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의 노래

by 센터 posted Oct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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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장의 웃음이 찍힌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몇 가지 작물이 자라고

가을걷이로 햇빛에 그을려도

접었다 펴면

한번쯤 하얗게 화장발을 곧추 세울 것 같은 너른 밭

 

어머니가 밭에서 김을 매고 있다

주름에서 떨어지는 땀

마을을 떠난 나는 주름에서 튀어 나간 것

자식들 다 빠져나가 점점 줄어드는 어머니의 부피

갈수록 비어지는 내부가 쭈굴쭈굴 해 진다

 

접혀져 있는 시간들이 펴질 것 같지 않은 

갈아 놓은 밭이랑 사이

주름의 긴 고랑이 여름을 지난다

연금술처럼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어머니의 주름

주름위에서 자라는 것들

뛰어 놀던 발자국 문양 튕겨 나간 부분이 진하게 남아 있다

한번쯤 뽀얗게 화장시키면

수분을 받은 흙들이 쫙쫙 펴질 것 같은

 

어머니 주름진 얼굴에 화장 하고

도시의 딸집 간다

겨울에 펄럭펄럭 날리는 하얀 비닐처럼

쩍쩍 일어나는 화장기

주름진 부분만 고요하다

 

여름과 가을을 지난

밭이 주름에 잠겨있다

 

[크기변환]이지호.jpg

이지호 시인

2011년 제11회 창비신인 시인상 수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말끝에 매달린 심장》, 《색색의 알약들을 모아 저울에 올려놓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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