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저항은 창조적이다, 그리고 이롭다 <저항은 예술이다>

by 센터 posted Feb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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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항은 예술이다문화, 전기, 그리고 사회운동의 창조성

/ 제임스 M. 재스퍼 지음/박형신·이혜경 옮김/한울아카데미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저항은 예술이다–문화, 전기, 그리고 사회운동의 창조성》을 쓴 제임스 재스퍼는 미국의 여러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친 저명한 사회운동 이론가다. 사회운동 이론은 말 그대로 ‘사회운동’이라는 대상에 대한 이론적 명제들의 체계다. 개인들이 어떠한 맥락과 상황에서 어떠한 과정을 통해 사회운동(단체)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실제 행위에 참여하게 되는지, 집합적 행위자로서 사회운동 단체는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서 상대적으로 더 활성화되고 덜 활성화되는지, 사회운동은 사회 구조 변화에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사회운동 참여라는 경험은 개인의 내면과 대인관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는지 등을 현실에서 발생한 사례들에 대한 엄밀한 조사와 학문적 분석을 통해 답하고자 하는 시도들이다. 1960년대 미국 흑인 시민권운동, 그리고 이른바 ‘신사회운동’으로도 불리는 유럽 문화운동의 붐을 타고 형성되어, 1980년대 이후 탈산업화 추세와 함께 성장한 학문적 분파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사회학 내 큰 영향력을 가진 주류 이론이다. 


이 책은 저자가 반핵운동과 동물권리운동 등에 대한 오랜 참여와 연구 경험을 토대로 제기하는 흥미로운 사례와 성숙한 이론적 통찰, 그리고 창의적인 도발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독창적인 주장들이 제기되고, 정교하게 논증됐으며, 재치 있는 문장들로 구성돼 있다. 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 부담되고, 이론적 논의가 익숙하지 않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정말 재밌고 잘 쓴 책이다. 운동이나 저항에 관심 있는 이들이 정성들여 읽어보면 참 좋을 듯하다.


“제임스 재스퍼는 이 책에서 저항을 분석하기 위한 차원으로 ‘문화’와 ‘전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저항운동에서 자원, 전략, 문화, 전기의 상호작용을 치밀하게 분석하며 저항동학의 모습을 예리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는 저항의 의미를 ‘예술로서의 도덕적 저항’이라는 말로 함축되는 저항의 도덕성과 창조성에서 찾고, 저항은 ‘가치 있는 삶’의 일부임을 설파한다.” 


본인들 스스로도 사회운동 이론 연구자인 옮긴이들은 이 책의 성과와 가치를 앞의 인용문과 같이 요약했다.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그런데 사회운동 이론 맥락에 익숙하지 않다면, 독자가 사회운동 활동가더라도 단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인용문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보다 자세한 설명을 부연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문장은 재스퍼가 사회운동 이론의 ‘구조주의적 접근’에 대응해 ‘문화주의적 접근’을 강조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현실을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는 뜻이다. 사회운동 이론 구조주의적 접근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자원동원 접근’과 ‘정치적 기회 접근’이다. 오해를 무릅쓰고 단순화하면, 운동세력들과 동조자들이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물질적 자원(resource)의 수준, 또는 운동세력들이 권력층의 의사결정 과정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opportunity)를 만드는 구조의 균열 등이 사회운동 형성과 발전에 있어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는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편향되게 현실을 해석하면, 권력에 억눌린 자와 지배질서를 거부하는 양심세력의 주체적 결기와 봉기보다는, 많은 자원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제도권 내부 온건인사의 참여, 그리고 권력층 분열이라는 외부 조건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에 이르게 된다. 재스퍼는 이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는 자원과 기회(혹은 전략)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항은 근본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며, 개인의 심층에서 ‘전기’(살아온 삶)와 ‘문화’가 그 선택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저항 행위가 발생할 수 없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집합적 수준의 자원과 전략은 그 다음 문제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그가 ‘탈시민권운동’이라 분류하는 운동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이를 명료화한다.


인용문의 두 번째 문장은 앞에서 설명한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이 책의 핵심적 전언을 제기하는 것이다. 재스퍼는 명확하게 선언한다. 저항 행위는 단지 정치 과정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합리적 기술’만이 아니다. 저항은 내면의 영감에서부터 비롯되는 ‘창조적 예술’이다. 저항자는 도덕적 민감성에 기초하여 올바른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행동한다. 이를테면 개인의 저항은 보다 높은 도덕적 기준으로 사회를 평가하는 행위고,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를 보다 성숙한 수준으로 재창조해가는 과정이다. 저항자는 사회 위기를 알리기 위해 큰소리로 지저귀는 ‘광산 속 카나리아’이자, 미래의 우리가 사용하게 될 새로운 도덕적 언어들을 자기 삶을 투여하여 만들어내는 창조자다. 이러한 입장에 따른다면 사회운동의 성과는 사회 규칙과 물질 분배에 있어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이 없더라도, 저항 행위는 암묵적인 상태에 놓여 있던 도덕적 딜레마를 명료화하고, 우리가 인간 조건의 복잡성을 보다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저항자의 목표와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자신의 입장을 재고 및 성찰하게 되고, 자신의 태도가 어떠한 근본적 가치에 부합해 있는지를 판단할 것을 요구받게 된다. 요컨대 저항은 근본적으로 사회에 이롭다.


이 책은 1997년 미국에서 처음 출판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소개됐다. 20년 넘게 지났으니 다소 옛날 얘기처럼 들리지 않을까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면 놀랍도록 새롭다. 애초에 훌륭한 연구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필자가 정성들여 쓴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우리의 사회운동 수준에 비해 그와 관련된 담론 수준이 상대적으로 너무 낮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의 내용이 보다 많이 논의돼 촛불시민혁명이 만들어낸 사회 문화와 도덕의 고양, 그리고 개인적 충만함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눈길들이 더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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