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우리는 오징어가 되었을까

by 센터 posted Oct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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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준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기획실장

 

 

오징어게임.jpg

 

두 개의 드라마 시리즈가 한동안 화제였다. 〈D.P.〉와 〈오징어 게임〉이다. 세상 물정을 알아야겠기에 나도 보았다. 〈D.P.〉에서는 탈영병을 잡는 군대 경찰인 헌병이 주인공이다. 철저한 계급사회인 군대에서 괴롭힘을 당한 청년들이 탈영해 잡히거나 죽는다. 그들이 탈영을 선택한 것은 계급 서열이 만든 괴롭힘으로 인해 인간 이하의 모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열을 만든 것은 젊은 그들이 아니다. 서열은 군대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아주 오래전에 대규모 기업을 만들 때 그 조직 운영 방법을 군대에서 가져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업도 계급구조로 이뤄져 있다.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육성하는 학교는 계급에 따른 차별을 훈육하는 기관이었다. 우등생에서 열등생까지 서열을 만들어 계급에 익숙해지도록 한 것이 근대 교육시스템이다.

 

탈영병은 군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에서 차별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퇴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에서 탈출해 귀농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은 자살에 이르는 탈영병처럼 사회에서 영원히 탈출하는 사람들은 극단적 결정을 한다.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자살은 영원한 탈영이다.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탈영병이 자기가 당할 때 방관했던 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뼈아팠다. 불평등과 차별을 방관한다면 사회로부터 탈영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는 여성, 이주 노동자, 노인 등 소수자를 둘러싼 갈등과 심리들이 등장한다.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던 파업 현장에서 경찰과 부딪치던 아픈 경험도 잠깐 등장한다. 나도 그곳에 있었던 쌍용차의 점거 파업이 직감적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런 소재들은 드라마 전체를 이끄는 핵심 줄거리가 아닌 잠깐 등장하는 소재일 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빚을 지게 된 등장인물들은 밑바닥 인생을 탈출할 유일한 방법으로 게임에 참가한다. 그들은 455명을 죽이고 456억을 가지려 달려든다.

 

분명히 돈을 향한 탐욕이지만, 탐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끝없는 욕망이 탐욕이라고 한다면,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그들의 이유는 가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존의 벼랑에서 선택한 게임이기 때문에 탐욕이 게임 참가 이유가 아니다. 그러나 생존이 이유든 탐욕이 이유든 동일하게 456억을 향한 욕망이 게임을 지배한다. 

 

〈오징어 게임〉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하나의 장르가 된 목숨을 건 생존게임인 ‘서바이벌’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K팝, 클래식 중창, 춤, 트로트, 국악 등으로 더욱더 소재를 넓혀 진행되는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을 극단화시켜 놓았다. 토너먼트를 통해 모두를 죽이고 오직 승자 한 명이 다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게임이다.

 

재미있다고 한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이렇게 단순한 게임 때문에 사람이 죽느냐며 드라마에 깔린 일종의 야릇한 유머를 느끼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재미 보다는 그냥 다음 게임에서 누가 죽을지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되었다고 했다. 재미를 유발했든 궁금증을 유발했든 〈오징어 게임〉은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K-드라마’의 세계화에 우쭐하는 ‘국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슬픔을 느꼈다. 매사를 진지함으로 대하는 습관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렸을 적에 자주 했던 놀이로서 ‘오징어 게임’이 아니라 다른 오징어가 떠올랐다. 시인 유하는 1990년대 초반에 자본주의적 욕망에 휩싸인 인간의 모습을 ‘욕망의 집어등’을 통해 표현했다. 밤에 환한 집어등을 켜면 몰려든 오징어를 잡아들일 수 있다. 화려한 불빛을 켜 상품을 진열해 욕망을 자극하면 몰려들어 소비하는 인간의 모습을 오징어잡이에 빗댄 것이다.

 

이런 드라마를 가볍게 즐길 수도 있고 혹은 저 먼 나라에서 달고나를 사려는 유행이 일어날 정도로 흠뻑 빠질 수도 있다. 아니면 나처럼 너무 진지하게 들여다보면서 비정하고도 부조리한 체제를 성찰하려고 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나 같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만 같다. 드라마 〈D.P.〉 열풍이 불자 국방부에서 요즘 군대는 그렇지 않다는 해명까지 했다는데, 뭐 이렇게 전혀 다른 진지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우리는 생존 때문이든 탐욕 때문이든 돈을 향해 달려들며 서열과 차별을 만드는 욕망의 체제인 자본주의에 살고 있다. 〈오징어 게임〉을 즐기면서 만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생존게임을 내면화할까, 아니면 오징어처럼 움직이는 우리를 성찰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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