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 잊지 못할 노동조합

by 센터 posted Dec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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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옥  민주노총 서울본부 부본부장

 

 

초등학교 시절 합창단 활동을 했던 나는 남 앞에서는 꼭 동요나 가곡을 불러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야 외국 노래를 듣거나 건전가요를 부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금 생각만 해도 낯부끄러운 노래에 대한 일화가 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남편 직장에서 가족까지 불러 회식하는 자리에 참여했는데, 마지막 놀이로 참여자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외국인 바이어들을 위해 이탈리아 가곡 〈오 솔레 미오〉를 목청껏 불렀다. 좋았던 분위기의 회식 자리는 내 노래로 찬물을 끼얹었고, 그 이후로 나는 가곡을 부르지 않았다.

 

내 애창곡은 가곡과는 거리가 먼,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남자 과장에게 불러준 나훈아의 〈영영〉이 되었다.

 

악보.jpg

 

2002년 4월 한국까르푸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지 6년이 되었으나, 세계 2위의 프랑스 유통업체인 까르푸는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았다. 단체협약조차도 없었다. 그래서 노동조합 중앙은 처음으로 파업을 결정했다. 당시 가장 강성이었던 중계지부의 사무국장을 맡았던 나는 지부장과 함께 전면파업 투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샐러드바(즉석식품)의 과장이 전보 발령을 받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새로 부임한 과장은 학벌보다는 자기 실력으로 그 자리까지 온 사람으로 작달막한 키에 카리스마 있는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져 여성 노동자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우리 중계지부를 깨기 위해 노조 파괴 지침을 받고 부임한 사람이었다. 그가 온다는 소식에 여성 조합원들은 술렁거렸다.

 

과장은 오자마자 회식 자리를 마련하고 상계 백병원 옆 중국집의 대형 룸으로 오라고 지시하였다. 당시 내가 일하던 부서는 모두 조합원들이었고, 신선식품부 부장까지 회식에 참여했다. 과장이 조합원들을 회유하는 자리가 될 것 같다고 예상하고 조합원들을 단도리하며 주의를 당부했다. 과장은 큰 목소리로 자기를 도와 달라며 건배를 제안했다. 그 자리에 있던 부장은 기가 질려 과장보다도 목소리가 작았고, 조합원들은 마지못해 맥주를 꽉 채운 잔을 들고 건배에 동참하였다. 건배 순간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과장의 맥주잔은 멀리 중국집 벽에 던져졌고, 유리잔의 파편은 산산이 부서졌다. 취해서 몸도 못 가눈 과장은 먹던 울면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으면서 〈올드보이〉의 최민식처럼 동물적인 폭력성을 몸소 보여주었다. 나는 만취한 과장을 뒤로하고 조합원들과 중국집을 나오면서 과장의 기괴한 행위를 폭로하고 문제 삼겠다고 선언하였다.

 

밤새 조합원들과 소통하며 과장의 기 싸움에서 우리가 밀리면 안 되니 내일 아침에 서명부를 만들어 돌리고 최소한 과장의 사과를 받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과장의 위협에도 중계지부 샐러드바(즉석식품)는 예정대로 낮은 단계인 노조 조끼 입기 투쟁을 7일간 진행했지만, 베이커리, 수산, 농산은 이미 조끼를 모두 벗었고 사무국장인 나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만 했다. 조합원들은 각 부서 과장들과 부장의 손을 타고는 줄줄이 집단 탈퇴했다. 나는 노동청에 진정서를 넣고서야 중계지부의 샐러드바 조합원들이 모두 탈퇴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1단계씩 승급을 하고 조끼를 벗은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과장은 노조 파괴 공작원이었다. 까르푸에서 노조 탈퇴 성과는 관리자들의 인사고과로 바로 연결되었다. 1단계 승급으로 월 3만 원을 올려 받은 여성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는 일만 남았다.

 

한국까르푸노동조합은 마지막까지 남은 중계지부 간부들의 300일 파업으로 노조 설립 7년 만에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현장으로 들어갔다. 중계점에 복귀한 나는 탈퇴한 샐러드바 조합원들과 과장에게 직장 내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그렇지만 내가 혼자여도 당해낼 재간이 없던 동료들은 나와 화해를 했고 과장은 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나는 탈퇴한 조합원들을 재가입 시켰다.

 

과장은 노조 탈퇴 지시를 받고 왔던 터라, 회사를 나가는 일만 남았다. 과장은 까르푸를 퇴사한다고 발표하며 회식 공고를 냈다. 나에게 그토록 악랄하게 도발했던 과장이 나가는데도 측은지심이 들었는지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회식에 참석했다. 과장은 나에게 “이경옥 씨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라고 했다. “언젠가 노동조합으로 연락을 할 수도 있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과장은 중계점 앞에서 한동안 포장마차를 운영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 포장마차를 찾지 않았다.

 

나는 2차 노래방에도 함께했다. 그리고 나훈아의 〈영영〉을 부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했다. 내가 생각해도 멋진 한 방이었다.  그 이후로 〈영영〉이 나의 18번이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노동조합은 〈영영〉의 노랫말처럼 영영 잊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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