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와 양이

by 센터 posted Ju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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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명  시골에서 이것저것 하는 사람



멧골에 살면서 이웃 사람들보다도 더 자주 만나고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다. 지금은 세대를 건너뛰어서 처음에 만났던 아이들은 볼 수 없다. 하지만 처음 만났던 봉구와 양이를 빼고 동물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봉구와 양이.jpg

봉구가 양이 목덜미를 깨물며 놀고 있다.


봉구는 2018년 가을에 태어난 수캉아지고, 양이는 새끼 세 마리를 둔 다섯 살 된 암고양이였다. 멧골 흙집에 이사 오기 한 달 전, 집 상태를 살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양지바른 마당 위 툇마루에 앉아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꼬리를 치며 머리를 비비던 녀석들이 봉구와 양이었다. 둘 다 뒷집 자연인 신종영 씨가 키우는 동물이었는데, 착한 주인을 닮아서인지 강아지와 고양이는 내게 거부감 없이 먼저 다가왔다. 아랫집 사는 자유 씨의 표현에 의하면, 신종영 씨는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많이 주면 그만큼 게으르고 자기 할 일을 안 하기 때문에 조금만 준다고 했다. 주인이 먹을 것을 조금밖에 주지 않아서 봉구와 양이는 늘 배가 고파 외지사람에게 다가가는 버릇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신종영 씨 부탁으로 고양이와 강아지 사료를 사다 준 적이 있는데 개와 고양이 사료를 따로 구분해서 밥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만 원짜리 개 사료를 사서 함께 주고 있었다.


봉구의 원래 이름은 ‘야~’ 였다. 신종영 씨는 봉구나 양이, 양이 새끼들에게 밥을 줄 때마다 “야~” 라고 소리쳐 불렀다. 그러다 내가 신종영 씨에게 강아지 이름을 제대로 지어주자고 했더니 봉구와 다른 이름 하나를 불러주기에 난 봉구로 정했다. 봉구는 신종영 씨가 몇 년 전 키우던 개의 손주였다. 전체적으로 약간 누런색 바탕에 쫑긋한 귀와 겁먹은 듯한 동그란 눈동자, 길고 뾰족한 턱이 마치 사막의 여우 새끼를 닮았다. 크기도 한국의 발발이만 해서 위협적이지 않은 편이라 사람들이 귀여워했다. 그런 봉구지만, 유독 오토바이를 타는 우체부와 택배기사에게는 아주 사납게 짖으며 달라붙곤 했다. 오래전에 봉구 할머니가 지나가는 차에 치인 적이 있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봉구는 할머니 개의 피를 이어받았나 보다. 봉구는 아기 때부터 양이와 양이 새끼 세 마리와 함께 지내서인지 양이를 엄마 대하듯했다. 그러나 양이 새끼들한테는 아주 건방진 오빠나 형님 행세를 하곤 했다. 가끔 먹을 것을 두고 고양이들과 다투다가 양이한테 뺨따귀를 맞으면 그게 분해서 양이 새끼들한테 으르렁거리면서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한 가족이었다. 봉구는 양이가 누활워있을 때 다가가서 목덜미를 깨무는 걸 좋아했다. 양이도 가려운 곳을 긁어줘 좋은지 가만히 있는다.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둘의 관계를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양이의 원래 이름은 ‘미미’였다. 그러나 신종영 씨는 강아지든 고양이든 “야~”라고 불렀는데 난 그게 맘에 들지 않아서 그냥 고양이에서 이름을 따와 ‘양이’라고 불렀다. 양이는 콧잔등과 목덜미, 다리에 하얀 털과 몸통의 잿빛 털이 잘 어울리는 아주 순하고 기품있는 고양이다. 내가 외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난 후 뼈다귀나 생선을 싸 와서 “양이야~”라고 소리치면 봉구와 함께 양이와 그 아이들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농밀한생활.jpg


양이의 새끼들은 나비와 나비투로, 나머지 한 마리는 외톨이라고 이름 지었다. 외톨이는 워낙 사람을 피하고 자기들끼리도 홀로 동떨어져서 지냈는데, 늘 봉구의 폭정을 피해 나무 위로 달아나고 쌓아놓은 장작 위로 올라가 지내곤 했다. 양이도 암컷이고 새끼 세 마리도 모두 암컷이었다. 5월이 되면서 양이와 새끼 세 마리가 모두 임신을 했다. 그리고 6월에 새끼를 낳았는데 고양이들은 새끼들을 집에서 낳지 않고 집과 조금 떨어진 풀숲이나 돌 밑에서 낳아 키웠다. 새끼들이 조금씩 뛰어다닐 때가 되자 집 주변에선 온통 고양이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여기저기서 고양이 새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양이와 나비투가 세 마리, 나비와 외톨이는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열네 마리 고양이 새끼까지 살게 되면서 그야말로 고양이 천국이 되었다. 처음에는 고양이들이 하도 많아서 이름지어 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또 아비가 한 마리인지 새끼들이 다 비슷비슷해서 누가 누구 새끼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고양이 어미들은 자기 새끼와 다른 어미 새끼를 구분하지 않고 핥아주고 놀아주고 젖을 물렸다. 양이는 자기가 낳은 새끼들에게도 젖을 물리고 손주들에게도 젖을 물리면서 고양이 집안의 할머니가 되었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고 고양이들이 제법 날쌔게 뛰어다닐 때가 되자 그 많던 고양이들이 어느 날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양이와 외톨이, 외톨이 새끼 겁쟁이, 쭈쭈만 남았다. 모두 양이의 후손들인데 쭈쭈는 누구 새끼인지 모르지만, 하얀색과 검정색 털을 가진 것으로 봐서 양이의 새끼인 것 같았다. 수컷이었는데 다 커서도 양이 젖을 빨려고 해서 ‘쭈쭈’라 이름 붙였다. 겁이 없어 강아지 봉구한테도 제법 대들고 신동이(진도에서 온 강아지)의 얼굴도 할퀴는 대범함을 보였는데 유독 사람은 무서워했다. 그러다가 지난 겨울 외톨이가 임신을 할 즈음에 양이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봉구는 눈치 빠르고 영리했다. 내가 고양이들과 강아지에게 먹을 것을 똑같이 주다 보면 봉구는 자기 것을 물고 잽싸게 집에 가져다 놓고 온다. 그리고 내가 주는 것을 받아먹거나 옆의 고양이 것을 빼앗아 먹곤 했다. 또 내가 맛있게 먹는 것은 봉구도 따라서 맛있게 먹으며 내 맘을 사려고 했다. 특히 봉구는 수박을 좋아했다. 잘 익은 수박도 좋아했지만 약간 단단한 수박 껍질을 아삭아삭 씹으면서 더 달라고 매달렸다. 밤도 좋아했다. 삶은 밤 껍질을 벗기고 부드러운 알맹이를 주면 덥석 물고 처마 밑으로 가서 오물오물 씹어 먹는 것도 좋아했다. 


한 번은 밤을 주우러 차를 몰고 임도를 지나 산속 깊이 간 적이 있는데 난 밤을 줍다가 깜짝 놀랐다.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는생활데 다름 아닌 봉구가 나타난 것이다. 혹시 들개인가 싶어서 “봉구” 하고 불렀더니 꼬리를 치며 얼른 달라붙었다. 무서운 산속에서 봉구가 옆에 있으니 한결 안심이 되었다. 혹여 멧돼지가 나온다 해도 봉구가 먼저 알고 소리쳐줄 것이라는 믿음에 휴대폰 음악도 꺼버렸다. 


밤을 모두 줍고 나서 집으로 오는 길에 봉구가 고마워서 차에 태우고 왔다. 봉구는 달리는 자동차 창밖을 보면서 기가 죽었는지 아주 놀라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 집에 다 와서 차에서 내리려는데 그만 오줌을 지려버렸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서도 익숙한 집 앞 풍경을 보고도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수 킬로미터를 이동했으니 오죽했을까? 그 이후에 봉구는 내가 매동제 저수지를 넘어설 때쯤이면 자동차 소리를 듣고 200여 미터를 마중 나와서 길을 안내하곤 했다.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강아지처럼 귀를 세우고 꼬리를 흔들면서 자동차 앞을 거침없이 뛰어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난 만화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봉구와 함께 고사리를 끊으러 옆집 제각 뒷산을 자주 다녔다. 제각엔 진돗개 두 마리가 묶여있었다. 작은 진돗개는 장차 식용으로 키웠고, 큰 진돗개는 구리 사는 지인이 도시에서 키우기 어려워 가져다 놓은 개였다. 진돗개들의 입장에선 봉구가 너무 부럽고 자유로운 존재였다. 봉구는 다른 개들하곤 잘 어울리는데 이상하게 큰 진돗개하곤 친하질 못했다. 어느 날 작은 진돗개가 줄을 풀고 도망쳤고, 옆집 형님은 큰 진돗개를 풀어 작은 진돗개를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큰 진돗개가 그만 우리 집과 신종영 씨 집 사이로 오더니 봉구를 물어 죽여버렸다. 난 자유 씨와 함께 봉구를 밭에 묻어주었다. 지난해 11월 한 달 사이에 강아지 두 마리를 떠나보냈다.(진도에서 데려온 두 달된 강아지 신동이는 차에 치어 죽었다.) 


한동안 나는 봉구와 신동이 환상에 시달리곤 했다. 바깥에 나갔다가 저수지를 넘어 집에 돌아올 때면 봉구가 막 달려올 것 같았고, 아침에 눈 떠서 창밖을 볼 때면 봉구와 신동이가 문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말이 그렇게 와닿을 줄 몰랐다. 


신동이와 봉구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양이 가족이 보이지 않았다. 먼저 양이의 딸인 나비와 나비투가 보이지 않았고 그 새끼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월이 되면서 양이도 보이지를 않고 쭈쭈도 자취를 감추었다. 고양이가 어른이 되면 이소를 한다고 하지만, 왜 양이와 양이의 아기들, 나비와 나비투의 아기들까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추측해보면 양이는 자신의 수명이 다해 죽을 자리를 찾아간 것이 아닌가 싶고, 나비와 나비투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간 것이 아닐까? 


멧골은 지금 어린 고양이들 천국이다. 양이의 막내딸인 외톨이와 여름에 태어난 겁쟁이, 그리고 지난가을에 태어난 외톨이 아기들이 있다. 외톨이는 지난가을에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 그중 한 마리는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보이지 않고 세 마리만 자주 눈에 띄었다.


나는 신동이를 키우면서 사 놓은 고급(?) 개 사료를 고양이 새끼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고양이마다 이름을 붙여주었다. 가장 사람을 잘 따르는 잿빛 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녀석은 쿠로(쿠로는 이름 비슷한 서울 구로에 사는 한수경 동지네로 분양되었다), 노르스름한 색상과 검정, 잿빛이 섞여 있는,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는 가을이라고 불렀다. 서울 아가씨인 한비도 만날 수 있다. 겁쟁이는 새끼를 낳은 뒤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알 수 없다. 


나는 봉구와 양이의 만남을 시작으로 수많은 고양이 가족들을 만나면서 반려견, 반려묘라는 말이 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녀석들을 생각만 해도 나도 모르게 흐뭇해지는 이 느낌. 이게 반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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