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꽃차와 생강 꽃차

by 센터 posted Apr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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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명  시골에서 이것저것 하는 사람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피는 꽃이 산수유와 생강나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목련꽃도 먼저 피는 꽃 중에서 빠지면 사나흘 울며불며 서러워할 꽃이다. 나는 귀농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지 않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고 싶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맞는 일을 조금씩 해서 먹고사는 방법을 고민했다. 봄에는 꽃차를 만들어서, 여름에는 오디 잼을 만들어서, 가을에는 농작물을 수확해서, 겨울에는 칡이나 약초를 캐 팔아서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고, 더욱이 아내의 요청은 삼엄했기에 용돈이 아닌 주 수입이 있어야 했다. 그것도 내가 그토록 바라지 않던 기간제 비정규직 일로 벌고 있다. 그래도 꿈을 키우며 봄이 오면 꽃차를 만들어 용돈을 벌고 있는데 요사이 내가 주로 만드는 꽃차는 목련 꽃차와 생강나무 꽃차, 생강나무 작설차이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닮은 면도 많고 다른 면도 많다. 산수유는 대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서 자라고, 양지바른 산기슭에서는 생강나무가 서식한다. 흔희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이 닮았다고 하는데 이는 노랗게 피어난 꽃을 볼 때 주로 하는 말이다. 꽃이 활짝 피고 난 모습이나 꽃 외에 나무의 수피나 잎사귀가 자라는 형상을 보면 전혀 다른 걸 알 수 있다. 산수유꽃은 어딘지 모르게 좀 엉성한데 비해서, 생강나무꽃은 보슬보슬하고 둥근 게 향이 좋다. 열매도 산수유는 붉은 알갱이라면 생강나무는 검은 알갱이의 열매가 열린다. 나는 생강나무꽃을 따서 씻고 말려서 꽃차를 만든다. 생강나무는 강원도에서는 동백나무라고도 하는데,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 알싸한 그 향기는 바로 생강나무 향이다. 봄에 생강나무꽃을 따서 꽃차를 만들라 치면 어느새 목련꽃도 봉오리가 올라오고, ‘어 목련꽃이 피려고 하네.’ 라고 생각한 며칠 뒤면 하얗고 탐스런 목련꽃이 피어버린다. 목련 꽃차는 꽃이 피어버리면 활말짱 꽝이라서 꽃이 피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목련꽃은 꽃이 피기 전에 꽃봉오리를 따서 껍질을 벗겨 꽃차를 만든다. 내가 장수에 살면서 얻는 수익 중에서 가장 먼저 용돈을 가져다주는 게 바로 생강나무 꽃차와 목련 꽃차이다. 주로 시차를 두고 피던 꽃들이 요즘은 그냥 한꺼번에 다 피어버리는 통에 일정이 마구 꼬이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면 산수유, 생강나무, 목련, 진달래, 벚꽃까지 죄다 피었다. 심지어 살짝 해가 드는 반음지에 임하부인이라고 불리는 으름덩굴에도 꽃이 피었다.

 

귀농한 첫 해, 재작년에는 처음으로 차를 만들어보면서 방법을 익혔다. 그야말로 한 스무 송이 만들어서 나만 마시거나 찾아오는 지인들하고 한두 잔 나누어 마시다보니 그 양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내년에는 제대로 많이 만들어 돈벌이도 해보리라고 맘을 먹었다. 그러나 지난해는 어~어~ 하다가 꽃피는 때를 놓치고, 또 비를 만나면서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또 가향을 한다고 더 말리다가 태우기도 했다. 다시 꽃을 따다가 만들려고 하니 이미 꽃이 만개해버려서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나는 주로 집 주위 600미터 고지의 산에서만 꽃을 구해왔기에 다른 곳에는 이미 꽃이 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꽃피는 전선에 따라서 움직여야 함을 알았다. 표고가 낮고 양지바른 곳과 지대가 높고 그늘진 곳의 차이가 한 달이 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제 장수에 피는 모든 꽃이 바로 내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서 수첩에 고도가 낮고 양지바른 어느 마을 뒷산에서 몇 월 며칠에 무슨 꽃이 피고, 가장 늦게 피는 꽃은 어느 마을 옆 OO라고 기록도 해 놓았다.

 

올해 2월 하순이 되면서 양지바른 곳에 산수유꽃이 피기 시작했다. 산수유꽃이 핀다는 것은 곧 산에는 생강나무꽃이 핀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주를 다녀오면서 보니 아파트 단지 해가 잘 드는 곳에는 목련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목련과 생강나무가 쌍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옳거니, 드디어 일 년 내내 기다리던 때가 왔다. 나는 두근거리는 맘을 진정시키면서 우선 목련 꽃차를 만들 생각에 바구니와 장대 낫을 들고 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산에 도착해서 경악하고 말았다. 내가 2년 동안 애지중지(?) 보아왔던 어른 허리만한 목련나무 십여 그루가 다 베어지고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올해 여기서 꽃봉오리 50킬로그램 정도를 따서 긴물찻집에 납품할 야심찬 계획이었는데 시작부터 어긋났다. 아, 괜히 억울해졌다. 내 용돈이 순식간에 40만 원 날아갔다.(흐흑~) 긴물찻집에 전화해서 올해 나무가 다 베어져서 납품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내가 직접 마시고 팔 소량의 꽃차만 만들기로 했다.

 

내가 살던 멧골의 뒷산에 가서 한 바구니를 따와 그야말로 꽃봉오리와 사투가 시작되었다. 이름만으로 보면 꽃차 만들기가 낭만적이고 예쁜 꽃잎이랑 봄놀이하는 것 같지만, 이게 극한 노동이다. 목련꽃봉오리는 겉에 솜털이 보송보송하니 나 있고 그 겉껍질을 벗기면 연노란 색의 꽃잎이 펴지기 전 상태로 단단하게 돌돌 말려있다. 꽃잎은 보통 아홉 장이다. 그걸 한 장씩 벌려서 펼치고 건조대에 거꾸로 얹어놓아서 펼친 모양을 만든다. 처음 꽃을 따오면 빳빳하고 단단해서 쉽게 펴지지 않으며, 약간의 힘만 주어도 부러져 버린다. 첫 해에 꽃잎을 펼치다가 성질이 나고 답답해서 패대기쳐 버리고 그냥 도마에 놓고 반씩 잘라서 건조하기도 했다. 차의 향이나 맛은 차이가 없지만, 차를 끓였을 때 꽃이 펴진 모양이 아니라서 보기에는 그다지 맛나 보이지 않는다.

 

다시 심기일전해서 음악을 들으면서 맘을 비우고 한 땀 한 땀 꽃잎을 펼쳐서 꽃차를 만들었다. 3월 중순에 시작해서 매일 저녁만 되면 한두 시간씩 꽃잎을 펴고 말리고를 반복했다.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정좌로 앉아서 꽃봉오리를 벗기노라면 다리는 피가 통하지 않고, 허리도 끊어질 듯 아프다. 일의 진척은 너무 느려서 답답해진다. 솜털이 날리면서 코로 들어가서 재채기가 나기에 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 한다. 그래도 다 끝내고 나서 밤새 건조시키고 아침에 꽃봉오리가 펴진 상태로 예쁘게 향을 낼 때면 그야말로 내가 꽃이 된 듯한 무아일체의 빛나는 풍경에 기분이 좋아진다. 바로 물을 끓여서 한잔 맛을 본다. 활목련꽃봉오리는 신이화라고도 불리는데 비염에 특효가 있다. 나는 흐린 날이나 비가 오는 날, 술 마신 다음날에 비염이 심해서 콧물이 질질 흐르곤 했는데, 목련 꽃차 덕분에 말끔해졌다.

 

목련 꽃차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 이번에는 진달래꽃과 생강나무꽃을 따왔다. 목련 꽃차와 시기가 겹치면 냉장고에 며칠 보관해도 괜찮은 걸 경험했다. 진달래나 생강나무 꽃차는 목련 꽃차 만들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싱싱한 꽃잎을 씻어서 하루 정도 물기를 뺀 뒤에 건조기에 넣어 이틀간 건조를 시켰다. 목련 꽃차가 짙은 연노란 색에 진한 향을 내뿜는데 비해, 진달래 차는 색상은 연보라색이지만 아무런 맛과 향이 없다. 생강나무 꽃차는 그 중간인데 뜨거운 물을 부으면 연노랑으로 변하면서 아주 은은하고 고상한 맛을 낸다. 여기에 생강나무꽃이 지고 난 뒤 잎을 따서 덖은 잎차를 섞으면 노란 꽃과 초록의 잎이 다시 피어나는 듯한 멋진 작설차가 된다. 4월 초, 목련 꽃차와 생강나무 꽃차가 한바구니 만들어졌다. 올핸 양도 그렇고 모양도, 맛도 만족스럽게 만들어졌다.

 

포장 팩에 실리카겔 제습제를 하나씩 넣고 꽃차를 조금씩 담았다. 판매용은 좀 더 신경을 써서 택배로 배송을 했다. 좀 더 오래 보관할 것은 병에 담았다. 귀농 3년 차에 사상 최대의(?) 수익이 기대되는데 몇 년 후를 생각해서 목련꽃나무와 생강나무도 몇 그루 심었다(올핸 나무를 제법 많이 심었는데, 감나무 여섯 그루, 복숭아나무 네 그루, 앵두나무 네 그루, 포도나무 두 그루, 구지뽕나무 두 그루, 블루베리 네 그루, 아로니아 두 그루). 자연의 일부가 되어 감을 느낄 때, 그동안 살아오면서 뒤틀리고 굽어졌던 내 감정의 굴곡이 펴지는 것도 느낄 수 있다. 갓 만들어낸 생강나무 꽃차를 한잔 마셔보면서 원시공동 세상의 고차원적 회복이 혹시 이런 과정은 아닐까 하는 좀 생뚱맞은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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