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나기] 주변을 보는 것 <주변의 상실_방법으로서의 자기>

by 센터 posted Dec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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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상실 | 샹바오 | 글항아리

 

조건준 아유 대표

 

 

페이스북 친구인 기자가 《주변의 상실 : 방법으로서의 자기》라는 책을 소개한 글을 보니 읽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마침 나는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다정한 곁’이고 그것이 바로 노조라는 생각에 젖어 있는 터였다. 그런데 ‘주변의 상실’이라는 책 제목에서 뭔가 강한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원래 책에서 쓴 용어는 ‘부근의 소실’이지만 ‘주변의 상실’이훨씬 한국에 익숙한 용어로 보인다. 500페이지를 넘어서는 좀 두꺼운 책이다. 그러나 책이 두껍다고 어려운 것은 아니고 얇다고 쉬운 것도 아니다. 이책은 두껍지만 대화를 기록해서 쉬운 측면이 있다. 물론 다루는 주제가 쉬운 주제만은 아니다. 중국 밖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중국인이 중국 자랑하는 얘기에 비해 중국인이 중국을 성찰하는 시각은 접하기 드물었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왜 국뽕에 빠질까

 

하늘에 뜬 하나의 달을 비춘 수많은 호수에도 달이 뜬다. 그러나 하나의 달이 아니다. 저마다 다른 호수에 다르게 뜬 달이다. 하나의 달이라는 통일성이 있지만 저마다 다른 호수에 뜨는 다름을 ‘천 개의 호수를 비추는 달빛’으로 표현하는 것이 맘에 든다. 진실은 딱딱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포근한 감성으로 다가올수록 친근하다. 그런데 이 문구를 보자 학창 시절에 배웠던 어렴풋한 기억 속에 천개의 강에 뜬 달을 의미하는 ‘월인천강月印千江’이 떠올랐다. 본래는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공덕을 칭송하는 표현이었다고 하는데 백성에게 미치는 임금님의 크나큰 공덕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백성은 호수고 달은 임금님이다.

 

하지만 샹바오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고리타분한 옛 얘기가 아니다. 세상에는 달과 호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개인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개인 사이에는 개인과 다양한 집단들로 이뤄진 수많은 단위의 사회가 있다. 국가는 강력하고 개인은 약하다. 그래서 개인들 곁엔 다양한 집단들이 있어야 개인을 억누를 수 있는 국가의 횡포를 막고 더 좋은 국가가 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시장에 뜬 달처럼 기업이 있다면 막강한 기업에 저항하기 힘든 지원들이 있다. 기업의 횡포를 막고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개인 사이에 뭔가가 있어야 한다.

 

샹바오는 왜 우리가 국가적 관점으로 세상을 봐야 하냐고 묻는다. 우리는 보통사람이고 대부분 국가 권력과 직접적 관계가 없다. 주변과 일상의 구체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세계 최고 강대국이 되려는 국뽕에 빠져서 세상을 보는 중국인들에게 성찰을 촉구한다. “어쩌면 자기 생활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거대한 국가와 민족의 모자를 눌러써야만 안전하다고 느끼는”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진짜 영웅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생활의 매일 매일을 바꿔나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게 딱 내 생각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거대한 혁명을 말하는 사람보다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을 바꾸는 사람이 중요하다. 대통령을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구체적 삶이 바뀌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거대하고 특별한 혁명과 대비해 평범한 사람들이 삶을 바꾸는 보통혁명, 즉 노멀 레볼루션이라 표현해 왔다.

 

초연결 사회에서 주변도 넓어졌을까

 

온라인 접속이 일상이 된 세계를 ‘초연결 사회’라고 할 때에, 오프라인의 곁을 대체하거나 혹은 온라인을 통해 좁았던 곁을 널리 확장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기억에 박혔던, 스마트폰 세태를 비판한 그림이 떠오른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 올리기 위해 온통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주변 사람들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다. 다만 그림이었을까. 같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대화는 단절된 채 각자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일상에서 자주 본다. 다만 그런 소소한 일상에 멈출까. 곁의 사람 일상과 고민보다 온라인을 통해 유명인들 일상과 고민, 지구 저편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곁에 두게 된다. 오프라인의 대면 관계를 온라인의 비대면 관계가 대체할 수 없다. 대면 관계는 오감으로 교감하는 종합적인 관계라면 비대면 관계는 영상이나 소리나 문자로 이뤄지는 부분적인 관계다.

 

기업에 취업하면서 단단한 곁이 생길까. ‘정’보다 ‘돈’ 먼저인 관계에서 취업하는 순간 다정한 곁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경쟁해야 하는 냉정한 주변에 휩싸이곤 한다. 이런 연장선에서 온라인 기술은 N번방의 성 착취 라인이 되고, 익명성과 악플에 의한 혐오 라인이 되며, 플랫폼 노동 착취 라인이 된다. 물론 온라인 기술 그 자체는 잘못이 없다. 다만 그 기술이 작동하는 구조가 문제다. 적적한 노부모에게 드리는 밤 전화는 ‘정’ 라인이지만, 퇴근 후 직장 상사의 업무지시 톡은 ‘악’ 라인이 된다. 이익 경쟁을 넘어선 존중하는 상호작용이 강해질 때에 비로소 다정한 곁이 된다. 이익 경쟁 공장을 권리 존중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무엇이 필요하다. 바로 그 무엇 중의 하나가 노조다. 노조는 바로 곁의 사람들과 만드는 사회다. 내가 보기에 우리가 찾아야 할 주변이 바로 이런 것이다.

 

멀리 넓게 보라는 것이 아니라고 주변을 보라고 하면 작은 얘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주변을 보는 것이야말로 실천적이고 구체적이며 진짜 크고 중요한 얘기다. 샹바오는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거창하고 쓸모없는 얘기들에 빠진 세태를 비판하고 주변을 되찾을 것을 제안한다. 플랫폼 경제에서 노동은 옆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일이 아니라 분산된 흐름이다. 이 또한 주변의 상실이다. 그는 사회를 잃고 시스템에 갇힌 사람들, 사람의 재생산, 포퓰리즘을 비롯해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신냉전을 얘기한다. 중국이라는 국가가 덩치가 크고 인구만 많지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꽤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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