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린 왜곡 거울을 보며 산다 <트릭 미러>

by 센터 posted Apr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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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 미러 Trick Mirror l/ 지아 톨렌티노 / 생각의힘

 

조건준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기획실장

 

 

멀쩡한 것을 뒤틀리게 보여주고 뒤틀린 것을 멀쩡하게 보여주는 왜곡이 있는 거울은 사물을 제대로 비추지 못한다. 지아 톨렌티노는 책 《트릭 미러》에서 왜곡하는 거울을 얘기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은 행복과 인기와 성공을 전시하려 몸부림치는 서커스장이다. 인터넷에서는 진실하거나 이성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기만 해도 된다. 왜곡 거울이 된 인터넷은 여성으로서 개인적인 매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자기노출을 권장한다. 미국 대학의 남학생 클럽 사례에서 이런 현실이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성이 평등화되면서 섹스를 쉽게 얻지 못한 남성들은 자신을 호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은 채 폭력적인 여성 혐오를 중심으로 그들의 온라인 공간에 혹시라도 들어온 여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에 관해 유일하게 흥미로운 건 알몸이야. 가슴을 보여줘. 그러지 않으려면 꺼져.”

 

저자는 열여섯 살 때 십대 남녀가 참가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험을 드러낸다. 성인이 된 출연자들은 “우리 모두 유명해지고 싶지 않았냐?”고 한다. 누군가에게 관심 대상이 되고 주목을 끌려는 욕망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많은 정보를 올리게 한다. 이런 욕망이 유튜브를 비롯해 심지어는 벗방(벗는 방송)을 만들고, 사람들이 몰리면 광고와 수수료를 받아 돈을 버는 ‘주목경제’를 만든다.

 

트릭 미러는 내 몸매에 단점이 없다는 환상을 제공하면서도 끝없이 그것을 찾아내야 하는 형벌이다. 노출을 요구받으며 더 높은 성공을 위해 더 높은 미모 기준을 채워야 하는 여성은 또 하나의 추가 노동을 해야 한다. ‘엉덩이의 전쟁’이라는 식의 기사들을 통해 언론까지 가세해 더 매혹적인 엉덩이, 더 풍만한 가슴을 가꿀 것을 부추긴다. 우리는 수많은 시간과 불안과 돈을 소비하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미모 기준에 매달려 몸매를 가꾸기 위해 돈을 들여 운동하고 미모를 가꾸기 위한 각종 상품을 소비하며 성형산업의 소비자가 된다. 한국에는 ‘꾸밈 노동’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미모 노동’이라고 표현한다. 가사 노동과 마찬가지로 무궁무진하지만 돌아서면 새롭게 할 일이 또 생기는 미모 노동이 일종의 ‘세 번째 직업’이 된다. 오늘날 여성들은 생계 노동과 가사 노동까지 포함해 3중 노동을 하는 셈이다. 생계 노동은 임금을 받고 가사 노동은 무임금이지만 미모 노동은 오히려 돈을 들여야 한다. 

 

순수한 여자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소설들 또한 트릭 미러다. 그 많은 소설을 다 읽지 못한 독자에겐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남성 권력이 지배하는 결혼 생활에서 여성에게 “불륜은 사랑에는 노력과 희생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윤리를 벗어나기 위한 노동 파업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에서 철수할 권리, 즉 파업권이 없다면 노동자는 노예 상태가 되기 쉽다. 나는 이에 빗대서 “결혼에서 철수할 권리”를 지인들에게 얘기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빨리 변해도 전통적 사고방식만나기은 곳곳에 박혀 있기에 이런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자주 본다.

 

종교도 트릭 미러의 하나다. 종교에는 원죄와 구원이 하나로 얽혀 있다. 불안으로 잡아끌면서도 확신으로 덮어준다. 저자는 “나 이전의 많은 이들처럼 나 또한 종교와 마약이 비슷한 이유에서 매혹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종교적 신비 체험과 마약의 체험이 유사함을 주장하며 자기 경험까지 근거로 제시한다.

 

살짝 왜곡하는 정도를 넘어선 현대의 노골적인 사기들이 있다. 신분 상승 감각을 원하는 밀레니엄 세대들을 끌어들이는 VIP이벤트 티켓과 클럽 하우스 입장 회원권 사기 사례에서부터 금융 상품을 만들어서 결국은 무너진 금융 위기가 사기였다는 점을 얘기한다. 학자금 대출 재앙, 보호해야 할 개인정보인 학생들 사진을 올려놓고 호감도 투표를 한 온라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을 비롯해 엄청나게 쥐어짜는 저급한 노동 조건을 아주 편리하게도 컴퓨터 화면 뒤로 숨기고 혁신 기업으로 포장한 아마존, ‘걸 보스’라는 식으로 여성을 부추기는 왜곡된 페미니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선거 등이 사기라고 한다. 저자는 착취할 수 있는 모든 삶의 현장 구석구석에서 현금을 쥐어 짜내어 사회 구조를 붕괴시키는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들이 판치는 이 시대를 “강도 귀족의 시대”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자신이 다녔던 버지니아대학교의 집단강간 사건을 파헤친다. 가해자인 남학생 클럽  남성들은 공격적인 동성애 혐오와 여성 비하를 통해 자신들의 이성애를 증명한다. 이 (남성) 클럽 가입이 주는 유익한 목적은 형제들의 쾌락을 위해 하나로 모이는 파티를 열 수 있다는 기대이다. 그 쾌락의 소재는 여성이다. “성경에서 보디발의 아내는 부유한 남편에게 노예로 잡혀 있는 요셉을 유혹하려다가 그가 거부하자 겁탈을 당했다고 소리친다.” 이런 일이 현실에도 있다. “그러나 같은 책(성경)에서 때로는 강간 자체가 정상적인 행위처럼 승인되기도 한다. 민수기에서 모세는 군인들에게 남자와 처녀가 아닌 여자는 죽이고 처녀들은 취하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안티오페, 데메테르, 유로파, 레다를 강간한다. 포세이돈은 메두사를 강간한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강간한다. 수세기 동안 강간은 재산을 취하는 범죄 정도로 여겨졌고 범죄자들은 대체로 벌금형을 받았다. 그 벌금도 여자의 아버지나 남편에게 지불했다. 1980년대까지 미국은 부부 강간을 범죄로 명시하지 않았다. 아주 최근까지도 강간을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치부했다.”

 

성평등으로 점점 만만한 여자는 사라지고 “어려운 여자”들이 생긴다. 여성들은 힐러리 클린턴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권력을 쟁취하려는 여성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게 되었고 두 클린턴 모두에게 이용당한 모니카 르윈스키를 통해 얼마나 쉽게 야망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지 목격했으며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몰락 기사를 통해 여성의 정신적 고통이 어떻게 악의적 농담거리가 될 수 있는지도 알았다. 여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얘기하자. 아담을 유혹해 죄에 빠뜨린 이브를 급진적인 지식 추구자로 볼 수 있다. 삼손의 힘을 빼앗아 적에게 넘긴 거짓말쟁이 창녀인 데릴라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타협해야 살아남는 세상에서 자신의 기쁨과 생존을 위해 노력한 여성이다. 엘리자베스 워첼은 “이 쌍년 페르소나는 나에게 매력 자체였다. 해방과 자유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남성을 쓰러뜨리는 여자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가 데릴라를 알게 된다. 그래서 그녀에게 “데릴라는 진정한 대스타다.” 하지만 진보적 성향이 주도해서 정치계에 가지고 온 페미니스트의 정치적 관점을 이제 보수적 인물들이 활용한다. 그래서 미국에선 이런 농담이 유행했나 보다. “극좌파는 교도소를 없애자고 하고 진보주의자는 더 많은 여성 교도관을 고용하라고 한다. 페미니즘적 관점이 통한다는 것을 파악한 보수주의자들도 이제 더 많은 여성 교도관을 고용하라고 한다.”

 

마지막에 결혼에 대해 쓴다. 관련 산업은 여전히 결혼을 “신분 상승을 위한 테마파크”로 남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결혼은 트릭 미러다. 결혼식은 아주 잘 먹혀왔고 여전히 잘 먹히고 있는 사기가 아닐까. 당신을 온전히, 절대적으로 중심에 놓는 이벤트를 열어줄 테니 그 대신 결혼식장을 걸어 나간 후부터 당신의 존재는 서서히 사라지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익숙한 비판도 있지만 익숙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도 그 비판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다. 있는 그대로를 비추는 거울을 보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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