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현장] 단 한 번의 대화가 그렇게 어렵나요

by 센터 posted Feb 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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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권  강북구도시관리공단분회 대의원

 

 

어느새 2개월이 넘어간 파업

 

지금까지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않은 코로나라는 갑작스러운 시련 속에서 강북구도시관리공단(이하 공단) 노동자들은 공단으로부터 인력 감축 통보를 받았습니다. 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물처럼 공단 노동자들의 발목부터 시작해 턱밑까지 차올라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듭니다. 휴게시간에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사 측은 쪼개기 업무 분담을 강행하며 어떻게든 시설만 돌아가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에 실망한 공단 직원들은 노동자로서의 생존권을 위해 적정인력 확보를 요구하며 차가운 겨울날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싸움은 두 달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청장과 단 한 차례의 대화도 하지 못한 채 말이죠.

 

집회.jpg

구청에서 쫓겨난 후 시작된 촛불집회 (@강북구도시관리공단)

 

우리가 무례한 노동자들이라고?

 

공단은 각 지자체의 고유한 공공시설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되는 곳입니다. 말이 좋아 공기업이지 결국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수많은 위탁업체 중 하나입니다. 고용주들이 책임자로서 당연한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진 수많은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위탁 시스템의 한 톱니바퀴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공단은 공단 이사장이라는 명목상의 사장과 별개로 예산이라는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구청장이란 진짜 사장의 존재가 매우 중요합니다.

 

적정인력 확보는 인건비 확보를 필요로 합니다. 인건비 확보는 당연히 예산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구청장 결정이 없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런 당연한 논리로 공단 노동자들은 이사장과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 교섭을 끝내기 위해 이순희 구청장 면담을 시도했지만, 그곳에서 들은 대답은 “말도 없이 찾아오다니 무례하다.”라는 한마디뿐이었습니다. 자신들이 관리하기 힘들고 책임지기 어렵다는 이유로 위탁을 받아 지역 공공시설을 성실하게 관리해주고 있는 노동자들이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해 진짜 사장을 찾아간 자리에서 들은 “무례하다”라는 한마디는 아직도 공단 노동자들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진짜 사장 이순희 구청장과 대화하겠다는 작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말이죠. 평소 건강이 안 좋았던 권준석 지부장이 차가운 복도에서 쓰러지고, 박장규 분회장이 단식이라는 커다란 결심을 실천하는 동안에도 공단 노동자들은 이순희 구청장을 기다렸습니다. 단 한 번의 대화를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폭력노조라는 낙인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이 넘어 한 달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늘 그렇듯 대화를 기다리는 공단 노동자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사라지려는 이순희 구청장을 향해 공단 노동자들은 참다 참다 못해 대화 좀 하자며 항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순희 구청장은 노동자들이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둘러싼 구청 공무원들 사이에서 할리우드 액션을 하며 뒤로 넘어졌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겐 폭력노조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대화 한번 하기 위해 한 달 가까이 얌전히 기다린 우리에게 눈길 한 번조차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묵살된 채 말이죠.

 

우리에게 폭력노조라는 낙인이 찍히자 구청장의 행동은 더욱 과감해졌습니다. 경찰을 동원해 공단 노동자들은 강제퇴거를 당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가 부상을 입었지만, 노동자들에게 주목하는 언론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구청장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날조된 사실은 대서특필되었지만, 우리가 쫓겨나면서 입은 상처는 눈길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강제퇴거가 진행되었지만, 공단 노동자들은 투쟁의 불길을 이어나가기 위해 구청 앞에 천막을 세웠습니다. 그러자 구청은 구청 공무원과 구민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구청 앞에 바리케이드를 세웠습니다. 커다란 구청 정문에 셔터를 내렸고, 청원 경찰들이 신분을 조사하면서 구청 공무원들과 구민들은 조그마한 쪽문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구청장이 정말 원하는 구청 공무원과 구민의 안전일까요?

 

지부장.jpg

건강 악화로 쓰러진 권준석 지부장 (@강북구도시관리공단)

 

여전히 계속되는 구청장의 무시

 

그렇게 공단 정문이 닫힌 지 또다시 한 달이 넘었습니다. 바리케이드가 세워지고, 우리는 평화로운 투쟁을 위해 촛불집회를 시작했지만, 구청장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대화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공단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해준 지역 정치인을 의도적으로 신년인사회 초대에서 배제했습니다. 이를 항의하기 위해 찾아가자 구청장은 많은 지역 구민들이 보는 앞에서 “공단을 돕기 위한 지역 정치인의 행동이 기분 나빴다.”라면서 불만을 내뱉는 무례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37일이라는 기나긴 단식이 이어지면서 박장규 분회장이 건강악화로 생명에 위협을 받아 결국 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도 이순희 구청장은 병문안 한번 하지 않는 뻔뻔한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밥 먹는 시간조차도, 법으로 규정된 휴게시간조차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빡빡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적정인력 확보를 요청하고, 끝없이 발생하는 초과근무에 대해 수당을 편성해 정당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 구청장이 대화 한 번 하지 않을 만큼 무리한 요구일까요?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청 앞 천막을 지키며 구청장의 무례한 태도를 마주한 채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언제가 구청장이 알량한 자존심을 접고 직접 대화에 나설 그날을 기다리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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