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정년 모르시나요

by 센터 posted Sep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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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세이.jpg


오래도록 고생하셨으니 이제는 좀 쉬시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맞벌이 나선 젊은 엄마 아빠는 별수가 없었다. 늙은 엄마 품에 딸아이를 안겼다.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손주를 등에 태우고 마루를 기었다. 멍멍 짖고 야옹 울었다. 아이는 잘 따랐다. 잦은 야근에도 아이는 밝게 웃었다. 용돈 얼마간 꼬박 쥐여 드리는 것으로 마음 짐을 덜었다. 아이들 다 키워 낸 늙은 부모는 다시 아이를 키운다. 어머니 당신은 정녕 정년을 모른다. 주름진 손에 물기 마를 날이 아직 멀었다. 아버지 당신도 정년을 미처 몰랐다. 잘리고 나니 그때가 정년이었다. 황혼길이 아직은 억울한 아버지가 구직길에 나섰다. 취업박람회 안내판을 꼼꼼히 살피고, 여기저기 천막에 들러 상담을 청했다. 빨간 치마 꼬마 아가씨가 할머니 손 꼭 잡고 그 길에 쪼르르 함께했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마지노선

by 센터 posted Jul 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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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세이.jpg


불 꺼진 전광판에 현수막이 붙었다. 그건 바람에 휘날려 자주 꼬이고 뒤집혔는데, 구멍 내고 추를 달아 겨우 잡아 뒀다. 그 윗자리 올라 버티던 사람 둘은 현수막 펴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다. 난파선 조각에 매달려 표류하다가 닿은 어느 섬 해변 모래 위에 새긴 조난신호처럼, 현수막에 새긴 요구는 자꾸만 찌그러졌고, 흐릿해졌다. 섬사람들은 날짜 꼬박 세어 가며 하루 또 바람과 햇볕과 무관심과 싸운다. 그 옆 불 켜진 전광판에선 단결투쟁 나선 노동자들이 선을 지켜 행복했다. 경찰과 더불어 환하게 웃고 춤췄다. 선을 지키면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서울경찰청은 광고했다. 뒤따라 어느 보험사의 신상품 광고와 메르스 예방수칙이 화면에 부지런히 돌아갔다. 지키면 안전해진다고 전광판은 또한 말했다. 거제 대우조선해양 크레인 위에서, 부산시청 앞 전광판에서 사람들이 이제는 별일도 아닌 듯 하루 또 섬을 지킨다. 마지노선이라고, 살려야 한다고, 그 아랫자리에서 고개 꺾은 사람들이 말했다.


글과 사진 |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몽당분필

by 센터 posted Jun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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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jpg


사진, 글 |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서울 어디 차 다니던 길에 사람이 들었다. 목소리 높였다. 차벽이 금세 높아 막다른 길이었다. 오도 가도 못했다. 아이가 쪼그려 앉아 길바닥에 글을 남겼다. 하늘나라 간 언니, 오빠의 안녕을 바랐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적는데, 분필이 자꾸만 뚝뚝 부러졌다. 몽당분필 겨우 쥐고서야 마침표를 찍었다. 풍선 달린 배 그림을 그 아래에 보탰다. 옆자리 사내아이는 결정적 오타를 남기고 말았지만,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는 그럴 수 있다면서 아이를 격려했다. 곧 그 앞 높다란 차벽 너머에서 물대포 최루액이 힘껏 솟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몽땅 거칠거칠한 바닥에 나뒹굴었다. 매캐한 물이 거기 흥건했다. 쓰고 또 쓰고 몽당분필 되도록 길바닥에 새긴 불온한 추모글을 깨끗이 지웠다. 이럴 수는 없다면서 길 위의 사람들이 밤새 울었다.


현장으로 가는 길

by 센터 posted Apr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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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동양시멘트42.jpg

정기훈 /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현장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고 멀다고, 그 앞 움막 사는 남자가 말했다. 신작로가 반듯했지만 실은 거기 깊은 산골이었다. 겨울이면 가슴팍까지 눈이 쌓이고 삵과 노루가 먹이 찾아 내려와 붐비는 자리란다. 재 너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자는 늙어 낯익은 골짜기에 움막을 지었고 빨간 머리띠를 둘렀다. 보이지도 않는 현장을 바닥 그림 보태 가며 상세히 설명했다. 석회석 광산은 그의 오랜 일터였다. 바닥에 빨간색 페인트가 채 마르지 않았고, 발자국 하나 없이 선명했으니 글씨는 오늘 새로운 것이었다. 크고 작은 싸움이 그 자리에서 잦았다고 남자는 전했다. 작은 열쇠와 쇠사슬은 끊으려면 끊을 만한 것이었지만 회사의 것이었다. 그 위로 감시카메라가 분주히 돌았다. 저 아래서 빨간색 진달래를 봤느냐고 남자가 물었다. 오르는 길에 붉은 것이라곤 곳곳에 깃발이며 현수막뿐이었다고 답했다. 거기 위장도급 철폐 구호가 봄볕에 반짝였다. 오랜 법 다툼을 예고했다. 현장으로 돌아가는 길이 하나같이 가파르고 멀다.


일상다반사

by 센터 posted Mar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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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엘지오체투지.jpg

정기훈/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노조를 만들었고, 파업에 나섰다. 겨울, 해는 짧았고 그림자가 길었다. 여의도 쌍둥이빌딩 짙은 그림자가 종일 그 앞 농성장을 덮었다. 거기 강바람이 내내 드셌다. 누군가는 권한이 없었고, 또 누군 책임이 없었으니 교섭은 지지부진했다. 언젠가 회장님 집 앞을 찾아 여럿이 머릴 깎았고 남산을 올라 외쳤다. 또 같은 처지 동료 농성장을 부지런히 다니느라 이들은 바빴다. 쉬는 틈이면 담뱃불을 나눴다. 우린 어디에 올라가야 할지를 농담 삼았다. 생활 자금 대출 요령도 나눴다. 그리고 또 하루, 행진했다. 두 팔과 두 다리 쭉 뻗고 길에 엎드렸다. 꾸물꾸물 기었다. 행렬이 길었다. 행진은 느렸다. 갈 곳이 눈앞에 금방인데, 가려니까 멀었다. 며칠 포근하더니, 어찌 알고 한파가 닥쳤다. 누구한테 절하는 거냐고, 지나던 할머니가 혼잣말을 했다. 전화기 들어 사진 찍었다. 마음 급한 운전자가 빵빵거렸다. 무전기 든 경찰이 뒤따라 바빴다. 늘어선 경찰버스 공회전 소리가 멎질 않았다. 거기 빨간색 단결투쟁 머리띠 묶은 노동자가 그저 말없이 길에 엎드려 절절했다.


어느 출근길

by 센터 posted Dec 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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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 한편 밝게 빛나는 전광판에 사람 둘이 올라 겨울바람을 버틴다. 현수막 내걸고 농성한다. 가끔 손짓을, 때때로 구호를 외친다. 그 아랫자리에 비닐 집 짓고 동료들이 버틴다. 자주 고개 꺾어 하늘을 살핀다. 저녁 문화제에 선보일 노래 연습을 한다. 틈틈이 누워 쪽잠을 청한다. 낡은 침낭이 한낮 인도 위에 능청맞게 뒹군다. 끼니 삼은 단팥빵 포장지가 바람 따라 구른다. 바싹 마른 귤 껍데기가 분주한 발길 아래 바스러진다. 노숙 농성이 이미 길었다. 고공 농성이 어느새 기약 없다. 어서 퇴근하여 가족과 함께 지내라는 정부 광고가 전광판에 오른다. 하트 뿅뿅 정겹다. 태극기 휘날린다.



축소_어느 출근길.jpg




글·사진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주마등처럼

by 센터 posted Oct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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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큰 사내는 동료 품에 들어 한참을 울었다. 꺽꺽 소리 불규칙했고 어깨 따라 들썩거렸다. 품을 내어 준 동료는 내내 웃었지만, 눈시울이 차츰 붉었다. 눈두덩이 그새 부었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법원 정문 앞을 맴돌았다. 입 꽉 다물고 먼 곳을 살폈다. 버릇처럼 스마트폰 들어 대화창을 보고 또 훑었다. 등을 툭 치며 인사 건네는 동료 손짓에 참았던 울음이 툭 터졌다. 언론사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분주히 터졌다. 법원은 이날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지위를 인정했다. 4년여 만의 일이다. 1심 선고였다. 회사는 항소를 예고했다. 검찰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싸운 이들에 무더기 실형을 구형했다.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주마등처럼 돌고 돈다.


주마등처럼.jpg




글·사진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오! 재미

by 센터 posted Aug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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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 내걸렸다. 세월호 유가족이 앞장섰다. 파업 중인 티브로드 노동자가 뒤따랐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이니, 생활임금 쟁취는 소박했지만 절박한 요구였다. 박 대통령과 여당은, 또 원청 사용자는 모르쇠로 버틴다. 짐짓 뒷짐이다. 문전박대가 한결같아 야박했다. 모래주머니 쥔 손에 힘 들어갔다. 이 꽉 깨물고 던졌다. 두들겨라, 언젠가 열릴 것이다. 박 터지게 던지니 박이 터졌다. ‘안전규제 강화’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려왔다. 박수가 터졌다. 웃음 뒤따랐다. 오! 재미도 있다. 대박이다.


축소_박터지게4.jpg



글·사진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Atachment
첨부파일 '1'

꿰어야 보배

by 센터 posted Jul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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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던가. 노동자가 수천이라도 조직해야 보배다. 사람답게 살자고 나선 일인데 죽어 앞장선 이가 검은색 머리띠에 흔적을 남겼다. 같이 울고 웃던 동료였으니 남은 사람들은 상복을 입었다. 영정 들고 거리를 헤맸다. 밤이면 서초동 어느 높은 빌딩 앞자리에서 노숙을 했다. 눈 뜨면 또 하루 머리띠 묶고 바빴다. 살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죽자고 달려들었다. 그곳에서 노조는 오래도록 금기였다. 이름값이 높았다. 때로 목숨값을 넘었다. 법당을 찾았다. 전자제품 정교한 부품을 다루던 손이지만, 염주 알 하나 실에 꿰는 게 쉽지 않았다. 절 한 번에 한 알이었다. 땀 한 방울씩이 거기 섞였다. 늦었지만 온전히 꿰어 염주 알을 셌다. 108개였다. 먼저 간 동료의 넋을 기렸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의 손이다. 피땀으로 만든 이름이다.




축소_삼성서비스조계사24.jpg



글·사진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돈보다 사람, 꽃보다 노조

by 센터 posted Jul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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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자리에 방송 카메라 한 대 보이질 않았다. 대신 무전기 들고 분주한 경찰이 많았다. 커다란 펼침막엔 누구라도 알 만한 사람의 얼굴과 누군지도 모를 이의 영정이 줄줄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사선을 넘은 이들도 한때 자랑스러워했을 회사 로고가 그 뒤로 보였다. 삼성을 넘겠다고 선언한 이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옆자리에 섰다. 그곳에서 노조는 오래도록 금기였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니 차라리 광기였다. 금기를 부수겠다는 다짐에 결기가 섞였다. 탄압 사례를 읊었다. 지난 설움을 복기했다. 박수 오가며 사기 높았다. 온기 모였다. 할 말 있는 사람은 모였으나, 들어줄 이가 그 앞자리엔 적었다. 화분 속 봄꽃이 그 자릴 메꿨다. 돈보다 사람이, 꽃보다 노조가 먼저라더라.



돈보다 사람, 꽃보다 노조_축소.jpg



글·사진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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