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디지털 컨베이어 뒤편에도 사람

by 센터 posted Feb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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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서울감정노동센터 홍보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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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워크 /메리 그레이, 시다스 수리 / 한스미디어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싸움 한복판에서 어느 청와대 관계자는 ‘없어질 직업’이란 말을 꺼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하이패스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톨게이트 노동자가 한 명 더 자리를 잃는 것이 두려워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격전 이후, ‘어떤 직업이 인공지능과의 혈투에서 이기고 끝까지 살아남을까’는 우리 사회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인간의 예측은 틀리고,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고, 인간의 손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기계는 다르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알고리즘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알고리즘의 신비는 오늘도 우리를 또 다른 영상 앞으로 안내한다. 화면 앞에 앉은 이는 높은 확률로 그 영상을 좋아하고, 영향을 받는다. 이제 알고리즘은 단지 우리를 예측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지를 구성한다.


2016년에 나온 제리 카플란의 조금은 선정적인 책 제목은 《인간은 필요 없다》였다. 인간의 노동은 소멸하고, 그 자리를 인공지능이 메운다는 의미다. 거기서 발생한 부가 쉽사리 평등하게 배분될 리 없다는 걸 잘 아는 이들은 이제 인공지능의 출현 자체를 두려워한다. 정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런’ 형태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갈까.


《고스트워크》는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자들을 정말 대체하고 있는지를 묻는 책이다. 두 저자는 인공지능은 알고리즘 그 자체로 정말로 완전할 수 있는지, 인간의 손이 필요 없는지를 샅샅이 훑어 내린다. 그리고 마치 노동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디지털 컨베이어 뒤에서 정신없이 손을 놀리고 있는 노동자들을 찾아낸다.


‘고스트라이터’는 실제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다른 사람 뒤에 숨어 노동하는 작가다. 노동에 ‘고스트’라는 단어가 붙는 경우, 당연히 노동자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전면에 드러나는 것은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사용자의 행동과 패턴을 인식해서, 사용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다. 아니, 제공한다고 한다.


인공지능 시스템을 처음 디자인하는 건 개발자들의 몫이겠지만, 그 시스템이 굴러가도록 소스를 떠먹이는 건 사용자의 몫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건 여기까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소스를 떠먹이는 것만으로 내용물을 뱉어내는 인공지능을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인공지능도 아무 소스나 먹인다고 제대로 작동하는 건 아니다. 인공지능 시스템이란 본질적으로 기계다. 기계는 당연하게도 차질이 발생하거나 고장이 나게 마련이다. 그 자체로 알아서 멀쩡해지는 기계는 없다. 인간은 밤낮없이 기계에 달라붙어서 세밀하게 조정해야만 한다. 인공지능 시스템의 ‘지능’도 마찬가지다. 어떤 인공지능 시스템도 완벽하게 훈련되어 세상에 등장하지 않는다. 구글의 퀵 드로우는 그림을 그려서 맞추게 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그림을 잘못 인지했을 경우 ‘그건 고양이가 아니라 버스’라고 알려주어야 한다. 단지 그림이 아니라 인간이 ‘알려준’ 것들이 쌓일수록 인공지능은 더 완벽하게 훈련된다.


고스트워크는 이렇게 시스템 뒤에서 시스템을 훈련하는 노동이다. 소프트웨어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Dynamic Stew로 번역된 ‘동태’찌개는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정정할 수가 없다. 한국인만 알아볼 수 있는 에어비앤비 후기(“빠뀌뻘레 나왔씁니따”)를 번역기로 알아볼 수 있게 할 방도는 없다. 제각기 상품을 올려서 구매하게 하는 아마존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에 물품을 올리는 사용자들의 철자 오류는 인공지능이 수정하지 않는다. 이 이미지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보도록 연결해주는 이미지 태깅도 인공지능이 혼자서 해낼 수는 없다. 인공지능 뒤에서 수정하고 조정하는 인간이 없다면 시스템은 무너진다. 어떤 의미에서 고스트워크는 소프트웨어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윤리적인 판단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이 문제는 더욱 첨예해진다. 인공지능은 손으로 가슴과 성기를 가리고 있다는 이유로 아동 포르노를 걸러내지 못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언급한다는 이유로 나치를 찬양해도 그대로 송출할 수 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라고 검색 결과에 드러낼 수도 있다. (이는 실제로 2018년 구글 검색 알고리즘을 통해 드러났다.)


사실 노동은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기를 요청받아 왔다. 청소 노동자들이 새벽에 출근하는 이유는 건물이 이미 깨끗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알고리즘이 완벽하지 않다는 건 숨겨야 할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은 곧잘 소모품처럼 취급된다. 불안한 노동이 제일 먼저 포섭하는 건 약한 사람들이다. 아마존의 엠터크는 오타를 수정하고 상품 이미지에 태그를 걸 여성 노동자를 구하면서 ‘여성이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일자리’라는 걸 강조했다.


이는 최근 한국의 모 플랫폼이 ‘N잡러’를 내세우는 방식과 흡사하다. 예술가가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주부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돈을 벌 수 있다. 컴퓨터 앞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는 고스트워크는 신체가 부자유한 장애인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고스트워크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지역사회와 가정이 여성의 노동을 금지하는 국가에서도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일자리가 자유롭다는 건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해고도 자유롭다는 의미다.


알고리즘이 노동을 파악하는 방식은 오로지 입력된 자료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노동을 대하는 알고리즘은 필연적으로 무자비하다. 노동을 판매하기 위해 알고리즘 내부로 들어간다는 건, 마치 당근마켓에서 새롭게 팔리는 원피스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노동자의 성별, 나이, 포부, 태도는 전혀 알 수 없다. 노동자는 그저 식별부호로만 집계된다. 알고리즘이 측정하는 건 단지 통제되는 ‘시간’이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플랫폼에 접속해 있고, 그 시간 안에 많은 일을 처리했는지가 모두 체크된다. 자유로운 노동이기 때문에 다른 노동자들과 접속하지 못하고,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무자비한 알고리즘과 싸우듯이 일해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기술적 오류가 발생하면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증명할 수 없다. 마켓에서 팔리는 상품과 비슷하게 체크되는 노동자들을 알고리즘은 능숙하게 제거할 수 있다. 해고할 필요조차 없다. 그저 접속을 못 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디지털 컨베이어 뒤에서 어떻게 단체행동이 가능한지를 다룬다. 플랫폼과 알고리즘 속에서 노동은 갈가리 흩어진 숫자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함께 일한다. 함께하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일의 요령을 주고받고, 어떻게 일을 해야 알고리즘을 이길 수 있는지를 배운다.


미디어는 곧잘 인공지능과 인간의 노동을 제로섬으로 붙여 놓고 비교한다. 인공지능이 점점 완벽해질수록 인간이 설 자리는 없어질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 인공지능이 판단과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그 뒤에 서 있는 인간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전에 주어졌던 정보를 통해서 유추하고, 감각을 공유하는 능력은 앞으로도 기계보단 인간이 더 뛰어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기계와 인간은 공존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향은 인간의 얼굴을 좀 더 뚜렷하게 만드는 방식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기계 뒤에 당연하게 서 있는 인간을 직시하는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하이패스를 설치하지 못하는 다정하고 귀한 마음들도 인공지능과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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