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by 센터 posted Jun 27,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연필심처럼 뭉툭한 철근을 한쪽 어깨에 인 사람

 

좀만 더 잘 휘어졌더라면

보다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었을까

 

아시바에서 작업을 하다 건물 4층 높이에서 떨어진 인부

 

배는 터지기 직전까지 부풀어서 

엎어진 헬멧처럼 

언덕 하나를 만들어내고 

금세 빌딩만큼 높아진다

 

터지지는 않고 숨은 이내 꺼졌다

 

손에 쥔 만년필을 철근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언젠가 내가 사람들 앞에서 했던 말

 

미끌미끌한 종이에 기댄 만년필촉처럼

궂은일이라면 어떻게든 피해보려는 기질은

 

글을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생긴 것이다

 

나는 통유리에 비친 이와 나란히 걷는다

 

고층 빌딩에 매달린

낡은 옷가지가 만국기처럼 펄럭이는 

농성 현장은 작은 숨김에도 흩어져버리는

종잇조각처럼 보인다,

라고 메모장에 쓴다 

 

누가 죽어야만 잠깐 모이는 광장에서 

곧 끝난다는 사람들의 절망 예행연습은 

어느덧 진부한 생활로 자리를 잡고 

 

나의 눈망울은 그들이 

내려다본 점조직의 밤거리를 닮아간다

 

그 눈으로 본 세상엔 

건물의 밑바닥과 꼭대기를 잇댄 

투명한 철근이 있다 

 

온몸이 짓뭉개져 

숨을 헐떡이는 내가 있다

 

 

 

[크기변환][크기변환]문경수.jpg

문경수 시인

2019년 《내일을여는작가》로 등단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 흘역吃逆 file 센터 2021.02.26 162
9 건너지 못하는 인사 file 센터 2021.04.26 144
8 봄날, 그럼에도 file 센터 2021.06.23 142
7 공범 file 센터 2021.08.25 78
6 주름의 노래 file 센터 2021.10.27 68
5 리어카를 구원하라 file 센터 2021.12.23 65
4 뒷맛 file 센터 2022.02.24 39
3 짐승의 시간 file 센터 2022.04.25 27
» 초심 file 센터 2022.06.27 29
1 그렇게라도 짖어보는 것이다 file 센터 2022.08.29 7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Next ›
/ 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