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생의 투쟁가

by 센터 posted Oct 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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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은 센터 상임활동가

 

 

아이돌 사이에서도 워너비로 꼽히는 그룹의 데뷔곡이 MZ세대 민중가요로 자리 잡았다.

 

90년대 생에게 민중가요는 낯선 음악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와 여러 집회에 참여했는데, 그때마다 부르는 노래를 알지 못해서, 정확히는 한 번도들은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함에도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한목소리로 부를 수 없는 게 아쉬웠다. 민중가요 중 정확한 악보가 없는 노래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흥미로웠다. 그런 노래가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다니. 그 힘은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30년이 지난 지금의 투쟁 현장에서도 부를 수 있는지 궁금했다.

 

생각을 펼치던 중, 청년단체들과 함께한 집회에서 같이 부른 노래가 있었는지 되돌아봤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민주화운동 이후 사회적으로 대두되었던 아젠다가 딱히 없다. 학생운동이라고 해봤자 반값 등록금 운동 이후에는 그다지···. 80~90년대 생에겐 민중가요는 고사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낯설다. 그러니 같이 부를 만한 노래가 있으려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지난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 시위가 생각났다. 대학가에서 대대적으로 시국선언도 하고, 시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때 어떤 노래를 불렸나 되짚어 봤다.

 

이화여대.jpg

2016년, 최경희 총장 사퇴를 촉구하며 이화여대 캠퍼스에 모인 학생들 (@여성신문)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마 눈 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많은 아이돌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다. 연습생들이 아이돌로 데뷔하기 전에 가장 많이 연습하는 노래다. 그리고 아이돌 데뷔를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주 다뤄지기도 한다.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자는 내용과 데뷔를 원하는 연습생의 열망이 내포되어 있다. 데뷔곡이어서 더 그럴 것이다.

 

이 노래가 민중가요처럼 시위 현장에서 불린 최초 사례는 2016년 이화여대에서였다. 당시 이대 학생들은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 일환으로 신설되는 ‘미래라이프대학’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총장과의 대화를 요구하면서 본관 농성을 했는데, 이를 진압하고자 1,600명의 경찰 인력이 투입되었다. 이때 학생들은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저항의 의미로 노래가 새롭게 불린 순간이었다. 그 이후, 이 노래는 청년들이 모인 집회 현장에서 자주 등장했다. 개인적으로는 청년유니온을 통해 참가한 노동절 집회에서 ‘민중가요’로서 처음 불러보았다. 낯선 노래로 채워진 집회가 아닌 익숙하고 부를 수있는 노래가 흐르는 집회에 참여했을 때, 나도 이 공간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이 들었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다시 만난 세계〉는 연대와 저항을 담고자 하는 현장에서 호출되었다.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에서도, 태국 민주화운동에서도. 가장 최근불린 곳은 올해 성신여대에서였다. 새로운 총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분노한 1,600여 명의 학생이 시위에 나섰고 〈다시만난 세계〉를 불렀다. 〈다시 만난 세계〉는 여성 청년들이 서로 간의 연대와 힘을 사회에 보여줬다는 점과 더불어 퀴어축제 공식 축가로 선정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있는 그대로를 존중받지 못하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자존감 떨어진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청년들에겐 ‘이 느낌 이대로’ 사랑한다는 가사가 위로의 말을 건넬 것이다.

 

《비정규노동》 ‘그때 그 노래’ 꼭지를 보고는 글을 써보겠다고 자처했다. 〈다시 만난 세계〉는 2007년에 발매되어 비교적 오래된 노래는 아니다. ‘그때 그노래’로 꼽기에 애매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른바 민중가요로서, 90년대 생은 연대와 저항의 의미를 담아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비정규노동》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이 노래는 기성세대와 MZ세대를 아우르는, 세대를 넘어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노동운동과 투쟁가, 집회, 민중가요가 낯선 세대에게 연대와 저항의 힘을 익숙하게 전달해 주는 노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집회 현장에서 전 세대가 이 노래를 힘껏 부르며 어울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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