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처럼 뭉툭한 철근을 한쪽 어깨에 인 사람
좀만 더 잘 휘어졌더라면
보다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었을까
아시바에서 작업을 하다 건물 4층 높이에서 떨어진 인부
배는 터지기 직전까지 부풀어서
엎어진 헬멧처럼
언덕 하나를 만들어내고
금세 빌딩만큼 높아진다
터지지는 않고 숨은 이내 꺼졌다
손에 쥔 만년필을 철근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언젠가 내가 사람들 앞에서 했던 말
미끌미끌한 종이에 기댄 만년필촉처럼
궂은일이라면 어떻게든 피해보려는 기질은
글을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생긴 것이다
나는 통유리에 비친 이와 나란히 걷는다
고층 빌딩에 매달린
낡은 옷가지가 만국기처럼 펄럭이는
농성 현장은 작은 숨김에도 흩어져버리는
종잇조각처럼 보인다,
라고 메모장에 쓴다
누가 죽어야만 잠깐 모이는 광장에서
곧 끝난다는 사람들의 절망 예행연습은
어느덧 진부한 생활로 자리를 잡고
나의 눈망울은 그들이
내려다본 점조직의 밤거리를 닮아간다
그 눈으로 본 세상엔
건물의 밑바닥과 꼭대기를 잇댄
투명한 철근이 있다
온몸이 짓뭉개져
숨을 헐떡이는 내가 있다
문경수 시인
2019년 《내일을여는작가》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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