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동화의 뒤통수 <휠체어를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by 센터 posted Jun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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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준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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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를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어맨다 레덕 / 을유문화사

 

동화엔 뒤통수가 있다. 어맨다 레덕은 《휠체어를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에서 익숙한 동화를 새롭게 보게 한다. 동화의 뒤통수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영원히 행복하거나 끔찍하게 비극적이고 죽을 때까지 슬픈 이야기다.

 

해피엔딩을 조심해야 한다. 현실은 동화처럼 해피엔딩이 아니다. 이런 해피엔딩은 환상과 착각을 일으킨다. 그런 동화들을 그저 아름답게 기억해온 나는 어맨다 레덕이 보여주는 동화의 뒤통수를 본다. 특히 동화에서도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장애를 다루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장애의 ‘사회 모형’과 ‘의학 모형’이다.

“개인의 장애는 사실 육체적인 제한 상태 그 자체보다도 제도적인 장벽, 장애인 배제, 장애인을 향한 부정적인 태도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고 간주”하는 것이 장애의 ‘사회 모형’이다. “만약에 한 건물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와 출입구가 있다면 휠체어를 탄 사람도 건물 안에서 행동의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용 출입구와 엘리베이터가 없다면 휠체어를 탄 사람은 그 건물 안에서 제대로 돌아다닐 수 없을 텐데, 그것은 다른 몸을 가진 모든 사람의 행동 방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의학 모형은 몸을 진단의 대상으로 보고 의학이 개입해 특정 장애나 질병을 고치거나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둔다.” 장애를 개인의 결점이라고 보고 결점을 치료하거나 제거하려는 “의학 모형의 관점에서 보면 고쳐야 할 것은 사회가 아니라 망가진 사람이다.”

 

그렇구나, 동화엔 수많은 장애가 등장해

 

백설공주에는 난쟁이가 나오고, 인어공주에는 말 못 하는 공주가 나오고, 미녀와 야수에는 끔찍한 외모를 가진 야수가 나온다. 동화에서 장애는 그것을 제거하고 극복하면서 해피엔딩이 된다. 현실에서 장애는 환상적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그것은 평생 함께하는 것이다.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고유한 그 사람의 특성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장애는 죄와 벌이 되고 만다.

 

외면당하는 야수를 비롯해 숱한 동화 주인공은 사회 압력을 받으며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노력을 쉼 없이 함으로서 사회에 자신을 맞춘다. 뮬란은 자신의 육체가 가치 있음을 인식하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구축된 생각들에 자신의 몸을 맞춰 남성적인 전사가 됨으로써 승리한다. 장애인은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비장애를 기준으로 삼은 사회의 생각에 맞춰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극복하기 어렵기에 끝내 비정상으로 취급받으며 장애인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열등감의 마지막 경계”에 몰려 산다.

 

기능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인간임을 결정하는 기준선을 규정하고 개인에게 사람의 지위를 부여하거나 박탈하는 몸과 마음의 척도를 설정한다.” 무능함으로 취급되는 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비단 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다. 능력주의는 ‘문제는 네 능력이지, 사회를 탓하지 마’라고 한다. 능력 이데올로기에 빠진 자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한다. 그들은 ‘고쳐야 할 것은 사회가 아니라 너 자신’이라고 지속적 압력을 가하며 공격한다.

 

나는 당신의 악당이 아니다

 

2018년 11월, 영국에서는 ‘나는 당신의 악당이 아니다’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동화나 영화에서 악당으로 등장하곤 한다. ‘라이온 킹’에서 악당 스카는 얼굴에 상처가 있다. ‘배트맨’의 조커와 007 영화의 악당 모습을 떠올려 보라. 장애는 악당의 징표처럼 남용된다. 장애가 악이 되어버린 사회에 맞선 운동이 영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동화도 있다. 중세의 여성들은 억눌린 처지를 뒤집는 동화를 썼다. 그러나 많은 동화가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이어지면서 장애를 왜곡한다. 모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능력자만 승리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마블 영화에서 영웅들의 활약 과정에서 시민들은 죽는다. 많이 희생되어야만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찬란하게 빛난다. 우리는 이런 영화에 몰입한다.

 

“이야기들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누가 이야기를 쓰는가. 장애인을 비정상으로 간주해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자들이 이야기를 쓰는가, 아니면 장애인의 눈으로 이야기를 쓰는가. 부모로부터 부를 물려받고 더 많은 사회적 혜택을 받으면서도 온전히 자기 노력으로 얻은 ‘능력’인 것처럼 우쭐대며 타인을 차별하는 능력주의자들이 이야기를 쓰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능력도 사회적 배경과 지원을 통해 탄생한 것이기에 능력을 나누고 능력으로 얻은 결과도 나누는 사람이 이야기를 쓰는가. 돈과 권력을 가진 사용자가 노동 현장의 이야기를 쓰는 것인가, 노동 시민이 몸으로 다르게 써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이야기를 다시 쓰자

 

뇌성마비와 함께 살아온 저자는 열등감의 경계로 몰아붙인 세상을 저주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부를 모두 갖는 것은 불공평하기에 도입된 공공 의료 보험 제도 덕분에 빚지지 않고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친구의 놀림을 받아 “세상이 잔인한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잔인한 곳”이었던 학교 운동장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며 “사회 계층 꼭대기로 올라가 황제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사회 계층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라고 한다. 부모, 공공 의료 보험, 간호사, 의사 등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건 내가 헤쳐나가야 했던 공동체 덕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증명할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세상이 나에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 내 몸을 위한, 내 말을 위한, 기울어진 내 걸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줄 책임이 세상에는 있다. 공주나 슈퍼 히어로가 되고 싶었던 나의 어린 꿈을 끝내고 그 무엇도 되고자 하는 바람을 품을 필요가 없음을 이해할 수 있게 도울 책임이 세상에는 있다. 나와 같은 몸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고, 이 세상을 나와 같은 몸과도 맞게 바꾸어야 한다. 나는 이미 충분하다. 내가 다른 무엇이 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들려준 동화들은 그저 단순한 이야기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드라마 시리즈 〈왕좌의 게임〉에서 휠체어 탄 그가 왕이 되고 그의 휠체어가 왕좌가 되듯 다시 생각하고 새롭게 이야기를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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