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올바른 노동 용어 사용, 노동존중 사회를 위한 첫걸음

by 센터 posted Oct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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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나는 언론 비평 단체인 민언련(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신문모니터위원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 민언련은 신문·방송모니터위원회 공동기획으로 언론의 노동 용어 사용 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 내용을 《비정규노동》 구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보고서를 요약·정리하여 이 글에 싣는다.   

보고서는 2019년 5월 1일~6월 30일까지의 신문 지면보도(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 방송 종합뉴스(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 2부), TV조선 〈종합뉴스9〉〈종합뉴스7〉, 채널A 〈뉴스A〉, MBN 〈뉴스8〉)를 모니터 대상으로 삼았다. 지면 제약 상 각 언론사의 노동 용어 사용 통계는 생략한다. 보고서의 전문은 민언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왜 노동 용어인가?


노동자’라는 단어가 지닌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의 전체 임금 노동자와 비임금 노동자를 합한 수는 약 2,743만 8천 명이다(2019. 6. KO-SIS,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이들이 부양하는 가족까지 고려한다면 대다수 국민이 노동으로 밥을 먹고 산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라는 단어는 ‘국민’에 비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종종 무시된다. 대다수 국가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ILO 기본협약조차 한국적 특수성을 핑계로 비준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에는 ‘강성’, ‘귀족’과 같은 부정적인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노동자가 사용자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단체행동은 떼쓰기로 묘사된다. 


왜 대다수의 국민이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회에서 노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을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언론의 올바르지 못한 노동 용어 사용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언론은 대중의 언어 사용을 선도하는 역할을 한다. 언어가 한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때, 언론이 어떤 노동 용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가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음은 당연하다. 


노동 용어 분류


보고서는 언론이 사용한 노동 용어들을 크게 네 분류로 분석했다. 노동자성을 왜곡하는 노동 용어, 불합리한 노동 현실과 동떨어진 노동 용어, 노동자 권리를 제한하는 노동 용어, 노동조합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노동 용어가 바로 그것이다.


첫째, 노동자성을 왜곡하는 노동 용어

대부분의 언론은 ‘노동’과 ‘근로’를 혼재해서 사용했다. 노동자/근로자, 노동 시간/근로 시간, 노동 환경/근로 환경, 노동 조건/근로 조건 등이 그 예시다. 그런데 ‘근로’는 노동자성을 왜곡하는 용어다. 따라서 ‘근로’가 아닌 ‘노동’ 용어 사용을 지향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노동자/근로자를 살펴보자. ‘근로자’는 일하는 사람의 수동성을 강조한다. ‘근로자’의 근勤은 ‘부지런할 근’이고 로勞는 ‘수고로울 로’다. 따라서 근로자는 그 어원에 있어 부지런하고 수고스럽게 일하는 사람이다. 사용자가 지시하면 묵묵히 따르는 노동자가 연상된다. 이런 이유였을까, 일제강점기 때 ‘노동’보다는 ‘근로’가 더 자주 사용되었다고 한다.  


반면 ‘노동자’는 일하는 사람을 능동적인 주체로 바라보는 용어다. 노동勞動은 ‘수고로울 로勞’와 ‘움직일 동動’이 합쳐진 단어다. 노동자의 활동성을 강조한 어원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노동의 정의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다. ‘부지런히 일함’이라는 근로의 정의와 비교해봤을 때 훨씬 능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론은 ‘근로자’ 사용을 지양하고, ‘노동자’ 사용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오랜 기간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왔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또한 노동을 통해 밥벌이를 하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노동자는 결코 사용자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는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다. 언론은 노동자를 노동의 주체로 바라보고 존중해야 한다.


보고서는 노동과 근로를 바탕으로 한 합성어 이외에도 청소부·청소도우미, 가정부·가사도우미, 아르바이트(알바)생도 분석했다. 하지만 지면 관계상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겠다. 


둘째, 불합리한 노동 현실과 동떨어진 노동 용어

불합리한 노동 현실과 동떨어진 대표적인 노동 용어로는 ‘협력업체’가 있다. 협력업체는 두 기업 간의 평등한 협력 관계를 드러낸다. 그래서 원청과 하청 간의 수직적 구조를 나타내는 ‘하청업체’ 대신 ‘협력업체’로 잘못 사용하면 현실을 완전히 왜곡할 우려가 발생한다.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극심한 양극화를 고려한다면 협력업체보다는 하청업체가 현실을 보다 더 잘 반영하는 용어다. 상위 대기업으로의 쏠림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반도체 경기가 나빠지니 나라 전체가 휘청거린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대기업의 운명에 휘둘린다. 불법파견,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등 대기업의 불법 행위는 연신 뉴스를 장식한다. 현실이 이런데 어찌 원청과 하청 간의 관계를 평등한 협력 관계로 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모니터링을 한 대다수 언론은 ‘하청업체’ 보다 ‘협력업체’를 더 많이 사용했다. 우리나라 기업 현실을 고려할 때 적절한 용어 사용이라고 볼 수 없다. 기억에 남는 기사 두 개를 소개하겠다. 


먼저 경향신문의 ‘발전사들 조사 모범답안 돌리고 물청소·컨베이어벨트 멈춰 방해’(2019. 5. 28.정대연 기자)라는 기사다. 기사는 석탄화력발전사들이 김용균 진상조사 특조위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사실을 소개한다. 그런데 기사의 첫 문단에 ‘태안화력 발전소 협력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라는 표현이 보인다. 김용균 씨가 일했던 곳을 ‘하청업체’가 아니라 ‘협력업체’로 표기한 것이다. 김용균 씨는 각종 발암물질이 떠다니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발전소는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으로 필수 안전 업무를 하청업체에게 맡겼고, 2인 1조라는 기본적인 안전수칙마저 지키지 않았다. 과연 김용균 씨가 노동했던 곳이 발전소와 대등한 협력업체일까? 


서울경제의 ‘1원 전쟁’ 격화에··· 납품업체 옥죄는 이커머스(2019. 5.8. 김보리 기자) 기사는 e커머스 업체와 여기에 납품하는 제조사들 사이의 ‘갑질’을 다룬다. 제조사들은 높은 수수료, 결제 대금 지급 지연과 같은 갑질을 참고 견딘다. 철저한 을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기사는 이와 같은 갑질을 다루면서도 제조사들을 ‘협력업체’라고 표기했다. 평등한 협력 관계에서도 갑질이 일어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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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노동자 권리를 제한하는 노동 용어

노동자 권리를 제한하는 노동 용어로 ‘불법 집회’를 살펴보자. 집회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다. 헌법 제21조 제2항을 보면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못 박혀 있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은 ‘불법 집회’라는 용어를 통해 집회 자체가 마치 불법인 것처럼 묘사했다. 여러 기사에서 신고하지 않은 집회, 일부 불법 행위가 있었던 집회를 불법 집회 프레임으로 감쌌다.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여 불법 집회인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례(2011도6294)에 따르면 ‘신고를 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집회 내지 시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신고’를 마치 ‘허가’처럼 해석하여 강제성을 부과할 경우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위축할 우려가 있다. 신고를 하지 않은 집회는 ‘불법 집회’가 아닌 ‘미신고 집회’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그리고 집회 도중 일부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하여 집회 전체를 불법 집회라 매도해서는 안 된다. 일반화의 오류이자,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 행위와 그것을 저지른 자만을 비판하면 충분하다. ‘불법 집회’가 아니라 ‘집회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식으로 표현해야 한다.TV조선의 ‘따져보니/‘폭력 집회’ 안 막나 못 막나’(2019. 5.23.강동원 기자) 보도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보도는 일부 집회 참가자의 불법 행위가 시위 자체를 불법으로 만든다는 황당한 논리를 전개한다. 


신동욱 앵커: 그럼 어제 상황을 다시 한 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건물 밖에서 민노총이 합법적인 집회를 하다가 건물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면서 경찰을 폭행한 거잖아요?

강동원 기자: 맞습니다.

신동욱 앵커: 그러면 건물 밖에서는 물론 합법적인 집회라고 하더라도 경찰 저지선을 넘어서는 순간, 이 순간부터는 불법집회 아닙니까? 대응도 달라져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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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노동조합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노동 용어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노동 용어로 ‘현대차노조’, ‘민노총’, ‘○○노조’를 살펴보겠다.  


‘현대차노조’는 정식 명칭이 아니다. 게다가 산별노조를 추구하는 민주노총 조직을 대변하지 못한다. 민주노총이 산별노조를 추구하는 이유는 단체협상 적용률을 높이고 보호받지 못하는 미조직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산별노조로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있다. 그 하위에 기업체 지부로 현대차지부가 속한다. 따라서 ‘현대차노조’ 대신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최소한 ‘금속 현대차지부’라고 표기하는 게 맞다.


그리고 ‘민노총’은 ‘민주노총’을 악의적으로 줄여 부르는 용어다. 단체명은 그 단체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민주노총에서 ‘민주’가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오랜 투쟁의 역사를 함축한다. 이런 이유로 민주노총은 노동보도 준칙을 통해 ‘민주노총’을 사용해주길 권고하고 있다. 함부로 줄이거나 제멋대로 표기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성노조’, ‘폭력노조’, ‘귀족노조’ 등과 같은 ‘○○노조’를 알아보겠다. ‘강성노조’, ‘폭력노조’는 노조를 폭력적으로 낙인찍음으로써 노조가 지닌 저항권을 왜곡한다. ‘귀족노조’는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를 갈라치기하여 노조의 힘을 무력화시키려는 프레임이다. 일부 노조의 이기주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 노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겠는가? 덧붙여 주변으로 밀려난 비정규직 노조, 노조조차 제대로 조직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귀족노조’에 속하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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