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라 말하고, 어느새 농성은

by 센터 posted Apr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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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분향소.jpg


봄맞이하느라 사람들이 바쁘다. 노랑 파랑 빨강 온갖 꽃과어린 나무를, 또 잔디를 심는다. 물을 주고 살뜰하게 보살핀다. 잔디를 밟지 마시오, 경고문 세워 지킨다. 봄볕 아래 초록빛 쑥쑥 잘도 자란다. 투실투실 잔디 더미가 저기 가득. 얼음지치던 광장에도 어느새 봄이다. 거기 동료 떠나보내느라 노동자들이 상복 입고 바쁘다. 국화를 꽂고, 향을 심는다. 눈물몇 방울 거기 보탠다. 먼 길을 오가고, 긴 밤을 새운 탓에 언젠가 밤낮 없던 일터에서처럼 깜박 졸았다. 올빼미는 밤에 운다.늦은 밤 상가에서 이들은 울음 참느라 입을 앙다물었다. 노조를 짓밟지 마시오. 오랜 구호 새긴 선전물은 광장에서 부서지고 밟혔다. 영정만을 품어 겨우 지켰다. 앉아 버티며 향을 또심었다. 재가 수북했다. 언젠가 향내 멈추질 않던 거기 또 향내짙다. 건너편 대한문 앞에서 화단 지키느라 바빴던 경찰이 오늘, 광장에서 잔디 지키느라 빙 둘러 우뚝 섰다. 책임지는 이가 없어 탈상이 멀었다. 멀지 않은 곳 옥상에 오른 비정규 노동자 둘이 그 꼴을 지켜봤다. 끝장을 보고 싶다 말하고, 어느새꽃은 피고지고. 매한가지 책임을 묻는 농성이 어느새 길었다.


정기훈 |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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