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성 강주룡, 인간 강주룡 <체공녀 강주룡>

by 센터 posted Feb 21,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책표지.JPG 체공녀 강주룡/박서련/한겨레출판



오진호 센터 기획편집위원



1931년 5월 29일 새벽, 12미터 높이 평양 을밀대 지붕 위를 올라 시간 30분 동안 고공농성을 벌인 최초의 고공농성자. 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의 이야기를 다룬 전기소설 《체공녀 강주룡》은 남아있는 기록과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강주룡’의 삶을 복원해낸다.


체공녀 강주룡


발소리가 온다. 발소리를 들으면 주룡은 곧장 몸을 일으키곤 했다. 등을 곧추세운 채로 발소리를 맞는 것이야말로 굶주린 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가장 나중 된 저항의 몸짓이라고 여겼다.


1930년대 평양의 젊은 여성은 제사공장(생실, 쌍고치실, 들누에실을 생산하는 공장), 30세 전후의 여성들은 고무공장에서 일했다. 930년 고무공장 사용자들이 발표한 10퍼센트 임금 삭감 대상자가 ,300여 명에 달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사용자들의 임금 삭감 발표가 있은 후 11개 공장 1,800명의 노동자들은 동맹파업에 들어간다. 당시 강주룡은 파업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노동조합과 함께한다. 파업이 일단락된 다음 해인 1931년 강주룡이 일하던 ‘평원고무공장’은 제일 먼저 임금을 깎겠다고 나섰고, 강주룡을 비롯한 노동자 49명은 파업에 돌입한다. 강주룡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을밀대 고공농성’은 이 와중 벌어진 일이다. 농성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 등 중앙일간지에까지 보도된다.


9시간 반 동안의 고공농성. 일본 경찰은 밑에 그물을 쳐놓고 강주룡을 밀어버린다. 경찰에 붙잡혀 감옥에 들어가지만 임금 삭감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을 하고, 경찰에서 풀려난 후에는 통근차 앞에 누워 농성을 벌인다. 결국 임금 삭감을 철회한다는 회사의 약속을 얻어내고, 투쟁은 승리로 마무리된다. 이후 강주룡은 적색노동조합 가담 사실이 밝혀져 투옥되고, 옥중에서도 간헐적으로 단식투쟁을 반복한다. 소설은 병보석으로 석방된 강주룡의 사망소식을 (먼저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적색노동조합 엘리트인 정달헌이 알게 되면서 끝난다.

“우리는 마흔아홉 우리 파업단의 임금 각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네다. 이거이 결국에는 피양 이천삼백 고무 직공 전체의 임금 감하를 불러올 원인이 되기에,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는 것입네다.”


여성 강주룡. 인간 강주룡


《체공녀 강주룡》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최전빈’과 혼인한 후 그와 함께 독립군 부대에 들어가면서 겪는 일을 다루고 있고, 2부는 이후 평양으로 건너와 고무공장에서 노동 운동을 만나면서 겪는 일을 다룬다. 1900~1930년, 가장 치열했던 순간들을 강주룡은 싸움으로 돌파한다.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독립군 부대원들과 싸우고, 이들을 비호하는 ‘서방(최전빈)’과도 싸운다. 남편을 죽인 계집이라며 ‘망그라진 간나’ 취급을 받지만 본인이 원치 않는 재혼은 단호히 거부하고, 혼인을 빌미로 땅 몇 마지기 얻어 보려는 가족으로부터 도망친다. 적색노동조합 세미나 자리에서 한마디 해보라는 정달헌의 요청에 강주룡은 “여러분이 부인에겐 이런 배움의 기회를 주지 않고 혼차서 예 와 있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부인들께선 아일 적부터 배운 법도대루 남편에게 순종하여 집을 지키고 있는 거이 아닙네까.”라며 남성들을 훈계한다. 치열한 시대의 한복판, 강주룡은 누구보다 치열했다.


여성의 수난기로 빠질 수 있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이어지는 힘은 강주룡이라는 캐릭터에서 나온다. 작가는 강주룡을 다룬 인터뷰(《동광》 제23호-‘을밀대상의 체공녀’, 1931년)와 박준성의 글(《인물로 본 문화》 중 ‘제20장 강주룡 : 고공농성을 벌인 여성 노동자’)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었다. ‘강주룡’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고, 비장함에 짓눌리지도 않는다. 남편을 ‘귀여운 도련님’이라 부르며 남편의 사랑을 받았다기보다 남편을 사랑했다고 말하는 강주룡은 당당하다. 독립군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대장으로부터 신임을 얻자, 다른 부대원들은 그녀를 비웃고, 얼토당토 않는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강주룡은 그들의 비난을 “여자 하나를, 어린 남자애 하나를 우스개로 만들지 않고서는 유지할 수 없는 결속이라면 그따위 것 없는 게 백번 낫지 않은가.”라고 일축한다. 1930년 동맹파업을 평가하면서도 “고무공장 직공 9할이 여자인데 남자들이 타협안 잘못 맨들어가지구래 우리 파업 다 망했”고, “평시에도 우리 여공들보담은 사람 같은 대우를 받고 사이까네 몰랐을 거입네다. 나머지 우리들이 얼마이나 절박한 심정으로 쟁의를 하구 있는지”하며 일갈한다. 남편의 강요에 노조를 탈퇴하는 동료 앞에서는 “내 니 때문에 조합 들어가는 거이구, 니가 나 가입시킨 거이다.”라며 “내래 일당백 일당천 할 거이니까네, 네 덕에 파업단에 백 명 보탬 되구 천 명 보탬이 된 거”라며 위로를 던지기도 한다. 소설 곳곳에 강주룡의 매력이 묻어있다.


우리 시대의 강주룡


을밀대 고공농성’ 70년. 이 시대의 강주룡은 지금도 고공에서 절규한다.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김진숙이 세운 고공농성 309일 기록은 2016년 구미 스타케미칼 차광호의 408일 굴뚝농성이 깼다. 이제 차광호의 기록을 전주 택시노동자 김재주가 깨려고 한다. “택시 사납급제 철폐! 전액관리제 시행”을 외치는 김재주의 고공농성은 오늘(10/10)로 402일째다. 아니면 75미터 굴뚝에 있는 목동의 홍기탁, 박준호가 이 기록을 깰지도 모르겠다. 408일간의 굴뚝농성으로 합의했던 스타케미칼. 약속을 지키지 않는 회장의 몽니에 다시 고공을 오른 지 322일째다. 《체공녀 강주룡》과 다른 것은 고공의 높이와 고공에 체류하는 시간뿐. 끔찍한 기록만 쌓인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잊혀 지지 않는 이유다.

‘저기 사람이 있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