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대변지로 전락한 언론의 한심한 현실

by 센터 posted Dec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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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2021년 12월 13일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대기업의 절반이 내년도 투자 계획을 짜지 못했다’라는 보도자료를 내자 모든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쓰기’ 보도를 했다. 한경연의 보도자료를 검증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언론은 없다.

 

한경연의 이 보도자료는 최근 한국 경제 상황을 왜곡하며 위기감을 고조해 ‘규제 완화’라는 자본의 의도를 관철하려는 불순한 목적이 있다. 언론의 묻지마식 받아쓰기 보도는 알게 모르게 자본의 의도에 놀아나는 셈이다. 한경연의 의도는 다음 두 신문의 사설과 기사를 보면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경제.jpg

 

한국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허구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한국 기업의 경영 환경은 글로벌 경쟁자들보다 열악하다. 달성 불가능한 탄소 중립 목표 강제, 친노조 정책 심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온통 지뢰밭이다”라면서 대선 후보들에게 기업들의 애로를 경청하기 위해 귀를 열라고 주문했다.

 

조선일보도 ‘대기업 투자 얼어붙었다’라는 기사에서 한경연의 보도자료를 인용하며 “원자재 가격 인상, 해운 운임 상승, 미국의 반덤핑 관세 등 가뜩이나 어려운 외부 상황에서 임금협상을 둘러싸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한국타이어 노조의 대전·금산 공장 총파업이 20일째 계속되고 있다”라며 ‘반노동조합 정서 확산’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같은 기사에서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의 1번 타자가 건설회사 CEO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투자와 사업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라는 국내 건설회사 사장의 인터뷰를 통해 엉뚱하게 ‘중대재해법 책임론’을 거론한다.

 

하지만 이들 언론 보도는 최근 한국 경제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허구다. 국내 500대 기업은 올해에 2018년 이후 영업이익 200조 시대를 다시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는 11월 16일 국내 500대 기업 중 2021년 3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259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연도별 분기 실적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기업의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67조 7352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71.5%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영되지 않은 4분기 실적까지 더해지면 200조 원을 상회할 것이라고 한다.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2017년의 223조 3603억 원도 넘어 사상 최대 영업이익도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표본오차를 밝히지 않는 언론

 

그뿐만 아니다. 올해 한국의 수출은 사상 최대인 64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전년도보다 26% 증가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은 그간 한국 기업의 기초 체력이 튼튼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도했다. 국제통화기금 IMF는 세계경제성장률이 지난해 -3.1%에서 올해 5.9%로 급등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정부는 내년에도 글로벌 교역 및 수요 확대 등으로 실물경제 회복세가 계속돼 수출 증가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문제는 기업의 양극화 심화다. 8월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사업보고서를 공시한 1244개 중소기업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취약기업’은 50.9%로 절반의 기업이 경영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한경연의 보도자료는 ‘양극화 위기’ 속에 대기업의 책임을 회피하고 은폐하기 위한 목적일 뿐이다.

 

한경연의 이번 설문조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표본 조사 방식이 아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했으며 실제로 조사에 응한 기업은 101개 기업이며 ‘내년 투자 계획 없다’라는 기업은 8.9%로 조사 대상 500개 기업 중 9개 기업에 불과하다. 이번 조사의 첫 번째 문항은 우리나라의 투자 환경을 점수로 평가하는 항목이다. 평균 65.7점으로 언론의 평가와는 다르게 매우 우호적인 환경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언론이 주로 인용하는 ‘국내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는 규제’로 35.3%가 ‘고용 및 노동 규제’라고 답했는데 이는 인식 조사일 뿐 내년도한국 경제 상황에 대한 전망과는 무관하다.

 

이 보도자료는 설문지를 통한 전화면접과 팩스, 이메일 조사로 진행했고표본오차는 ±8.71%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 정도의 표본오차는 의미가없어 보도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표본오차를 밝히는 언론은 없다.

 

언론이 책임져야 할 불평등 인식

 

당선이 유력해 보이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최저임금제 △주 52시간제 △중대재해법 등 기본적 노동권과 관련된 법의 폐지·보완을 주장했지만, 어느 언론도 이 주장을 검증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고용노동부가 여러 차례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이 아님'을 밝혔지만 이를 보도하는 언론은 없다. 그냥 기자개인의 판단과 생각에 의존해 습관적으로 기사를 쓸 뿐이다. 윤석열 후보의 노동 인식은 언론이 만든 것이다.

 

세계불평등연구소는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에서 “한국의 평균 소득은영국과 이탈리아 등 일부 서유럽 국가보다 높지만, 불평등은 이들 나라보다 더심각하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불평등이 악화한 상황에 대해 “필연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결과”라며 누진적인 조세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18일 OECD가 발표한 〈2021 불평등보고서〉를 보면 “불평등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불평등 해소 정책은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보고서는 한국을 “불평등에 대한 ‘혼란스러운 인식’을 가진 나라”로 규정한다. 불평등을 강하게 인식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역할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인식’을 만든 가장 큰 책임은 언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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