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남은

by 센터 posted Apr 27,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만남의장.jpg

 

학교에서 밥 짓던 사람 여럿이 아팠다. 우연이 아니다. 커다란 튀김 솥 앞에서 가자미를, 돈까스를 튀겨 내던 그들은 자욱한 연기 속에서도 숨쉬기를 멈출 수가 없어 폐를 혹사했다. 쌀 포대와 업소용 식용유와 양파·당근 자루를 나르고 칼질하느라 근육과 관절을 갈아 냈다. 아이들 밥 짓는 일을, 또 밥벌이를 멈출 수가 없어 견딘 시간은 독으로 남았다. 일하다 아프거나 죽지 않게 하자는 뻔한 말을 하느라 길에 서고, 소리치고,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쏟아야만 했던 사람들은 서로 무척 가까웠다. 언니, 동생, 친구, 동료였고 동지였다. 그들 모인 둥지에서 비로소 큰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집에서 또 일터에서 말없이 꾸역꾸역 온갖 일을 다 해내던 사람들은, 이제 겁 없이 길에 나서서 못 하는 말이 없다. 이 또한 우연일 리 없다. 파업하던 날, 벚꽃 만발한 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그들은 만났다. 서로 꼭 안아 반길 만한 일이었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7 가면 file 센터 2022.10.31 22
56 개 풀 뜯어먹는 소리 file 센터 2016.06.27 1388
55 겨울 file 센터 2022.12.22 40
54 겨울, 거울 file 센터 2020.01.02 774
53 골든타임 file 센터 2017.07.03 1176
52 광장에서 사람들은 file 센터 2016.12.27 1159
51 그들이 꿈꾸었던 file 센터 2018.08.28 1211
50 꼿꼿하게 file 센터 2021.04.26 113
49 꿰어야 보배 file 센터 2014.07.08 2034
48 노래 이야기 file 센터 2019.02.25 1709
47 답정너 file 센터 2015.12.02 1497
46 당신은 정년 모르시나요 file 센터 2015.09.30 1466
45 데칼코마니 file 센터 2017.08.28 1244
44 돈보다 사람, 꽃보다 노조 file 센터 2014.07.01 1808
43 마지노선 file 센터 2015.07.23 1446
42 맨 앞에 오토바이 file 센터 2019.06.25 1109
41 맨 앞자리에서 file 센터 2019.08.29 1029
40 몽당분필 file 센터 2015.06.03 1772
39 무사고 사이 file 센터 2023.09.13 49
38 발전 없다 file 센터 2020.08.24 96076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Next ›
/ 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