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_최우수상] 차별과 소외에서 벗어날 그날을 꿈꾸며

엄민지  고객센터 상담사

 

 

고객센터에 발을 들이다

 

2021년 1월의 어느 아침, 서울에 소재한 한 공기업 본사의 정문 앞에서 나는 차가운 마이크를 힘주어 잡았다. 교실이나 사무실에서 발표는 해봤어도 길거리에서 대중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였던 적은 없었다. 같은 시간 해당 공기업 건물 3층에서는 10명도 채 되지 않은 상담사들이 수천 건의 쏟아지는 민원을 쉴새 없이 받아내고 있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라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그들을 대신하여 목에 힘주어 소리를 내었다.

“안녕하십니까! 시민 여러분! ··· .”

미처 다하지 못한 그날의 이야기, 내가 경험했던 고객센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불안한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 와중에도 부모님은 어떻게든 내가 학업을 포기하지 않기를 희망하셨기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대학까지는 무사히 마쳤다. 불행은 연이어 찾아온다고 했다. 잇따른 부모님의 병환으로 경제 활동이 어려워지자 집안 형편은 회복이 어려울 정도였다. 함께 졸업한 친구들처럼 영어시험, 자격증, 공무원 시험 준비 등의 진로를 고민하고 준비할 여유가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25세부터 매일 매일 가정의 급한 불을 꺼야 하는 가장의 삶을 살게 되었다.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생각 이상으로 냉혹했다. 사회는 내가 처한 환경과 상황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회에서 나와 같은 사람은 ‘노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런 일을 겪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수모를 갚기 위해 (공채) 시험을 봐야겠다.’ 나 역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게 된다. 당장 하루도 버티기 어려울 환경에 처한 나와 같은 사람은··· .

 

결국, 나와 같은 사람들이 찾게 되는 곳은 ‘비정규직’이라고 불리는 직업이고, 대표적인 곳이‘고객(콜)센터’이다. 여기서 잠시 다른 얘기를 하자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과정에서 누군가 고객센터 상담사들은 대기업 직원이고 절대 비정규직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 당시에 나는 상당히 화가 났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다른 의도가 없다면 고객센터에 입사하기 전 내 생각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고객센터 입사를 앞두고 나는 대기업 직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며 잠시나마 행복했다.

 

고객센터, 수상하지만 괜찮을 거야

 

고객센터 채용공고를 봤을 때 수상한 점이 있었다. 첫째, 채용공고에 새겨진 기업 로고(BI)가 두 개였다. 자세히 보니 하는 일은 공기업의 민원 업무이고, 근무 장소도 해당 공기업의 본사지만, 내가 입사하게 되면 사기업 직원이 된다는 것이었다. 둘째, 채용공고에는 정규직 사원을 채용한다고 되어 있지만, 막상 공고를 확인한 곳은 아르바이트 채용 사이트였다. 마지막으로 채용 절차가 상당히 간소하여 5일간 교육을 받으면 당장 입사가 가능한 파격적인 시스템이었다. 미심쩍지만 나는 일단 일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결코 잊지 못할 고객센터의 첫인상
 

교육 첫째 날, 고객센터 관리자를 따라 공기업 본사 건물로 들어갔다. 고객센터 사무실은 1층에 있었다. 철문을 열자 한눈에 고객센터가 다 보였다. 원래 하나의 사무실을 두 개로 어설프게 가른 것인지 작은 창문의 1/3 정도가 고객센터 창문의 전부였다. 그마저도 옆 사무실에서 창문을 열면 고객센터는 열 수 없는 구조로 창문이 없는 사무실이나 다름없었다. 관리자를 포함한 23명의 인원이 그 공간에 빽빽이 앉아 있었고, 출입문 쪽 마지막 상담석 바로 옆에 커튼 하나로 가린, 겨우 2~3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휴게실 겸 교육장이었다.

 

고객센터 출입문에서 정면으로 대형 모니터가 눈에 띄었다. ‘응답률’, ‘서비스 레벨’, ‘상담 중인 상담사의 수’, ‘이석(후처리) 중인 상담사의 수’ 등의 숫자들이 번갈아 가며 현시되었다. 그러다 모니터의 숫자가 적색이 되면서 깜빡거리기라도 하면 관리자가 벌떡 일어나서 ‘대기를 타라’며 소리를 질렀다.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보기에도 상담사들은 숨쉬기조차 힘겨워 보였다.

 

고객센터 교육은 2일 동안 이론을, 나머지 3일간은 실습 교육을 진행하였다. 실습은 업무 중인 상담사들의 옆에 앉아 그들이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고 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교육하는 상담사에게 별도의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업무와 동시에 진행하도록 하였기에 교육을 받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 모두 부담이 되었다.

 

교육 기간 5일이 지나자, 관리자는 나를 상담석에 앉히더니 헤드셋을 착용하고 전화를 받도록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 상담을 추가하더니,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애플리케이션 접수 민원까지 동시에 처리하라고 지시하였다. 결국 미흡하고 준비되지 않은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한 대가로 고객에게 “죄송합니다.”를 무한 반복하며 상담 업무를 스스로 터득해야만 했다.

 

고객센터 상담사, 좋은 직업이 될 수 없을까?

 

고객센터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 않아서일까, 상담 업무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라는 확신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마지못해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비참해지는 것 같고, 당장 그만두려니 상담 업무에 적응하기 위한 그간의 노력이 아까웠다. 이런 고민을 반복하고 있을 즈음에 사건이 생겼다.

 

당시 우리 고객센터 관리자는 매니저와 강사(QA), 두 명이었다. 이중 매니저는 우리 고객센터에서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교체되었다. 따라서 매니저는 민원 업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좀 더 오래 근무했던 강사가 고객센터 업무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항을 좌지우지하였다. 그런데 강사의 폐단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상담직원에게 공개적인 폭언과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당사자뿐 아니라 근무하는 상담사 전체가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낄 정도였다. 게다가 상담직원들에게 업무 외 시간에 접근하여 돈을 빌려달라 요구하였고, 만약 거절하면 업무와 연계하여 거절한 상담사들을 괴롭혔다. 이를 견디다 못해 퇴사한 상담사가 있을 정도였다. 매니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조치하지 못했다. 고객센터 최고 책임자도 통제 못 할 정도이니 상담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관찰한 내용을 증거와 함께 정리하여 문서를 만들었다. 가장 첫 줄에 ‘회사에서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 서류를 들고 노동부로 가겠다’라는 말을 적은 후 본사에 내용증명을 발송하였다. 회사의 조치는 예상보다 신속했다. 얼마 되지 않아 해당 강사는 우리 고객센터에서 보이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고객센터 상담사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문제를 찾고 해결할 수만 있다면 상담사는 좋은 직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의 싹이 내 마음속에서 트이기 시작했다.

 

‘민간위탁’, ‘아웃소싱’ : 차별과 소외를 정당화하는 도구

 

내가 파악했던 고객센터 문제는 이러했다. 첫째, 상담사가 악성(강성) 고객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둘째, 공기업 직원의 갑질이 심각한 것을 알면서도 관리자가 방관했다. 셋째, 상담사들이 하는 일에 비해서 정당한 대가(임금, 복리후생 등)를 받지 못했다. 넷째, 회사가 과도한 실적(상담 건수) 경쟁을 유도하여 상담사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장해가 발생하였다. 다섯째,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했다. 이 문제들의 뿌리는 바로 ‘차별’과 ‘소외’였다. “상담사는 욕을 먹어도 된다, 원래 욕먹는 직업이잖아.”, “(공기업) ○○급 ○○장에게 상담사가 건방지게.”, “민원은 고객센터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을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내린 결론이다.

 

정부와 정치, 기업들이 합심하여 ‘차별과 소외’를 정당화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다. 바로 ‘민간위탁’, ‘아웃소싱’과 같은 제도이다. 이후 문제가 터질 때마다 인권 경영, 갑질 근절,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등의 법과 제도를 마련하였지만, 몸에 중대한 질병이 있어 통증이 있는 환자에게 진통제만 처방하는 느낌이다. 이런 돌팔이 처방을 보고 있자니 답답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마이크를 잡았던 이유였다.

 

민간위탁 및 아웃소싱 고객센터 직원들이 답변하기 어렵거나 껄끄러운 질문 중 하나가 “어디 소속 직원인가?”가 아닐까. 민간위탁, 아웃소싱 고객센터는 상담사의 모집, 채용, 교육, 인사, 퇴사의 모든 절차 대부분 고객센터 내에서 처리한다. 고객센터 전문 기업들은 ‘전문상담사 양성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높은 수준의 상담 노하우 보유’ 등의 문구로 자신들을 홍보한다. 하지만 현실과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상담사 양성은 기존 상담사와 관리자들이 위탁사의 업무 자료를 중심으로 한다. 각 센터의 데이터는 보안 문제로 공유가 어려울뿐더러 각 센터 특성과 응대 방식이 달라 통일하기도 어렵고, 센터 간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다시 말해, 아웃소싱(민간위탁) 기업이 상담 업무에 대한 특수성이나 전문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있다고 해도 상담사에게 전수될 확률이 지극히 적다는 것이다. 논외이지만, 일부 민간위탁(아웃소싱) 회사는 유급휴가(창립기념일 등) 적용에 상담 직군을 제외하도록 취업규칙에 버젓이 명시하고 있다. 수탁회사 내부적으로도 상담직원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객센터는 위탁사의 업무를 습득하여 응대 기술을 축적하고, 자체적인 상담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어 위탁사의 특수성이 오히려 강하다. 나는 이러한 상담 노하우를 위탁사의 ‘자산^asset’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고객센터는 위탁사의 한 부서로 인정하는 것이 맞다.

 

고객센터 상담사, 차별과 소외에서 벗어나기

 

우리나라 대다수 공·사기업은 고객센터가 있다. 기업들도 고객센터의 역할이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상담사들에 대한 대우는 어떠한가?

그동안은 상담사 공급이 수월했다. 비용을 높이지 않아도 일할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고객센터 업계는 극심한 채용난을 겪고 있다. 상담사를 채용하기 위해 정착지원금, 성과급 인상 등으로 유인하고 있지만, 지원자조차 찾기 어렵다는 것이 채용 담당자의 말이다. 나는 이런 현상의 원인이 전염병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고객센터 상담사 처우와 관련된 묵힌 문제들을 해소하고 양질의 직업으로 만들어야 한다. 힘든 시간을 지나왔다. 개선하고자 노력이라도 하니, 지금은 과거보다 많이 나은 환경이 되었다. 오늘도 나는 차별과 소외에서 완전히 벗어날 그날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