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이상형

by 센터 posted Feb 28,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

 

스콜피언스.jpg

스콜피언스 〈Always Somewhere〉 음반 커버

 

입대 전 일이었어요. 이성 친구를 목말라했지요. 유난히도 여자가 따르지 않았어요. 가만히 보니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사람을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럴듯했어요. 통기타를 메고 다녔어요. 폼이었어요. 여자들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기타는 샀지만 배우기를 힘쓰지 않았어요. 초등학교를 제외하곤 학교 음악시간을 싫어했거든요. 노래 못 하고, 악보 못 보고 리듬감도 젬병이었거든요. 이론과 실기가 영 시원치 않으니 계속 폼으로 메고 다녔어요.

 

친구가 단체 미팅을 주선했어요. 여자애들이 그룹사운드를 한다고 해요. 너무 멋져 보였어요. 기가 죽기 싫어 우리도 그룹사운드를 한다고 친구에게 말했어요. 미팅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앰프, 전자기타, 드럼, 건반을 사서 흉내라도 내자고 했어요. 장비에 돈이 많이 들어가 주점에서 웨이터 일을 했어요. 미팅 날짜는 다가오는데 웨이터 생활로는 악기 살 돈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미팅 날 다른 악기는 몰라도 전자기타와 베이스기타 정도는 메고 나가야 폼이 났어요. 그룹사운드라는 걸 증명하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친구들과 돈을 빨리 모을 수 있는 계획을 세웠어요. 우리가 일하는 주점은 계산이 선불이었어요. 그 점을 이용했어요. 손님이 중간에 술과 안주를 추가하면 잔돈을 지폐든 동전이든 손님 마시는 물 잔 밑에 두면서 말했어요.

“여기에 놓을게요.”

손님 마시는 물잔 밑에 놓은 동전은 보이지 않았고, 지폐는 반으로 접어서 모서리만 살짝 보이게 물잔으로 눌러 놨어요. 손님들은 얘기에 바빴고 잔돈에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어요. 당시에는 잔돈을 바로 주머니에 넣으면 체면이 구겨지는 거로 생각하는 문화였어요. 주점은 주로 막걸리와 약주를 팔았어요. 물잔도 컵이 아니라 막걸릿잔이었어요. 지폐와 동전을 숨기기에 적합했어요. 손님들은 술에 취해 잔돈이 있는 줄 모르고 그냥 일어섰어요. 테이블을 치우며 숨겨진 돈을 거둬들였어요.

 

주점에는 연인들이 많이 왔어요. 연인들은 반지를 가지고 자랑하거나 서로 껴보곤 했어요. 손님들 추가 주문을 기다리다 이런 행동을 하는 테이블이 있으면 그곳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맴돌았어요. 열에 여덟은 반지를 가지고 장난하다가 바닥으로 떨어뜨렸어요. 그때가 제가 나서는 때입니다.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고개를 테이블 밑으로 숙였어요. 떨어진 반지를 팔에 끼고 있는 토시 안에 숨기고 허리를 펴고 말했어요.

“손님, 없는데요.”

그제야 연인들이 테이블 밑으로 고개를 숙여 찾았어요.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돌아다니며 이리로 굴러갔나? 저리로 굴러갔나? 전전긍긍했어요. 찾지 못하자 연인이 다투었어요. 연인은 붉으락푸르락 주점을 떠났어요.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나요. 하늘이 도우셔서 종종 이런 연인들이 출몰했어요. 그렇다고 이렇게 얻은 금붙이가 다 제 것이 되진 않았어요. 화장실에서 토시에들어있는 금반지를 꺼내서 기뻐하다가 하수구 구멍에 빠뜨린 적도 있거든요.

 

전자기타를 메고 미팅을 나갔어요. 다섯 명의 여자 중에 보컬을 맡은 애가눈에 들어왔어요. 이상형이었지요. 어려서부터 키가 작아서인지 키 크고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한 여자를 좋아했어요. 보컬은 운동화를 신고 나왔는데175인 내 친구와 거의 비슷했어요. 얼굴은 좀 못생겨도 괜찮았어요. 제가 커버할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 보컬이 파트너가 됐어요.

여자애들이 물었어요. 어떤 노래가 대표 연주곡이냐고. “스콜피언스Scorpons의 Always Somewhere.” 라고 대답했어요. 그때 레스토랑에서 음악이 흘러나와요. 여자애들은 동시에 외쳤어요.

“어! 이거 스콜피언스의 Always Somewhere다.”

들어보니 그 음악이었어요. 그런데 보컬이 자기 친구들과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어요.

“아니야, 이거 속는 음악이야. 전주가 비슷한 음악이 있는데 그 음악이야."

“맞아, 속는 음악이야.”

내가 맞장구쳤어요. “우리가 대표곡으로 연주해서 헷갈린 적이 여러 번 있었어.” 라며 친구를 쳐다보며 동의를 구했지요.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어요.

“맞아!”

조금 있다 보컬이 말했어요.

“아니야, 아니야. 이거 Always Somewhere 맞는 거 같은데.”

그 순간 스콜피언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어요.

“Always Somewhere.”

우리는 고개를 떨구었어요, 친구들은 나에게 원망의 눈짓을 보냈어요. 여자애들은 할 말을 잃었는지 침묵이 공간을 채웠어요. 분위기 파악을 못 한 DJ 목소리가 침묵을 더 깊게 했어요.

“스콜피언스의 Always Somewhere였습니다. 젊은 그룹사운드에서 많이 연주하기도 하죠.”

여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한마디씩 했어요.

“악보는 볼 줄 아니?”

“피크도 잡을 줄 모를걸.”

스콜피언스의 Always Somewhere와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의 Simple Man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를 놔두고 이상형은 사라졌지요.

 

실패를 딛고 다시 나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새로운 이상형을 찾기 위해 오늘도 기타를 멨어요. 여전히 기타 연습하는 시간은 아깝고 힘듭니다. 그 시간에 기타를 메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걸 더 좋아합니다.

“기타를 멨어요. 폼으로 멨어요. 그녀에게 자랑하고 싶어 폼으로 멨어요.”

흥얼거리며 다짐합니다. “실력이 없지 가오가 없는 건 아니다.” 

?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