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행복한 시지프스’들의 이야기1) < 노동자의 이름으로>

by 센터 posted Feb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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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노동자의이름으로2.jpg 노동자의 이름으로/이인휘/삶창


김남수 센터 기획편집위원



누구나 자유롭기를 바라지만 속박의 사슬은 견고하여 옭아매기를 자처하는 편이 차라리 더 자유롭다는 역설이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역설을 역설이라 일갈하면 질시의 시선을 감당해야 하거나 역설의 더께만치 물리적·금전적 피해를 보아야 한다. 진정 자유를 누리려면 괴로움을 감내해야 한다는 현실적 판단이 역설을 만고불변의 진리인 양 확대 재생산 시킨다.


“••• 사람은 온갖 탐욕 덩어리를 가슴에 품고 있어. 그 누구도 탐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난 자본주의를 나쁘게 보지 않아. 똑똑하고 영리한 놈이 좀 더 잘 사는 게 어떤가? 평등? 웃기지 말게. 평등은 인간세계에서 실현될 수 있는 말이 아냐. •••”(304~305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를 속박하는 사슬은 자본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탐욕이다. 자본이 곧 권력이 되는 시스템. 그 권력이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 줄 거라는 착각 속에서 욕망만을 쫓는 이들이야말로 속박의 정점에 있는 셈인데, 이들은 속박을 자유로 둔갑시키기 위해 또 다른 속박의 사슬을 던져 놓는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연명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 이 이중의 사슬에 얽히고 묶여 자유를 온전히 박탈당한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비인간적인 삶을 강요당하는, 발목에 쇠사슬이 묶인 노예 같은 삶을 끊어낼 수 없다고 믿었다.(126쪽)


오랫동안 먼지에 쌓인 채 버려뒀던 책을 광주는 벽장에서 다시 꺼냈다. 처음 학습을 시작했을 때 읽었던 ‘전태일 평전’을 찾았다. •••죽음을 결단하면서 그가 남긴 글은 눈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하고, 자기만 알던 사람들에게는 타인의 처지를 돌아보게 만들었다.(351쪽)


그럼에도 이 무간지옥 같은 현실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려는 이들은 존재했다. 1960년대 국가의 저임금 정책 속에서 탐욕 추구의 날갯짓을 무한대로 펼친 자본의 횡포에 어린 공장 노동자들은 꿈은 고사하고 인간이라면 응당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그 자신이 당사자이기도 했던 전태일은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에게 씌워진 속박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부싯돌을 켰고, 이내 커다란 불꽃이 되어 속박을 자유라 여기는 역설에 균열을 내었다.


두 번의 해고로 회사의 핍박을 받을 때마다 투쟁의 나날을 버티게 해주었던 조합원들. 그들의 삶에 한 줄기 빛이라도 될 수 있으면 그래서 그 힘으로 노동조합을 조합원들의 따뜻한 집으로 만들어낸다면, 더 나아가 민주노조의 길에, 노동해방의 길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었다. 조합원들 스스로 불의에 맞서 일어나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소위원회 발대식이 다가올수록 그의 심장 깊은 곳에서 나직이 소리쳤다. 


나 하나의 목숨으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309쪽)


이인휘 작가의 신간 《노동자의 이름으로》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양봉수 또한 불꽃으로 산화함으로써 역설에 맞섰다. 그러나 역설은 너무나도 견고하게 작동하여 균열점이 넓어지는 듯 보이면 금세 틈을 메우고, 다시금 균열점이 생겨나면 비웃기라도 하듯 틈을 채워버렸다. 소설 속 가상의 인물 광주는 역설에 맞서다 역설을 수긍했고 공장 후배 봉수가 끝끝내 역설에 맞서 불꽃이 되자 다시 역설에 맞서다 회피했다. 그 사이 광주의 아들은 이중의 속박을 감내하는 노동자들마저 외면한 삼중고의 비정규 노동자가 되어 고가도로 난간 고공투쟁에 나섰다. 그리고 이 무자비한 역설은 현재진행형이다.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내가 이인휘 작가의 소설은 《날개 달린 물고기》, 《폐허를 보다》, 《건너간다》, 서평을 쓰고 있는 《노동자의 이름으로》까지 내리 네 편을 읽었다. 지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뿐 직접 술 한잔 나눠본 적 없으니 작품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실례될 일도 없는데 작가의 책을 탐독한 건 일단 읽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책장을 넘기면 책을 덮기 아쉬울 만치 몰입도가 좋고 작중 인물이 꾸는 꿈마저도 이미지로 그려질 만큼 묘사가 생생하다. 욕망에 꺾이고, 뜻대로 되지 않음에 좌절하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는, 까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행복한 시지프스’들이 소설의 전반을 장식한다. 


‘노조는 이익단체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일견 맞는 말이다. 비정규 노동자를 배제하는 정규직 노조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저치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민주노조’의 의미가 뭔지 당최 모르겠다. 역설을 역설이라 일갈하고자 떨쳐 일어난 이들이 역설을 재생산하는 이중 삼중의 역설을 마주하면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눈을 감고 코를 막고 귀를 닫고 싶어져 고개를 돌리면, 이 무간지옥을 다시금 뚫어보겠다며 나서는 ‘행복한 시지프스’들이 있다. ‘노동자의 이름으로’ 말이다. 소설에도 등장하는 ‘노동기사단’2) 지도부 중 한 명인 스파이즈의 최후 진술을 복기하며 글을 맺는다.


“재판장!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그러면서도 해방되기를 애타게 원하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다면 말이다! 그렇다, 재판장!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신의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고 들풀처럼 타오르는 불꽃이 있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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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베르 카뮈는 그의 저서 《시지프스 신화》에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스(신들의 노여움을 사 끝없이 바위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은 인물)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바위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것은 바로 그 부조리와 투쟁하고자 하는 의식이 깨어있기 때문이며, 투쟁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기에 ‘행복한 시지프스를 상상해보라’라고 끝을 맺었다.


2) 19세기 후반 미국의 전투적 노동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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