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중

by 센터 posted Feb 27,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봄마중.jpg

 

내복에 두꺼운 점퍼를 벗지 못하고 산다. 길에서 바들바들 떨었던 기억 탓이다. 칼날 같던 바람이 어느새 산들산들, 훌쩍 창밖으로 봄기운 스민다. 습관처럼 껴입은 나는 별 수도 없이 땀 흘린다. 그제야 봄 가까운 줄을 안다. 청소해야지, 이불을 빨아야지, 내 맘속 묵은 때도 좀 털어야지, 새봄맞이 계획을 세워 볼 만할 때다. 봄볕 소중한 줄을, 겨울 혹독하게 겪은 사람이 안다. 저기 병원 청소 노동자는 인터뷰 기다리는 그 시간을 그냥 보내질 못하고 틈틈이, 꼼꼼히 걸레질한다. 창가에 가지런히 둔 화분을 제집 것인 양 살뜰히 살핀다. 우유를 물에 섞어 주면 좋다고 집과 일터에서 비밀의 화원을 가꾼 노하우를 전한다. 빨간색 제라늄꽃과 초록의 이파리는 그곳 재활의학병동 휠체어 탄 환자와 간병인 누구나의 시선을 오래 잡아끈다. 사방에 꽃망울 팡팡 터지는 창밖의 봄을 떠올리게 할 테다. 걸레질하는 ‘여사님’은 카메라 앞에 서기를 처음에 꺼렸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단다. 곧, 찍어도 괜찮다고 했다. 정규직 됐다니 그건 좋은 일이었다. 월급이 많이 오른 것도 아니라 민망하다고 노조 사람은 말했지만, 복지 혜택과 고용안정이 저이에게 봄볕 같았다. 마음 써 가꾼 화분 옆에 앉는다. 손 뻗어 꽃 옆에 둔다. 시선은 카메라를 향한다. 사진첩에 수십 장은 보일 법한 그 포즈를 자연스레 해낸다. 능숙한 걸레질에 바닥이 반짝인다. 살짝 주름진 얼굴에 봄볕 들어 웃음꽃 피어났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기자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8 가면 file 센터 2022.10.31 26
57 개 풀 뜯어먹는 소리 file 센터 2016.06.27 1392
56 겨울 file 센터 2022.12.22 45
55 겨울, 거울 file 센터 2020.01.02 776
54 골든타임 file 센터 2017.07.03 1177
53 광장에서 사람들은 file 센터 2016.12.27 1164
52 그들이 꿈꾸었던 file 센터 2018.08.28 1214
51 꼿꼿하게 file 센터 2021.04.26 115
50 꿰어야 보배 file 센터 2014.07.08 2037
49 노래 이야기 file 센터 2019.02.25 1710
48 답정너 file 센터 2015.12.02 1501
47 당신은 정년 모르시나요 file 센터 2015.09.30 1472
46 데칼코마니 file 센터 2017.08.28 1245
45 돈보다 사람, 꽃보다 노조 file 센터 2014.07.01 1810
44 마지노선 file 센터 2015.07.23 1452
43 맨 앞에 오토바이 file 센터 2019.06.25 1110
42 맨 앞자리에서 file 센터 2019.08.29 1031
41 몽당분필 file 센터 2015.06.03 1773
40 무사고 사이 file 센터 2023.09.13 59
39 발전 없다 file 센터 2020.08.24 96080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Next ›
/ 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