었다. 기어코 노조 우산 아래 든 사람들도 여전히 길에서 비를 맞는다. 땡볕 아래 붉게 익어간다. 안전장치 없는 현장에서 떨어져 죽지 않으려고 애쓴다. 쨍하고 해 뜬 날 큰 우산 펼쳐 작은 그늘을 지었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우리 만남은

by 센터 posted Apr 27,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만남의장.jpg

 

학교에서 밥 짓던 사람 여럿이 아팠다. 우연이 아니다. 커다란 튀김 솥 앞에서 가자미를, 돈까스를 튀겨 내던 그들은 자욱한 연기 속에서도 숨쉬기를 멈출 수가 없어 폐를 혹사했다. 쌀 포대와 업소용 식용유와 양파·당근 자루를 나르고 칼질하느라 근육과 관절을 갈아 냈다. 아이들 밥 짓는 일을, 또 밥벌이를 멈출 수가 없어 견딘 시간은 독으로 남았다. 일하다 아프거나 죽지 않게 하자는 뻔한 말을 하느라 길에 서고, 소리치고,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쏟아야만 했던 사람들은 서로 무척 가까웠다. 언니, 동생, 친구, 동료였고 동지였다. 그들 모인 둥지에서 비로소 큰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집에서 또 일터에서 말없이 꾸역꾸역 온갖 일을 다 해내던 사람들은, 이제 겁 없이 길에 나서서 못 하는 말이 없다. 이 또한 우연일 리 없다. 파업하던 날, 벚꽃 만발한 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그들은 만났다. 서로 꼭 안아 반길 만한 일이었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올해는 당신

by 센터 posted Jan 26,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축소정기훈.jpg


새 해가 떴다. 어제 또 그제의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애써 의미를 찾는다. 매듭 삼아 오늘 더 새롭기를 바란다. 그 새벽 어디 높은 곳이며 땅끝을 찾아 발을 동동 굴렀다. 그 볕은 대체로 공평한 편이어서 새벽어둠과 추위를 견디던 사람들의 볼에, 눈에, 코에 고루 이르렀지만, 그늘 짙은 곳엔 미치질 못했다. 오래전 쌓인 눈이 그대로다. 얼음으로 남았다.


어느 광장에서 손잡은 연인은 떨어질 줄을 몰라 이인삼각 꼴을 하고 엉거주춤 빙판을 기었다. 노란색 안전모 쓴 아이들이 겁도 없이 치고 나가는 통에 뒷자리 따르던 부모가 뒤뚱거렸다. 서툰 솜씨였지만 저마다의 속도로 나아갔다. 넘어져도 웃을 일. 손잡아 일으켜 줄 이가 곁에 있었다. 머리 희끗희끗한 왕년의 청춘은 녹슬지 않은 솜씨를 뽐내려다 그만 들것 신세를 졌지만 허허 웃고 말았다. 음악 틀던 디제이가 소리 잠시 줄여두고 말솜씨를 뽐냈다. 흥을 돋웠다. 망원동에서 온 누군가의 가족 사랑 사연을 알렸고, 빙판 위 젊은 남녀의 애정행각을 지적했다. 붉은색 점퍼 입은 젊은 여성의 전화번호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외로운 청춘의 마음도 마이크 잡아 전했다.


새해 광장에서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즐겁다. ‘올해는 당신’이라고 적힌 새 현수막이 도서관 벽에 걸렸다. ‘기아차 비정규직 정규직화’라고 적힌 낡은 현수막이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위에 해를 넘겨 여전하다. 넘어가던 햇볕이 그래도 공평한 편이어서 거기 잠시 머문다. 그 자리 하늘을 지붕 삼아 오래 머문 사람이 엉거주춤 오가다 가만 섰다. 빙판 위 즐거운 사람들을 한참 살폈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오버홀

by 센터 posted Apr 29,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태안화력.jpg


둥글게 말린 컨베이어벨트에 탄가루 잔뜩 앉았다. 손바닥 자국이 찌글찌글 남았다. 사고 현장이다.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회사 사람은 강조했고 들어가기도 힘든 곳이라고, 몸 굽혀 현장 살피던 조사위원은 말했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함께 일했던 동료가 사지에서 증언했다. 그의 안전모엔 이제 멀끔한 헤드랜턴이 붙어 밝았다. 어두운 밤, 굉음을 내며 돌아가던 벨트는 생목숨을 삼키고서야 멈췄다. 주황색 안전제일 벨트가 뒤늦게 그 앞을 막았다. 위험, 접근금지, 회전체 주의, 또 귀마개와 마스크와 보호구 착용을 알리는 온갖 안내문이 탄가루 덮어쓴 채 거기 많았다. 무고장 운전은 우리의 약속이라고 전광판에서 밝게 빛나던 문구가 또한 여기저기 많았다. 중앙관제실 벽에 깜빡거리던 수치는 운탄 벨트와 보일러와 터빈의 현재 상태를 소상히 알렸다. 거기 어딘가에 끼여 부서진 몸뚱아리의 상태를 살피는 항목은 없었다. 무고장 운전일수 목표치와 현재 달성일수를 알리는 전광판이 제일 위에서 밝았다. 발전소는 오버홀, 계획예방정비 공사 중이었다. 일정 주기마다 완전히 분해해서 점검한다. 갑작스러운 고장을 막기 위해서다. 죽음을 막기 위한 대수선 작업이 먼저다. 원죄 깊은 엄마가 호소하느라 여기저기서 바쁘다. 목이 쉰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Next ›
/ 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