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를 기억하라

by 센터 posted Oct 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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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올해 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운동사를 기록한 두 권의 책이 발간되었다. 노동조합 간부 중심의 서술을 뛰어넘어 일반 조합원의 노동운동과 이후의 삶을 기록한 《어둠의 시대, 불꽃이 되어》와 콘트롤데이타 노동조합운동사 《금수강산 빌려주고 머슴살이 웬 말이냐?》다. 참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80년대 중공업 남성 노동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서술을 많이 목격한다. 반면 70년대 노동운동의 주체였던 여성 노동자는 투사나 운동가로 묘사되지 않고 여공 혹은 공순이로만 기록된다. 이는 역사가들의 성차별적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며 여성 역사를 삭제하는 전형적인 기록 행태이다. 70년대 노동운동사를 기록하는 작업은 삭제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하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활동 특성상 나는 많은 70년대 선배님을 뵐 기회가 있었다. 그분들은 활동한 지 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모임을 통해 단단한 연대를 유지하시며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놓지 않고 계신다. 두 책의 출간을 기념해 더 많은 선배님을 뵐 기회가 있었다. 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에 대한 추앙이 필요하다는 나의 발언에 많은 선배님은 눈물까지 보이며 ‘이런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라며 고맙다는 화답을 주셨다. 안타까웠고, 화가 났다. 배제되고 외면당한 역사의 주역들을 이제는 기억해야 한다.

 

70년대는 성별 임금 격차를 통해 한국의 자본가들이 본격적으로 자본을 축적한 시기였다. 독재정권은 전략적으로 여성 노동자를 수출중심의 경공업으로 몰아넣었다. 낮은 임금을 주고 상품의 단가를 낮추어 경쟁력을 확보하였다. YH무역의 경우, 4명으로 시작한 가발공장이 몇 년 새 3,000여 명의 노동자를 거느린 대공장으로 성장하기도 하였다.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 및 주거환경으로 대변되는 70년대의 공장 생활은 금천구에 위치한‘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https://gchistory.kr/)에서 살펴볼 수 있다. 70년대 선배님들과 함께 방문했던 생활체험관에서 당시 생활을 들을 수 있었다. 기숙사 방 하나에, 혹은 쪽방에 여러 명이 함께 거주했다. 주야간 교대로 잠을 자는 공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이들이 집을 떠나 공장으로 들어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70년대여성 노동운동가들을 운동가나 투사가 아닌 공순이로 기록하는 이유는 나이 어린 여성에 대한 사회적 하대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20대가 되면 이미 10년 차 노동자가 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노동조합은 남성이 장악한 어용노조가 많았다. 여성 노동자들은 현장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기존 노조에 맞서 민주노조를 출범하고 여성을 지부장으로 선출했다. 달라진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귀 기울이며 임금협상을 시도했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꾸어나갔다. 이 모든 과정은 토론과 합의에 의거한 민주적 절차로 진행되었다.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린 도화선이 되었던 YH노동조합의 신민당사 점거 투쟁은 폐업한 사업장에서 조합원들과 진행한 분반 토론의 결과였다. 사장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을 상징하는 미국 대사관, 채권은행이었던 조흥은행 본점, 정치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던 신민당사를 후보로 놓고, 접근성과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하여 장시간 토론한 결과 신민당사로 결정하고 결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은 매우 간단하게 몇몇 남성 지식인의 인도에 따라 신민당사로 간 것으로 왜곡되어왔다. YH노동자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운동적 판단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했으며 신중한 판단을 내린 주체들이었다. 당시 학생이었던 한 교수님으로부터 그때의 이야기를 들을 일이 있었다.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그 시절, 그 어떤 용감한 대학생도 감히 목소리를 내지 못 했다. YH노동자들이 그 엄혹한 진공을 뚫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비로소 모두가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콘트롤데이타 노동조합이 1981년에 이미 주 40시간을 쟁취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1976년 주 44시간, 1979년 주 42시간, 1981년 주 40시간을 쟁취하였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임금인상에 목말라 노동시간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성과였다. 주 40시간제는 30년이 훨씬 지난 2010년대가 되어서야 법으로 도입되었다. 콘트롤데이타 노동조합의 일화 하나를 이야기해 보자. 어느 날 여자 화장실에서 담뱃불 씨로 인해 불이 나자 회사는 여자가 왜 담배를 피우냐며 탓했다. 그러자 노동조합은 남자 화장실에는 모래 항아리가 있으나 여자 화장실에는 모래 항아리가 없다면서 회사의 잘못임을 분명히 했다. 다음날 여자 화장실에 모래 항아리가 놓였다.

 

70년대 여성 노동자에게는 흔히 ‘가녀린’ 혹은 ‘어린’이란 수식어를 붙인다.이 수식어들은 여성 노동자의 수동성을 강조한다. 가녀리고 어린 여성 노동자는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간다고 기대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의아스럽다. 이렇게 눈부신 노동운동의 역사를 일궈낸 노동자 집단이 있었는가. 이렇게 강고하게 연대하며 국가를 바꿔낸 역사가 있었는가. 시대를 앞선 요구, 타 노조와의 연대, 노학연대, 사회문제 참여. 70년대 노동조합은 사실상 이후 민주노조 활동의 원형을 만들어 내었다. 70년대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한국의 노동운동과 노동자의 권리는 전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둠의 시대, 불꽃이 되어》가 갖는 의미 중 하나는 그 수많은 여성 노동운동가가 결혼으로 인해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암흑의 역사를 드러냈다는 데 있다. 가족과 사회는 이 결연하고 경험이 축적된 노동운동가들을 결혼시켜 가정으로 밀어 넣었다. 강요된 삶이 이들을 잠식했다. 만약 이 노련한 노동운동가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면 한국의 노동운동은 물론 정치·경제 전반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여 다른 삶을 꾸린 노동운동가들의 이후 삶이 주는 감동은 이 책이 갖는 중요한 지점이다. 가정으로 밀어 넣어진 노동운동가들은 다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누군가는 인쇄골목에서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인쇄물을 찍어냈고, 또 누군가는 지역의 풀뿌리운동을, 이주여성운동을, 그리고 다시 여성 노동운동을 이끌어 갔다. 선배들은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 내며 변화를 추동했던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오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고 미래를 기획하기 위해서다. 커다란 위협에 직면한 오늘, 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들의 혜안과 지혜, 단단함을 빌려오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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