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노래가 힘이 되나요?

by 센터 posted Dec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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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연  꽃다지 기획자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내버려진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2022년 12월 5일 저녁, 국회 정문 앞에서 때아닌 꽃다지 미니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노조법 2조를 개정하여 하청업체도 원청에 대한 교섭과 쟁의행위를 가능하게 하고, 노조법 3조를 개정하여 노조 활동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해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도록 노조법을 개정하자는 ‘노란봉투법’ 제정을 촉구하는 자리였습니다. 〈내가 왜?〉는 노란봉투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하고 있는 노동자의 마음이 담긴 노래였기에 함께한 이들이 입을 모아 함께 불렀습니다. 저도 흥얼거려봅니다. “내가 왜? 세상에 내버려진 채~~~” 오늘따라 유난히 더 화가 납니다.

 

꽃다지1.jpg

노조법 2, 3조 개정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공연하는 꽃다지(@꽃다지)

 

〈내가 왜?〉는 2010년 겨울에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그해 겨울에는 유난히 거리에서 농성하는 현장이 많았습니다. GM대우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은 부평 대우차 정문 아치 꼭대기에 올라가 12월 칼바람 맞으며 농성 투쟁을 했고,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12월 어느 날, 열댓 명이 모인 재능교육 농성장에서 연대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단숨에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일하려고 들어간 직장에서 일은 못 하고 길거리로 내쫓겨 장기 투쟁해야 하는 현실은 오랜 세월 마주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정윤경 꽃다지 음악 감독은 그날따라 유난히 노동자의 외침이 허공에 부서지는 현실에 많이 화나고 섭섭했답니다. 공연을 마치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 사람들이 왜 이 추위 속에서 노숙하며 싸워야 하는가? 그저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자 할 뿐인데 왜 일자리를 빼앗는가?’라는 생각을 곱씹으며 만든 노래가 바로 〈내가 왜?〉입니다.

 

찬바람 맞으며 한뎃잠 자는 노동자의 현실은 그대로 노랫말이 되었고 자연스레 가락이 얹혔습니다. 다음 날 노래를 들으며 꽃다지 식구들은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민중가요와 다른, 희망 한 자락 담기지 않은 노랫말이 노동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염려되었습니다. 명색이 희망의 노래 ‘꽃다지’인데 너무 절망만을 그린 것은 아닌가? 그래서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사무실에 모셔 의견을 물었습니다. 다행히 기륭 노동자들은 투쟁할 때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주어 좋다고 해주셨습니다. 길거리에서 농성할 때, 전단을 나눠줄 때 벌레 보듯 힐끔거리고 지나는 사람들의 눈빛을 받아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면서.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지난한 싸움을 끝내고 일터로 돌아가 ‘그땐 그랬었지. 〈내가 왜?〉를 서럽게 부르던 시절이 있었지.’라고 회상하는 추억의 노래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그러나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왜?〉는 현실의 노래로 불리고 있습니다. 비단 〈내가 왜?〉뿐만 아니라 30여 년 전에 부르던 〈단결 투쟁가〉도, 20여 년 전에 부르던 〈호각〉도 여전히 유효한 노래라는 현실은 나의 활동에 의문을 던지게 합니다. “우리의 노래가 힘이 되나요?”

 

꽃다지 사람으로 26년간 현장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10주년 콘서트 할 때 찾아주었던 팬들이 “20주년까지 노래해주세요.”라고 할 때 그럴 자신이 없어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짐작도 못 했습니다. 꽃다지가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지도, 제가 꽃다지 사람으로 30주년을 맞이할지도. 한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꽃다지가 만나는 노동자의 현실은 변함없이 강퍅하다는 것이 서글프고 화가 납니다. 그래서 또 묻습니다. “우리의 노래가 힘이 되나요?” 그리고 자신에게 답합니다. “아직은 더 꽃다지의 노래가 필요하니까 좀 더 힘내야지. 흔들려 다시 피는 꽃, 꽃다지이니까.”

 

얼마 전에 조돈문 선생님께서 30년을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30년 더 노래하길 바란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아연실색할 말씀이지만 응원의 말씀에 기운이 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꽃다지의 이름으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화상으로 기억되는 노래를 부르고 싶으니까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수만 가지 노래의 길을 찾아 헤매기도 할 테지요. 흔들리고 또 흔들리면서도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으니 좀 더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먼 훗날, 꽃다지의 노래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두드려준 멋진 선동가로 기억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영광스러울 겁니다.

좀 더 노래해야겠습니다. ‘거친 세상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분노가 되고 희망이 되어 거리에서 온 땅으로 함께’하면서 말입니다. 아직은 노래만큼 좋은 세상이 멀리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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