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집중하되, 지역에 머무르지 않는 한비네

by 센터 posted Dec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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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네 10년, 성과와 과제

 

정흥준 센터 정책연구위원,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

 

 

한비네1)의 등장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이하 한비네)의 등장은 지역 비정규 운동의 출발과 함께 시작된다. 다만 지역 비정규 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1998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 정리해고제의 시행, 파견노동제 도입 등 노동 유연화가 계기였다. 기업들은 경제위기, 국가경쟁력 강화, 세계화 등을 이유로 비정규직을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을 늘려왔다. 정부와 기업의 비정규직 남용에 대해 2000년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설립되어 비정규 노동에 대한 문제 제기와 정책적 개입을 시도하였으나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비정규 노동 정책을 생산하고 운동을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성격이 강했으며 지역 운동조직으로서의 위상은 약했다. 2000년대 초·중반 노동조합이 특수고용, 사내하청 등 조직된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을 조직하였으나 지역 운동은 상대적으로 취약하였다.

 

지역 비정규 노동의 전환점은 2003년에 일어났다.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울산 북구청이 조례 제정을 통해 울산 북구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를 전국 처음으로 개소하였고 비정규 노동자 지원 활동을 민간에 위탁했다. 위탁 운영기관은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였으며 20년이 되는 2023년까지 운영계약을 체결하였다. 울산 북구는 현대자동차가 위치한 노동자 도시였기에 지방자치단체와 노동단체가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비정규 노동자를 지원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자의 도시가 아닌 곳에서도 비정규노동센터가 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두 번째 계기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였다. 지방자치단체와 노동단체 간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지방선거를 계기로 확대, 강화된 것이었는데, 2006년, 2010년, 2014년, 2018년 네 번의 지방선거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노동조합과의 정책 공조는 지역 비정규노동센터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예를 들어 2003년 울산 북구를 시작으로 10년 뒤인 2012년 말 30여 개 센터가 건립되었다. 그리고 다시 10년 지난 2022년 말 현재 70여 개 지역에서 비정규노동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비정규센터의 급속한 확대는 비단 정당/노동조합 간의 정치적 관계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도 지역 노동 정책이 매력적인 측면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지역 소멸이 이야기될 정도로 노동시장이 붕괴되면서 취약한 노동자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책임 있는 지역 행정가라면 적은 예산을 통해 일자리 개선 등 다양한 성과를 만들 수 있는 노동 정책이 나쁜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역 비정규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전국적 조직의 필요성도 함께 커졌다. 무엇보다 민관 협력조직인 비정규센터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활동과 위상 등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센터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전망을 논의하기 시작하였고 2012년 11월 29일 한비네를 창립하였다. 한비네의 설립 초기 문제의식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비정규직 노동센터 간에 협력을 통해 사업을 공유하고 노동 상담과 같은 사업 내용을 발굴하며 지방자치단체와의 관계 및 지역 활동 비결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또한 지방정부의 노동 정책을 강화하고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하며 조직하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었다.

 

한비네의 활동 평가

 

비정규 정책을 지역에서 의제화

한비네의 가장 큰 성과는 비정규직과 관련된 다양한 의제들을 지역에서 꾸준하게 제기하고 대안을 논의하여 비정규 주제를 전국화한 것이다. 과거 비정규직과 관련된 이슈는 서울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지역에서는 공론화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지역을 대상으로 한 비정규 연구도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한계는 지역 노동센터들이 설립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적은예산이지만 주어진 자원을 활용하여 시의적절한 사안에 대한 정책연구사업을추진하고, 지역에서의 결과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대안을 찾는 등 공론화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양적인 측면에서 정책연구와 공론화가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비정규직 이슈를 전국적으로 알리고 대안 마련을 요구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였다.

 

2021년 한비네 소속 센터들의 주요 정책연구사업들을 살펴보면 지역을 대상으로 다양한 비정규직 관련 주제들이 연구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추진된 정책연구사업은 모두 지역의 비정규직, 취약 노동자, 이주 노동자 등을대상으로 하였고 연구 주제는 특수고용, 플랫폼, 경비 노동자, 돌봄 등 필수 노동자, 감정 노동자, 공공부문 및 산업 안전과 관련된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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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노동센터 정책연구는 다양한 의미가 있는데 무엇보다 지역 내 취약 노동자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이후 노동 정책을 수립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선 이견도 존재한다. 지역 센터의 정책연구는 다양한 비정규직 문제가 지역에 어떻게 존재해 있는지를 공론화하는 성과가 있지만 대부분 1년에 1~2개 정책연구사업에 머물러 양적인 한계가 있으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는 대책 마련 등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지역 노동정책의 집행자 역할

지방자치단체가 노동 정책을 수립하고 실제로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은 지역의 비정규직 노동센터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광역 및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실제 노동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어려움이 컸다. 무엇보다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인데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에는 노동 정책에 대한 사무가 없었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취약 노동’, ‘비정규직 노동’, ‘조직노동’, ‘노동교육’ 등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 노동 담당 공무원들은 해당 지역에 비정규직지원센터, 노동권익센터 등에 의존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였다. 특히, 수도권이 아닌 지역일수록 노동 관련 업무는 1개의 과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 행정력이 수립된 노동 정책은 대부분 지역에서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되는 비정규센터와 권익센터에서 추진되었으며 노동 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비정규센터 역할이 컸다.

 

지역 비정규센터들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게 되면서 비정규 정책사업의 전국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지역의 노동 정책은 지역의 노동실태에 관한 연구, 노동 상담, 교육(인권, 청소년 노동 교육 등) 외에 노동안전지킴이 활동과 같은 사업장 지원, 감정 노동자 보호·예방 및 지원, 취약 노동자 지원 사업 등으로 수렴되었다. 아래는 기초지방자치단체 노동센터인 부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의 2021년 사업을 예로 나타낸 것이다. 표에서처럼 노동상담 외에 정책연구사업, 문화사업, 교육사업, 노동자 권리 찾기 및 노동자지원사업, 산업 안전, 쉼터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활동이 다른 센터들에서도 추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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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비정규센터들은 행정력의 빈 곳을 메우며 노동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비정규센터의 상근인원과 예산은 그다지 많지 않다. 상대적으로 활동이 활발한 안산시와 부천시의 경우 상근인원이 각각 4명, 7명이고 사업비는 3~6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인건비를 제외하면 빠듯하게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른 지역 사정도 대략 비슷한데, 이와 관련하여 남우근(2020)의 발제문은 광역단체 노동 행정 예산은 세출 총액의 1%도 안 되는 0.58%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이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 비정규센터들이 전문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더라도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예산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이기 때문에 비정규센터의 정책 제언은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민간위탁 형식의 계약관계를 가지고 있는 비정규센터의 태생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방자치단체의 노동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비정규센터들의 역할은 상당한 개입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새롭게 조례가 만들어지면 이를 바탕으로 비정규센터가 다시 정책사업을 집행하는 완결적인 선순환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역 비정규센터의 역할과 위상을 다른 민간위탁 기관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한비네는 지역에서도 노동 정책을 논의하고 평가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음을 보여줌과 함께 지역의 모범적인 사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과거 노동 정책은 중앙 차원에서 만들어 지역으로 전파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나 지금은 지역의 모범사례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감정노동자보호센터 사업도 2018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어 대전, 대구, 경상남도, 부천시 등으로 확대되었다. 성동구에서 시작된 필수 노동자 보호 사업도 전국적으로 확대된 사례이다. 

 

비정규직 조직화

한비네의 성과 중 하나는 미조직 비정규직 당사자에 대한 조직화 사업이다. 한비네의 조직화 활동은 지방자치단체의 민간위탁으로서 노동자를 지원하는 조직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의 민간위탁 조직이 가진 자원(예: 상담 등)을 최대한 활용하여 기존에 조직된 노동단체가 성과를 내기 어려운 조직화 역할을 추진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몇 가지 주요 조직화 사례를 소개하면 아파트 경비 노동자 조직화 사례이다. 아파트는 전국 주요 도시에 있는데, 경비 노동자 다수가 용역업체로부터의 불이익과 용역업체 변경에 따른 고용불안, 입주민으로부터의 부당한 대우 등에 노출되어 있다. 이에 대해 지역 노동센터들은 아파트 경비 노동자의 실태조사를 통해 고용불안, 장시간 노동, 부당대우 등 고령 노동자의 어려움을 살폈고, 한비네 차원으로 2019년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을 만들어 당사자모임을 조직하였다. 그 결과, 광주광역시에서는 2018년 광주경비원일자리협의회 결성 이후 400명의 경비 노동자가 민주일반연맹 광주전남본부에 가입하는 성과가 있었다. 이 외에도 대전, 서울 등에서 경비 노동자의 노조 가입이 이어졌다. 또한 간접고용 노동의 특성상 원청사업주의 교섭 불응에 따른 노동조합의 실효성이 낮아 안산은 노동공제회를 추진했으며 경기, 충남 등은 노조 전단계인 연합회로 남아있는 상태이다.

 

지역별로 다양한 개별 조직화 사례도 존재한다. 안산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는 상담 등을 통해 캐논코리아 불법파견 사실을 확인하고 직접고용을 위한 민원 제기 등 직·간접적인 지원을 통해 직접고용과 캐논코리아비지니스솔루션노동조합을 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밖에 광주광역시비정규직지원센터는 독거노인생활지원사 실태조사를 통해 170여 명을 일반노조로 조직화하였다. 이 외에도 개인 병·의원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이동상담소 운영,가사 노동자 실태조사 등을 통해 실태조사가 연구사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구사업이 미조직 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연결하는 매개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적극적인 조직화 사업은 상근자들의 센터 조직화에 대한 평가에서도 잘 나타난다. 2017년 상근자 조사와 비교하여 2021년 조사에서 조직화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조직화가 성과적이라는 응답은 2017년 13.7%에서 2021년 37.7%로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성과적이지 않다는 부정적인 응답은 2017년 60.8%에서 30.8%로 크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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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비정규센터의 조직화 성과 평가의 긍정적인 까닭은 2017년 이후 가사 노동자, 경비 노동자, 배달 노동자 등 한비네가 개입한 조직화 사업이 가시적인 결과물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조직화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인데, 노동조합의 경우 전략조직화를 위해 별도 기금을 조성하고 조직화를 위한 전담 활동가를 두고 있지만 비정규센터는 그러한 자원을 갖추고 있지 않아 조직화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향후 비정규센터의 조직화를 위한 상담 등 구체적인 경로에 대한 논의와 자원 마련 계획이 동시에 필요하다.

 

한비네 성과의 배경

 

한비네의 조직적 성과는 지난 10년 동안 자칫 흩어질 수 있는 지역 노동센터를 묶어 낸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한비네의 조직적 연대가 없었더라면 지방정부 정책의 빠른 확산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비네는 공유와 연대, 협력을 통해 특정 모범 정책들을 각자의 지역으로 빠르게 도입, 확산시켰으며 더 중요한 것은 민간위탁 조직으로 위상이 떨어질 수도 있었던 지역 노동센터를 네트워크 조직체로 연대하여 노동운동의 문제의식을 내·외적으로 유지, 발현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한비네의 정책적 성과는 두 가지로 하나는 정책연구를 통해 지역의 다양한 비정규 노동에 대한 실태를 알리고 지역 차원의 대안을 요구한 것이다. 지역 노동단체 역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지역 노동센터의 실태 파악과 정책 대안은 지역 사회 여론에 중요한 역할을 미치고 이는 지방의회나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둘째, 정책연구 사업을 통해 지역에 있는 다양한 업종의 비정규 노동자를 만나게 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조직화를 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한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정책연구 과제와는 다른, 지역 차원의 특수성이 반영된 의미 있는 정책+조직화의 경로를 보여준다.   

 

한비네가 적은 인원과 빠듯한 예산으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동력은 몇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비정규센터를 운영하는 위탁기관이 노동 정책에 대한 사명감이 있으며 다른 민간위탁 운영기관처럼 일반관리비나 이윤에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는 상대적으로 손을 덜 들이고 낮은 비용으로 노동 정책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노동 정책 특성상 상근자가 전문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일에 대해 몰입이 높아야 하는데 비정규센터 상근자들은 이러한 조건에 부합했다. 2021년 실시한 상근자 130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입사 동기로 비정규직과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입사했다는 응답이 76%로 매우 높은 데 비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취업했다는 이유는 42.7%로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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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헌신의 결과로 지역의 주요 사업인 노동상담과 지역 실태조사 등 정책사업은 이전보다 개선된 것으로 나타난다. 2017년과 2021년 각각 지역 비정규센터를 대상으로 사업에 대한 성과평가를 분석한 결과, 2021년은 2017년 비해 노동상담, 노동자 교육, 실태조사 등 정책사업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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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비네는 2013년 이후 격년마다 비정규 노동 정책박람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는데 이 역시 비정규 노동 정책에 대한 공감을 높이고 중요 사업이 수렴되는 결과로 활용되고 있다. 2013년 울산 동구에서 처음으로 시작하여 2021년 대전에서 5회 개최되었다. 개최 지역은 매년 달라지는데 한비네 소속 상근자와 지역 노동단체 등이 모여 다양한 비정규 노동 현안을 논의한다. 다만, 정책박람회가 한비네만이 아니라 양 노총과 주요 노동단체 등을 초청하여 내용적 완성도와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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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네의 과제

 

조직적 과제

한비네는 위의 성과에도 다양한 조직적 과제를 안고 있는데 세 가지를 우선 과제로 제안한다.

첫째, 한비네는 느슨한 네트워크 조직의 장점이 있으나 어떤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있으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목표는 무엇인지가 모호하다. 한비네의 정체성과도 관련되어 있는데, 이는 단일조직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지향점과 가치, 중단기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함께 합의하고 계속 수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비네는 센터들 간에 정보를 나누기 위한 수단적 존재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며 조직적 위상이 떨어질수록 할 수 있는 연대 활동도 제한적이다. 한비네가 활동 방향성을 논의하고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TF팀을 만들어 1~2년 정도 꾸준하게 추진하여 비정규정책박람회와 같은 자리에서 열린 토론을 기획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지역에 집중하되, 지역에 머물러 있지 않은 활동을 해야 한다. 지역 노동센터는 당연히 지역이 거점이고 활동의 근거지이다. 그러나 지역 활동이 전체 노동과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전체 노동으로 시야를 넓히고 함께하는 연대 활동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노조법 개정이나 파리바게뜨 안전사고, 일하는 청소년 사고, 노동자에 대한 갑질 등 다양하게 제기되는 현안에 대해서는 한비네가 조직적으로 대응하여 지역에서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는 전국적 수준에서 한비네의 조직적인 위상을 높이는 것이며 결국은 한비네의 존재 이유와도 관련되어 지역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당성을 제공한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쟁점인 일부 보수 지방자치단체장의 노동 정책 후퇴에 대해 한비네 차원의 공동 대응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셋째, 집행체계 강화와 미래세대 활동가 양성은 항상 중요한 과제이다. 한비네의 조직 확대 또는 이미 가입해 있는 센터의 한비네에 대한 참여와 지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집행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집행위원회 및 조직 담당 회의가 있으나 체계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조직 담당은 각 센터의 운영 전반을 알고 있는 상근자가 결합하여 적어도 월 1회 안정적으로 회의를 하면서 지역에서 일어나는 현안을 공유하고 대안을 서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현재는 운영이 비정기적인 정책 담당 회의도 정비하여 각 센터 정책 담당자들이 정책 토론과 협업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비네 소속 모든 센터가 참여하지 않더라도 참여가 가능한 센터들이 먼저 회의를 시작하고 이를 계기로 안정화하면서 점차 확대해 나가는 방법도 모색해 볼 수 있다. 젊은 상근자를 차세대 한비네 지도부로 양성하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집행위원회와 대표자회의 등에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또한 비단 한비네 차원이 아니라 젊은 활동가를 지역 활동으로 영입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정책과제 제안

첫째, 한비네는 지역 차원의 특화된 대안을 모색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역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대안은 다른 사람이 대체하기 어렵고 지역에서 상근하는 활동가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공무원과 적극적으로 만나면서 실현 가능한 대안들을 모색해 집단 지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른 지역의 해법도 꾸준히 참조하여 지역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도록 한다.

 

둘째, 지역 노사정 사회적 대화 허브 역할을 하도록 한다. 노동 관련 축적된 정책 역량을 활용하여 노사정이 함께할 수 있는 지역 차원의 정책 대안을 만들고 주도하는 역할을 하도록 한다. 정책적 법 제도적인 차원으로 해결할 사항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항이 있는 것처럼 법과 제도가 아닌 현실에서 노사정이 논의와 타협을 통해 가능한 대안들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고, 노동센터가 그러한 제안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지역에서 노동 정책을 지속해서 연구할 수 있는 토대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처음부터 노동을 잘 알고 노동 정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적어도 누군가에게 ‘정책’을 제안하려면 7~10년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지역에서는 대학에 근무하는 노동, 경제, 복지 관련 연구자가 있다면 꾸준한 연구 펀딩을 제공하여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연구자 그룹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지역에서 노동에 관심 있는 변호사나 노무사 등 전문가를 꾸준하게 영입하여 꾸준하게 연구를 제안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당장 연구 결과물보다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지역의 노동 씽크탱크를 만드는 구상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 기존 연구자와 공동연구 등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한다.

 

넷째, 한비네는 정책박람회를 체계화하고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정책박람회는 한비네 내부를 결집하고 비정규 노동 현안을 토론하는 자리가 되고 있으나 향후에는 이를 확대하여 한비네만이 아니라 지역과 주변 그리고 비정규 노동 정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자리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황과 미래주제를 준비할 때도 즉흥적인 발제보다는 한비네의 공동연구나 지역별 사례에 연구자가 결합하여 체계화하는 등 준비된 정책을 소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 ∙ ∙

1) 한비네는 전국적으로 주요 민간위탁 형태로 운영 중인 조직과 더불어 지역에서 비정규 정책과 조직을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예: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전태일재단 등) 등이 가입하고 있으며 2022년 11월 현재 41개 조직이 포함된 네트워크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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