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노조를 만들었고, 파업에 나섰다. 겨울, 해는 짧았고 그림자가 길었다. 여의도 쌍둥이빌딩 짙은 그림자가 종일 그 앞 농성장을 덮었다. 거기 강바람이 내내 드셌다. 누군가는 권한이 없었고, 또 누군 책임이 없었으니 교섭은 지지부진했다. 언젠가 회장님 집 앞을 찾아 여럿이 머릴 깎았고 남산을 올라 외쳤다. 또 같은 처지 동료 농성장을 부지런히 다니느라 이들은 바빴다. 쉬는 틈이면 담뱃불을 나눴다. 우린 어디에 올라가야 할지를 농담 삼았다. 생활 자금 대출 요령도 나눴다. 그리고 또 하루, 행진했다. 두 팔과 두 다리 쭉 뻗고 길에 엎드렸다. 꾸물꾸물 기었다. 행렬이 길었다. 행진은 느렸다. 갈 곳이 눈앞에 금방인데, 가려니까 멀었다. 며칠 포근하더니, 어찌 알고 한파가 닥쳤다. 누구한테 절하는 거냐고, 지나던 할머니가 혼잣말을 했다. 전화기 들어 사진 찍었다. 마음 급한 운전자가 빵빵거렸다. 무전기 든 경찰이 뒤따라 바빴다. 늘어선 경찰버스 공회전 소리가 멎질 않았다. 거기 빨간색 단결투쟁 머리띠 묶은 노동자가 그저 말없이 길에 엎드려 절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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