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우 센터 상임활동가
물질과 의식: 현대심리철학입문 / P.M. 처치랜드 / 서광사
그리고 여기, 옛부터 이어져 오는 케케묵은 논쟁 하나가 있습니다. 누구나 고민해보았고, 누구나 어떻게든 결론을 내리고 살아가는 그런 문제입니다. “과연 영혼은 존재하는가?” “나는 단지 똥 덩어리 반죽일 뿐인가?” ‘나’라고 하는 존재의 정체성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 평소에는 먹고사는 일에 치여 쓸데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혹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극적인 감정 변화나 심리적 고통을 겪고 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러나 도저히 이전처럼 “쓸데없을 뿐이야.”라고 가볍게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로 다가오는 그런 질문이지요. 그리고 그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리냐에 따라 앞으로 인생의 큰 흐름이 바뀌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물질과 의식: 현대심리철학입문》은 바로 그 질문에 관해 다루는 책입니다. 아주 오래된 과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최신 논의의 철학적 흐름과 과학 발전에 따른 새로운 논쟁거리를 소개합니다. 단지 철학자들의 현학적인 논쟁 흐름을 소개해주는 것이 아니라 신경과학, 인지과학, 인공지능 등 심리철학과 연관된 다양한 인접 학문들의 논의와 실험 결과를 함께 소개하고, 다양한 입장을 설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본인이 어느 방향에 서서 이야기를 따라갈지는 온전히 당사자의 선택입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영혼’이라든가, ‘마음’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이고 그 마음의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다루지요. 소위 ‘인식론’이라는 철학 범주의 연장선상에서 ‘의식’에 대해 고찰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는 타인과 어떻게 ‘정보’를 주고받는가, 나의 고통을 어떻게 전달하고 공감하는가, 내가 먹는 이 ‘사과apple’가 맛있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
철학과 심리학의 중간 어느메 놓인 이 심리철학은 사실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입문서적으로도 많이 쓰이는, 조금은 딱딱한 책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내가 그랬기 때문입니다. 괴롭고 힘들고 울고 싶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마음을 가눌 수 없을 때마다, 또 다른 마음 한켠에서는 그런 나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의식’으로 나의 ‘의식’을 관찰하며 불꽃을 꺼뜨릴 수 있는 훈련을 하게 해주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나는 단지 무기물 덩어리가 아니며, 모든 것을 풀어 헤쳐 놓는다 하더라도 부분의 합(무기물 덩어리)을 뛰어넘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무언가(마음)의 발걸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양자 사이에서 조금은 덜 괴롭고 조금은 덜 아픈 마음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며 사색할 수 있는 인내심의 밑거름이 되는.
물론, 이 책보다 더 뛰어난 책들이 없다고 말할 수 없고, 이 책이 엄청난 진리를 담보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마음에 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거나 해탈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마음과 영혼, 인식에 관한 어떤 이론이나 믿음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오류는 살며시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로 인해 앞으로의 삶에, 나를 대하는 나 자신의 태도도 조금은 더 겸손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비전문가, 비전공자가 읽기에도 충분히 쉽습니다. 물론, 마음이 무엇인가 하는 주제 자체는 별개의 문제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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