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처럼 비가 흐를 때
사람들이 손등에 떨어진 빗방울을
핥고 서로에게 키스하던
때, 덩굴풀이 무성하게
담장을 허물던 날들에
빗방울을 모아 접시에 두고
여름의 짧은 밤을
춤추며 보내던 시절에
비를 말려 얻은 색으로
연인의 이마에
혈관의 무늬를 탁본하던 꿈결에
잡아먹힌 빛들이 흐르고
어둡다 여전히 비는 가볍게
빛나며 나는데
목덜미의 흰빛을 물고 비가 툭,
사라지는 비
깔깔 웃으며 가버리는 비
사람 잡아먹는 비에 홀렸대
소중한 걸 묻어둔 곳을 찾지 못해서
맹렬하게 건조한 우기를
그저 견디고만 있는 거래
범람하지 않는 비를 골몰한다
눈이 타버릴 때까지
좋았던 날의 돌을 움켜쥐고
때가 오면 내리칠 것이다
또 한 명이 쓰러진다 어스름이 짙어진다
기도를 잊고 텅 빌 것이다
이 나라의 사람들은 주마등 속에 산다
비가 속살거리는 옛 기억에 들려서
웃지도 울지도 않고
자지도 먹지도 않고
또 한 명이 쓰러진다 비가 툭,
주검의 관절마다 비가 툭,
빗방울만 환한 나라에서
비에 갇힌 꿈의 군락에서
오로지 비만,
사랑스럽다
이용임 시인
2007년 한국일보 시 부문 당선. 시집 《안개주의보》 《시는 휴일도 없이》, 산문집 《당신을 기억하는 슬픈 버릇이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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