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웅과 상놈의 새끼

by 센터 posted Aug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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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준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기획실장

 

 

생태계의 경고가 매섭다. 지구 곳곳에서 무더위로 산불이 계속되고 집중호우로 수재가 빈번하다. 백신이 나왔다며 호들갑을 떠는 인류에게 마구 소비하고 헤집으며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더 조용히 머물라는 코로나19의 충고가 강렬하다. 집에 자주 머무는 일상 때문에 영화를 보다가 마블 영화를 보았다.

지구를 구하던 영웅들을 넘어 떼로 등장한 어벤저스들이 우주를 구하는 마블 영화 시리즈를 다 기억하지 못한다. 〈블랙 위도우〉라는 영화가 나오자 이걸 보려는 가족들은 바로 그 전편인 〈엔드게임〉을 본다. 곁에서 함께 보았다. 보는 중간마다 잠깐 정지를 누른 후 이전 시리즈에서 관련 이야기가 어땠는지를 확인하고 넘어간다. 딱히 마블 영화 마니아는 아닌 것 같은데, 긴 시리즈를 꼼꼼히 되짚으면서 본다.

 

불편한 영웅

 

가족들에게 물었다. “근데, 이런 영웅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영웅이 되는 과정에서 그들은 각자 내면의 갈등을 보여주고 영웅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엇갈리고 폭발해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이 지구와 우주를 구한다는 얘기 아닌가. “영웅이 없는 사회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영웅을 필요로 하는 사회가 불행하다.”라는 얘기가 있지 않던가. 영웅들의 이야기에는 반드시 평범한 사람들이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위기와 재앙이 있고, 그것들이 더 처참하고 강렬할수록 영웅은 돋보이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이런 영웅 서사가 재미는 있지만 불편해지곤 한다.

“복잡하게 분석하지 말고 그냥 봐.” 한마디에 ‘그래, 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재미있으면 되지.’ 하고 만다. 하지만 나는 자꾸 영웅 서사와 그런 영웅들을 통한 대리만족이 걸린다. 인간은 경험할 수 없고 실현할 수 없는 것들을 영화나 드라마 등 예술을 통해 실현하려는 오래된 습성을 가졌기에 그냥 즐기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이걸 해결해 주길 바라는 정치인 따위에게 열광하며 추종하는 것마저 어찌할 수 없을까.   

 

포스터_자산어보.jpg

 

“자산어보를 보세요”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라는 영화가 나왔던 즈음에 후배가 그랬다. 영화를 보라는 것이 아니라 정약전이 쓴 책을 보라는 얘기였다. 서점에 들를 기회가 있어 잠깐 들춰 보았는데 물고기들을 묘사한 내용이길래 그냥 덮고 말았다. 후배는 그 내용 모두가 문학이고 삶이고 철학이라고 했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가끔 영화 〈자산어보〉를 알리는 텔레비전 광고를 보면서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마지막 개혁 군주인 정조의 신하였던 정약전과 그 형제들은 정조가 죽은 후 서학西學인 천주교에 얽혀 동생 정약종은 사형을 당하고 동생 정약용과 함께 유배를 떠난다.

 

내 고향은 섬이다. 처음으로 육지에 나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뭍 사람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바다에 떨어질 것이라는 식으로 섬에 대한 선입견을 품고 있다는 것을 톡톡히 경험했다. 바다에서 고기 잡고 갯벌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갯일’로 보내는 섬사람 중에 성리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유배지 흑산도에서 정약전은 학문에 관심을 가진 창대라는 젊은이를 만난다.

 

영화에서 정약전은 창대를 “상놈의 새끼”라고 부른다. 차별이고 욕이다. 그러나 동학東學인 성리학과 서학西學인 천주교를 많이 알아도 섬 백성의 삶터고 존재의 뿌리인 섬과 바다를 잘 아는 것은 섬 놈이다. 정약전은 창대에게 물고기 등에 대해서 배우고 창대는 정약전에게서 학문을 배운다. ‘문뎅이’나 ‘쓰벌놈’ 같은 살벌한 욕이 관계와 상황의 맥락에 따라 애정 표현이 될 수도 있듯 영화에서 ‘상놈의 새끼’라는 표현도 어느덧 애정 표현이 되어가지만, 실제로 창대와 정약전은 영화에서보다 수평적인 관계였다고 한다.

 

욕 나온다 

 

“홍어 다니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다니는 길은 가오리가 압니다.” 창대의 이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노동자의 삶은 노동자가 잘 안다. 좀 더 배웠다고 노동자를 가르치려 했던 과거가 부끄럽다. 지금도 노동 시민을 무식하게 여기고 가르치려는 계몽주의가 몸에 붙은 사람들을 꽤 본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아직 내가 그렇다는 것을 불쑥불쑥 느낀다.

 

“상놈의 새끼가 공부해서 어디다 쓰겠냐.”라는 얘기는 영화가 아니라 내 삶에도 깊이 묻어있다. 섬 놈이 공부하면 필시 둘 중의 하나다. 개고생 혹은 출세다. 일제를 겪고 6.25를 겪은 섬 어른들은 진도아리랑에 붙여진 “쓸만한 땅뙈기 신작로 되고요, 쓸만한 사람은 가막소 간다.”라는 가사에 공감하셨다. 배운 사람들이 일제에 맞서다 감옥에 가고, 독재에 맞서다 감옥에 가는 현실을 겪었다. 공부해서 남 안 주고 출세해서 잘살 수도 있다. 섬의 팍팍한 삶을 벗어나려면 공부 잘하는 것이 출세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창대는 출셋길과 감옥 길을 오간다.

 

이제 세월이 한참을 지나 ‘갯일’ 하며 자란 사람이 좋은 대학 나올 가능성은 작다. 뭐, 이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경제經濟라는 말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이다. 오늘날 경제는 차별하며 등쳐먹고 제 혼자 으스대며 누리는 행위인 것처럼 변했다. 시장 법칙에 따라 상업商業화된 경제는 모든 것을 상품商品으로 만들고 더 차지해 부자가 되려는 상놈의 자식들을 만든다. 창대가 살던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는 사람을 자기들 이익 도구로 여기는 이런 상노므스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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