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기억의 시간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

by 센터 posted Ju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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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준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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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박래군 지음 / 클

 

아침에 일어나면 가지런히 다듬은 짚이 상 아래에 놓여있고 평소에 보지 못하던 음식상이 방 윗목에 차려져 있었다.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걸 알았다. 미역국에 고기반찬까지 차려진 생일상으로 아침을 먹는 날은 행복했다. 생일이라는 것이 가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어느 날 섬마을 공동우물 입구에 전혀 보지 못한 화려한 설치물을 보고 알았다. 그 당시에 섬에서 꾸밀 수 있는 방식으로 꾸며 낸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섬에서 보기 힘든 크리스마스 트리를 처음 보면서 예수가 뉘 집 아들이기에 기뻐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예수라는 사람의 생일, 석가모니라는 사람의 생일도 함께 기뻐하는 날이란 걸 알았다. 이렇게 누군가 태어난 날은 ‘기념의 시간’이다.

 

제사를 왜 그리 밤늦게 지냈던 걸까. 죽은 조상들의 혼령은 양의 기운이 가득한 한낮보다 음의 기운이 충만한 한밤에야 자손이 차린 제사음식을 편하게 드시러 오기 때문이었을까. 이불 밑에서 졸린 눈꺼풀을 치켜올리며 귀를 세우곤 했다. 돌아가신 조상이나 예전에 일어난 가족에 관한 일이나 때로는 지나간 역사에 대한 얘기가 이어지곤 했다. 제사에 참석한 친척 어른들의 얘기를 통해 기록되지 않은 과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제사는 지난 일과 조상들에 대한 ‘기억의 시간’이었다.

 

전쟁은 기념되어야 하는가, 기억되어야 하는가. 서울의 중심 용산에 지어진 그 건물은 기념관이어야 하는가, 기억관이어야 하는가. 박래군은 이렇게 질문한다. 제주 4.3항쟁은 기념해야 할까 기억해야 할까, 광주항쟁은 기념해야 할까, 기억해야 할까, 세월호 참사는 기념해야 할까, 기억해야 할까.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결코 가볍지도 않다.   

 

박래군은 4.3 제주의 얘기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어릴 적 제사 때 어른들로부터 동족상잔의 비극과 멀어 보이던 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들었다. 초등생 정도였을 때 노를 저어 바닷길로 다녀온 어른들로부터 소록도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문둥이들의 섬이라는 기억보다는 그곳에서 나온 약은 굉장히 효과가 좋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나눴다던 양동시장에 내 첫 자취방이 있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 죽던 날 회색 광주를 기억한다. 금남로에 하얀 소복을 입고 나온 여인이자 희생자의 어미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을 군사독재의 서슬 퍼런 폭압의 공포 뒤에 숨어 외면하던 고딩이었다. 오월이면 가슴이 벌렁거려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광주혁명가〉를 높이 부르며 독재에 맞섰다. 어느 순간 오월을 자신의 명망과 출세를 위해 가져 가버린 모습까지 고스란히 보았다. 지금도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대로 부르려 하면 목이 메인다.

 

추억은 즐겁지만 어떤 기억은 고통스럽다. 박래군은 웃고 울고 분개하던 표정들이 아직도 생생한 선배, 친구, 후배 등 마석 모란공원에 묻힌 사람들까지 다시 내게 데려왔다. “에이, 씨” 책을 덮어 버리려 했다. 그럼에도 박래군은 잊어서는 안 될 기억들을 고스란히 꺼내 말을 건다. 어쩌면 꼰대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박혀있는 곳들을 찾아다니며 기억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일은 이미 발생했다. 그러므로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생환한 프리모 레비의 얘기를 인용하는 것을 압박으로 느낄지도 모른다. 파놉티콘을 구현한 감옥 얘기는 흘러간 옛일로 던져 버릴 수도 있다. 과거 인권 현장 얘기에만 그치지 말고 파놉티콘이 온라인 세상에서 새롭게 구현되고 있다는 걸 생생하게 설명하는 것이 인권 감수성을 위해 훨씬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다른 시대다. 존중받지 못하고 삭제된 청년들, 현대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플랫폼에 딸린 노동을 하는 21세기 시민들에겐 전혀 다른 감성으로 인권 얘기를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래군은 끝까지 기억을 얘기한다. 박래군의 책을 읽으며 기억 속에 놓친 장면들을 떠올렸다. 기억하는 시간이었던 제사 때 어머니들과 누이들은 제사음식 상에 앉아볼 기회도 없이 잔치를 떠받치는 노동을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눈 뜨면 차려져 있던 생일상은 어머니와 누이들이 태어난 날에는 없었다. 기억에도 기념에도 빠져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82년생은 페미니즘에 대한 감성이 꼰대냐 아니냐를 가른다고 했다. 한집에 사는 20대는 페미당당의 손팻말을 방에 걸곤 했다. 인권은 시대를 불문하고 세대를 불문하고 기억되고 지키고 촉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깃발이 휘날리는 지금, 21세기 인권혁명의 깃발을 놓치면 디스토피아에 가까워질 것이다. 박래군은 다 얘기 못 한 기억할 곳에 대해 또 쓸 것을 약속하면서 글을 맺었다. 늘 그곳들엔 사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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