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는 연대] 연결되지 못한 노동을 위한 연대의 재구성

by 센터 posted Feb 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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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준  센터 교육위원, 아유 대표

 

 

연결되지 못한 존재들

 

“와이파이 잘 터져요?”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듯 자꾸 되묻던 광고를 기억한다. 오프라인 교통망과 온라인 연결망은 넓고 빠르며 촘촘하다. 연결은 모두에게 풍요일까. 궁상맞을지 모르지만 초연결 사회에서 오작교를 떠올렸다.

 

성장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류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엄습하자 비로소 경제성장도 포기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지기도 전에 재빨리 잊어버리려 한다. 출산율 하락은 가부장제를 벗어나려는 진보의 물결이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줄어드는 것을 못 견디는 사람들은 축소균형을 준비하지 않으며 저성장을 거부한다. 디지털 경제와 함께 늘어나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이 158만을 넘어섰다거나 3.3% 노동이 수백만에 이른다는 격차와 차별에 관한 수치마저 수많은 정보에 섞여 밀려난다.

 

누구나 이용하며 공유하는 플랫폼은 기술 권력이 지배하는 돈벌이 수단이다. 모종의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플랫폼 사업이 확산될수록 노동은 데이터가 되어 흐름에 묻힌다. 일하는 시민들은 말단에서 접속할 뿐 서로의 거리는 멀어진다. 초연결 시대에 노동은 오히려 서로 연결되지 못한다.

 

거대한 노동의 물결이 출렁이던 시절, 공장 노동자들은 집단 자각을 통해 저항 군대가 되었다. 외주화를 반복하면서 등장한 요즘 노동은 특수고용, 자영업, 프리랜서의 흐름이 된다. 이를 뒤집어 새로운 노동의 물결을 이루는 것은 기성 노조에게 벅차다. 그러나 “노조를 한다는 것은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공감과 이해가 있는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것”이라는 방송작가유니온 조합원의 얘기처럼 노동이 만나는 오작교를 놓으려는 애틋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경쟁 연료의 과소비

 

사회가 차가울수록 지구는 뜨거워진다. 기후위기를 화석 연료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겁하다. 돌이켜볼 것은 성장을 위해 인간 심리에서 채굴해 불태우는 경쟁이라는 연료다. 무한 성장 연료로 과소비해온 경쟁, 마디마디 끊겨 분절된 노동시장, 습관이 된 각자도생으로 연대는 흔들려왔다. 차별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쓸수록 노동도 자원도 더 소비하고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2013년부터 3년간 진행된 미래 워크숍에서 40% 사람이 폭망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붕괴시나리오를 선택했다. 청년들만이 붕괴 미래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2015년 연구에서 40~50대 37.9%가 붕괴 미래를 선택했다. 2014년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2.4%가 탈성장 사회나 대안 사회를 30년 뒤 미래 사회로 희망했다. 성장주의에 피로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결과는 성장에 중독된 사람들에 의하여 묻힌다.

 

지배 엘리트들은 요란하다. 다극화로 불안한 세계질서, 서로 으르렁거리는 남북, 날 선 진영들의 정치 없는 정치, 저성장에 허우적거리는 경제에 둘러싸인 엘리트들은 자신감을 잃고 희생양을 찾는다. 비전은 없고 비난만 있다. 정적과 노조를 타깃으로 적대를 부추긴다. 불안한 지배 엘리트의 집단 심리다.

 

괜찮은 일자리에서 시장교섭력을 가지거나 규모에서 나오는 단체교섭력을 가진 노동은 계층 사다리 위쪽으로 움직인다. 시장교섭력도 단체교섭력도 없는 노동시민은 사다리 아래에서 존버정신으로 살아낸다. 이 간극을 파고들면서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의 노동 공격이 계속된다. 이렇게 노동 내부 간극이 명확하게 노출된 상태에서 연대는 얼마나 가능할까.

 

성찰 3대, 환대 3정

 

진영에 갇히면 연대는 날 선 적대로 변한다. 자기 진영을 모으기 위해 적을 더 선명하게 만들고, 적개심을 더 예리하게 벼리기 위해 과격한 언어들로 씹어 댄다. 이견을 가진 집단이나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을 극복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당장 없애야 할 적으로 만든다. 연대는 적대고 적대가 연대다. 서로에게 혐오를 퍼붓는 광장의 집회들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이익과 권력을 둘러싼 적대는 타오르고 권리 사각지대 시민의 삶은 쪼그라든다. 이권으로부터 독립된 시민사회가 약하면 사회 갈등은 기득권자들의 패거리 싸움이 될 뿐이다.

 

내부의 간극을 외면하는 연대는 다정함을 잃은 냉대다. 권리 사각지대의 간극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연대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을 배제하는 닫힌 시스템이다. 각자도생의 경쟁사회에서 자원을 가진 자들만이 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 그 결과 업적을 과시하는 사람들은 차별을 매우 정당한 사회 윤리로 여긴다. 노동자가 노동자 연대를 배반한다. 우리는 능력주의를 앞세워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연대를 배반하는 사례를 겪어왔다. 이런 능력자 연대는 노동이 노동에게 내뿜는 냉대다.

 

이미 변한 현실에서 과거의 기억으로 지휘하는 연대는 꼰대다. 노조 밖의 사각지대에서 노동권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되지만 분할된 노동의 물리적 거리를 잇는 오작교 건설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목소리 높여 투쟁할 때만 다가오는 연대는 조직도 없고 목소리 내기도 어려운 사람에게는 다른 세계의 것이다. 변한 노동의 현실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가르치려다 부담만 주는 연대의 속살도 살펴야 한다. 스스럼없이 어울릴 마당이 필요하다. 적대, 냉대, 꼰대라는 3대를 성찰할 때 적대를 넘어선 온정, 냉대를 넘어선 우정, 꼰대를 넘어선 다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3정이 연대를 재구성하고 서로를 환대할 에너지다.

 

아직 충분하지 못한 연결들

 

공장을 넘어 지역을 잇고 지역을 넘어 산업을 잇던 연대는 노조의 지역본부와 산업별 조직 시스템이 되었다. 발전이다. 그러나 노조 밖의 노동에 충분히 열려 있지 않으면 그것은 운동이 아닌 제도다. 전투적 집회에서 시작되어 매년 열리는 노동자대회는 때로는 성격이 모호한 연례행사가 되었다. 노동시민의 연대는 대부분 투쟁 연대다. 목소리를 내 관심을 끌어야 딸려오는 사후적 사건이다. 집회에 모이려면 일상과 단절이 필요하다. 동원할 조직이 없거나 주목받을 투쟁을 할 수 없는 노동시민에게는 이용 불가능한 티켓이다.

 

환대를 위한 소중한 노력들이 있다. 일상의 생활문화연대를 위한 노력이 있지만 희망연대노조 같은 부분적 사례로 머문다. 연대기금을 만들어 나눈 지역도 있지만, 전국적 전 산업적 모델에 이르진 못했다. 사회적 직업이 되지 못해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는 공익 활동가를 위한 ‘동행’도 연대지만 노동계와 사회운동이 대폭 결합하는 새로운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지불 능력이 취약한 사용자와 사업장 규모도 취약한 노동이 상부상조하는 공제회는 기성노조의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연대 형태의 하나인 디지털 연대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들도 있지만, 지속적이고 직접적으로 권리를 지키는 오프라인 조직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대통령실 답변과 조치, 국회에서 다루게 하려는 온라인 청원도 사이버 연대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문 앞에 물건이 도착하듯 오프라인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온라인은 오프라인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다. 디지털 행동주의는 온·오프라인 경계를 넘어 사회운동 모델로 발전하기를 바라지만, 아직 충분한 대안은 아니다.

 

같이 만드는 가치 연대야말로 연대의 재구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인권은 동물권을 거쳐 지구별의 모든 생명을 향해 간다. 2022년 9월 24일의 기후정의행동은 기후위기를 중심으로 연대를 재구성하려는 새로운 가치 연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인간을 차별하면서 모든 생명을 존중하기 어렵고, 인간계에서 막힌 권리는 생태계로 확장이 어렵다. 결국은 일자리 지키기로 후퇴하는 연대, 성장주의에 물든 일자리 늘리기 연대는 벌써 낡아버렸다. 일자리를 나누고 서로를 돌보는 ‘나눔과 돌봄’의 새로운 노동윤리가 탄소를 줄이고 지구별 생명까지 보듬어 안을 환대다.

 

노동시민 연대 축제

 

노동을 데이터로 취급하는 플랫폼은 숨겨진 알고리즘으로 설계된다. 오늘날의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들은 숨겨진 의도까지 계산해서 플랫폼을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충분히 열려서 충실히 들으며 함께 만드는 축제가 필요하다. 설계된 회의(컨퍼런스)보다 열린 광장(언컨퍼런스)을 만들자.

 

누군가 만든 설계도를 보고 참여할 것인지를 판단하려면 “뭘 하자는 것이냐”는 질문이 앞선다. 함께 만드는 축제를 열려면 발견이 필요하다. 각각이 가진 가능성을 발견하자. 우리의 연대 축제는 이제 시작이며 연대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이미 확인된 것을 확장하는 ‘스케일 업’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스타트 업’이다.

 

활동 노고를 잠시나마 떨쳐낼 편한 휴식을 원할 수도 있다. 강박을 느끼지않는 어울림을 원할 수도 있다. 답답한 관성을 깰 아이디어를 원할 수도 있다. 다양한 사례를 듣고 간접 경험을 늘릴 수도 있다. 엄격, 근엄, 진지한 엄근진 투쟁이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축제를 갈구할 수도 있다. 인적 물적 지원을 바라고 제안할 수도 있다. 가능성을 충분히 열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에 충실해야 다정한 오작교가 탄생할 것이다.

 

노동을 위한 세 마당을 상상해 본다. 첫째, ‘큰걸음을 위한 첫걸음’이다. 사각지대에서 권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교육을 받고 어울릴 마당이다. 둘째, ‘짧은 노조 긴 미래’다. 성공, 시련, 소멸을 겪는 신생노조들의 경험과 고충을 나누고 서로 보완할 연결 마당이다. 셋째, ‘새로운 언더독 중간조직’이다. 기성노조와 무권리 노동 사이에서 사각지대를 메우는 중간지원조직의 비전을 생각하는 마당이다. 과정에서 더 다양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마당이 탄생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같은 공동체의 팀원이다. 노동자는 시민이다.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은 우리 모두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고 한다. 그러나 격차와 함께 우리는 특권을 가진 계급과 무권리 계급·계층으로 이별했다. 벽을 넘어 만나고 환대하자. 그래서 지속 가능한 노동시민연대의 첫 걸음으로 솔라시(Solidarity of Labor and Civic Society)를 열자.

 

[크기변환]솔라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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