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부조화

by 센터 posted Oct 22,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배달통.jpg


오토바이엔 두 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중 뒤쪽에 앉았던 사람이 가게 앞까지 날아왔다고 바퀴 고치던 자전거가게 사장님이 말했다. 바퀴에 바람 넣느라 그 앞에 섰던 사람들은 넘어진 오토바이에서 뜯겨나간 잔해와 배달통을 튀어나와 날아간 포장 음식 따위를 살펴보다 혀를 찼다. 거길 지나던 동네 사람들에게 사고 경위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틈틈이 인도 한편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던 라이더를 살펴봤다. 얹어 배달하던 음식 보따리 여러 개엔 붉은 국물이 줄줄 흘렀다. 지켜보던 아빠는 자전거 뗀 지 얼마 안 된 아이에게 안전모를 꼭 써야 한다고,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잔소리했다. 좁은 골목길을 빠른 속도로 내달리던 배달 오토바이에 놀라 아이 손을 급하게 잡아끈 아빠는 씩씩거리면서 저만치 간 오토바이 꽁무니를 흘겨본다. 저녁 밥상을 차리려 냉장고를 뒤지던 아빠는 다 귀찮아 배달 앱을 뒤진다. 예상 시간이 길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아이한테는 금방 올 거라고만 거듭 말했다. 오토바이 소리 들려 나가보면 옆집 것이었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배달 기사의 말에 괜찮다고 했는데, 거기 짜증이 잔뜩 묻었다. 그리고 일 나간 아빠는 어디 배달플랫폼 업체 본사며 국회 앞에서 헬멧 쓴 라이더의 이야기를 듣고 찍는다. 최소한의 안전망 없이 위험한 질주에 내몰린 특수고용 노동자의 사연 전하던 사람을 그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 꽁무니와 엮어 사진에 담는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요지의 설명을 보탠다. 조화롭지 못한 여러 생각 보따리가 머릿속을 내달린다. 오늘도 배달 오토바이가 내달린다. 균형 잃은 배달통에서 붉은 국물이 쏟아진다. 코로나 시대 일상다반사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8 설 자리 file 센터 2024.01.09 22
57 엄마 눈물이 툭 file 센터 2023.11.03 31
56 무사고 사이 file 센터 2023.09.13 58
55 추락하는 것은 file 센터 2023.06.27 57
54 우리 만남은 file 센터 2023.04.27 38
53 봄 마중 file 센터 2023.02.27 30
52 겨울 file 센터 2022.12.22 45
51 가면 file 센터 2022.10.31 26
50 연인은 웃는다 file 센터 2022.08.29 47
49 비보호 file 센터 2022.06.27 38
48 이면, 혼신의 힘 file 센터 2022.04.25 39
47 허수아비 file 센터 2022.02.24 49
46 손잡아 주는 일, 기대어 서는 일 file 센터 2021.12.23 76
45 훈장처럼 file 센터 2021.10.27 65
44 붉은 ‘농성’ file 센터 2021.08.25 54
43 밥 냄새 file 센터 2021.06.23 132
42 꼿꼿하게 file 센터 2021.04.26 115
41 유실물 file 센터 2021.02.24 123
» 인지부조화 file 센터 2020.10.22 311
39 발전 없다 file 센터 2020.08.24 96079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Next ›
/ 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