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 ··· <국가부도의 날>

by 센터 posted Feb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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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하 쉼표하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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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의 날/최국희 감독


국가부도의 날IMF시대 전후를 경험했던 이들에게는 많이 공감가고 이해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젊은 세대나 경제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조금은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꼭 한번쯤은 봐야 할 영화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영화 속 내레이션처럼 우리는 여전히 20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지옥 같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외환위기와 함께 IMF시대에 접어들기 전인 1997년 이전까지만 해도 경제 사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음식점이든 술집이든 밤늦게까지 불야성이었던 걸로 보면 겉보기엔 풍족해 보이는 시기였다. 하지만 그 빛을 점점 잃어가고 곳곳의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를 상황에서 그 위기를 감지한 보고서 하나가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이야기는 세 인물을 축으로 전개된다. 국가 경제 위기 상황을 알리고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과 시현의 오빠이자 평범하고 성실한 중소공장 사장인 갑수, 그리고 위기를 기회삼아 부에 대한 야망을 꿈꾸는 금융맨 윤정학이 그 인물들이다.


여기저기서 국가 경제 붕괴 징후를 느끼게 된 시현은 위기 상황을 윗선에 보고하지만 정부의 고위 경제 관료들은 이를 묵살한다. 오히려 한술 더 떠 권력의 핵심인 재정국 차관은 국민들한테 진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숨길 것을 지시한다. 대 국민 바보 만들기의 한축에선 언론도 열일 한다. 결국 시현은 국민의 삶보단 자신의 안위와 출세가 우선인 권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한편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시현의 오빠 갑수는 대기업과 큰 계약을 체결하고 결재대금을 어음으로 받았지만 대기업의 부도로 연쇄 부도 상황을 맞는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빚 독촉과 직원들의 임금 체불, 설상가상으로 거래처 사장의 자살은 갑수를 절망케 한다. 정학은 불안한 시기를 틈타 남들이 투자의 위기라 할 때 역으로 적기라 하며 투자자를 끌어 모은다. 정학의 예견은 시간이 흐를수록 맞아떨어지고 위기 상황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된다. 20년의 시간이 흐른 후 시현은 투기자본을 감시하는 단체의 장으로, 갑수는 외국인 노동자를 채근하는 공장 사장으로, 정학은 강남일대 빌딩을 소유한 자산가로 변모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영화가 일정부분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버무려 놓긴 했겠지만 영화에서처럼 당시 국민들은 국가 경제의 심각성을 감지하지 못했다. 무능한 경제 관료들과 언론의 감시와 견제 기능이 제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IMF는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우리의 삶속에 파고 들어왔다.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떠드는 IMF와 구제금융이란 단어를 채 이해하기도 전에 말이다.


내가 IMF를 체감하게 된 건 당시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던 때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서였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회사의 위기 대응이라는 미명 하에 하나둘 떠나갔다. 구조조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직장을 잃은 동료들의 삶과 가정은 한순간에 파괴되었다. 노동조합은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했다. 199612월 날치기로 통과된 노동법은 IMF 상황에서 정리해고를 손쉽게 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기에 투쟁은 녹록치 않았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갑수와 주변인들의 고통과 불행을 보면서 자꾸 눈물이 났다. 그때의 투쟁 과정과 억울하게 직장을 떠나갔던 동료들의 참담한 얼굴이 영화 속 장면들과 자꾸만 오버랩 됐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빚더미에 올랐으며, 구조조정으로 거리로 내몰렸다. 국민의 삶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만약 대기업에 대한 대출을 마구잡이로 해주지 않았더라면? 만약 경제 관료들이 정책 판단을 잘했더라면? 만약 IMF 구제금융을 받지 않았더라면? 만약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더라면? 우리의 삶은 지금과 달라졌을까?


국가부도의 날은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힘들었던 시대 상황을 한번쯤 반추하게 하고, 이를 겪지 않은 세대에게는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줌과 동시에 경각심을 일깨우게 한다. IMF 구제금융 위기를 벗어난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무능한 정부와 나태하고 복지부동한 정부 관료, 심각한 빈부 격차, 높은 실업률과 열악한 노동조건, 많은 비정규직과 직장 갑질···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20년 전 성실하고 순박한 공장 사장 갑수가 외국인 노동자를 닦달하는 악덕 사장으로 변한 씁쓸한 모습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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